그리움은 꿈이 되어

by 샹송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개나리색 장판 위에 풀색 담요를 깔아놓은 채 빨간 화투장을 만지고 있다. 크게 주름지고 투박한 손은 그림들이 희미해질 만큼 오래 사용해 반들거리는 화투를 들었다 놨다 한다. 오랫동안, 아마도 나보다도 더 오래된 사이인 손과 화투가 전혀 다르게 늙었다. 가끔씩 깎아주기도 했던 두껍고 단단한 손톱이 얼마나 길었으려나 확인을 한다. 아직 깎을 때는 아니었다.


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눈꺼풀이 감와 베개도 없이 누워서 잠을 청하면 할아버지는 서랍장 위에 있는 베개를 집어 내 머리 아래 받쳐준다. 텔레비전 소리와 화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익숙한 방 냄새와 할아버지의 온기가 짙어진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이불 덮고 스르륵 잠에 든다. 그렇게 단잠을 자다 추운 기분이 들어 깨면 방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꺼진 텔레비전, 단정하게 정리된 담요와 화투, 걷어간 이불 그리고 빈자리. 나는 일어나서 방을 나간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은 대게 그렇다.


어느 날 꿈속, 할아버지가 등에 지게를 지고 앞에서 걷고 있었다. 다가가 나란히 서자 할아버지는 말없이 손을 들어 내 등을 몇 차례나 쓸어내려 주셨다. 위로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눈물이 터졌는데 실제로도 울음이 나와 잠에서 깨버렸고, 몇 번 훌쩍이다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꿈과 울었던 게 떠오르자 묘한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모르는 새에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일이 잦아들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하다가, 당연히 또렷하게 남아 있을 줄 알았던 모습이 흐려진 것을 알아챘다. 할아버지가 말을 하고 밥을 먹고, 길을 걷고,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행동들은 희미했고 그림이나 사진처럼 멈춘 모습만이 어렴풋했다. 그러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나 싶었고 또 살아있던 오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렇게나 빨리 잊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기도 했다.


기억이 흐려질수록 그리움은 강해지고 있었고, 꿈은 그 증거였나 싶다. 점점 잊혀지는데 그리움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끔씩 내 꿈에라도 찾아올 텐데 나는 이다음에 찾아갈 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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