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날 저녁 태어나 처음 달무지개를 봤습니다. 밝은 보름달 주변으로 동그랗게 무지개가 떠있는 것을 보고 아직도 내가 못 본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이날 달은 무지개와 작은 별 하나를 달고 하늘을 유영하듯 떠다녔습니다. 달 아래 뜬 별이 한 몸인 듯 계속 따라서 이동하는 것을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단지 떠 있기만 한 건데 제 눈이 이상했던 걸까요.
그 전날에는 달무리를 봤는데, 커다란 하얀 테가 달 주변을 둘러싼 것을 역시 처음보고 저것이 무슨 신호 같은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추운 날 산책을 한다는 것이귀찮을 때도 있지만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을 봅니다. 굴뚝이 까만 하늘에 하얀 연기를 구름처럼 뿜어내는데, 그게 바람을 타고 흩어지면 한 편의 수묵화 같습니다. 집집마다 보이는 불빛들은 겨울밤을 밝혀 한층 더 따듯하게 보이네요.
겨울에도 대나무와 소나무는 여전히 잎이 있어요. 낡고 빛바래진 채 햇살과 바람을 맞는데 차라리 눈을 덮고 있을 때가 더 따듯해 보입니다. 꽃들은 사람에 비하면 한참 가녀린 몸을 하고도 생각보다 추위를 잘 견디더군요. 바들바들 떨면서요. 이제 그만 졌다 따듯할 때 피어나면 좋겠어요.
겨울 풍경에서 새들을 빼놓을 수 없죠. 까마귀들은 전봇대와 나무에서 서로를 찾으며 울고, 만나면 같이 날아오릅니다. 가까이서보니 정말 어디 하나 다른 색깔 없이 다 까맸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모를 이름으로 불리면서, 저는 실제로 까마귀들이 저들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며 살지 궁금합니다. 훨씬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반대로 우릴 뭐라고 생각할지도 궁금하고요.
운이 좋은 날 재작년부터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딱따구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날, 툭툭 거리며 나무를 쪼아대는 오색딱따구리를 세 군데서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대를 저버린 채 지내고 있었는데 나무를 쪼아대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이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나무 기둥에 옆으로 매달려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매번 같을 것 같아도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와 바깥으로 나서는 게 싫지만도 않습니다. 꼭 새롭지는 않더라도 보고 있으면 좋은 풍경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