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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겨울

by 샹송

언제인지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중에 무엇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별로 고민도 않고 일어나기 싫고 씻기 귀찮은 겨울보다는 차라리 땀나는 여름이 더 좋다고 했었다. 그 당시 내게 계절은 덥다 춥다 그뿐이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이라면 름은 이래서 겨울은 이래서 좋은데, 하고 고르길 망설였을텐데.


그때까지는, 내가 몇 살 때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여름의 더위가 꽤 견딜만했나 보다 싶었다. 겨울에는 옷을 껴입고서라도 바깥을 나갈 수 있지만 이제 여름은 아무리 가벼운 차림으로라도 바깥을 나서는데 큰 용기가 필요해졌다. 그러니 그런 점만 보면 겨울이 더 좋아졌다고 말해야겠다.


겨울날씨는 바람이 불고 안 불고에 따라 느껴지는 추위가 다르다. 단단히 옷을 챙겨 입어도 바람이 불어오면 어디든 시려오기 마련이었다. 눈물 날 정도로 매섭지 않다면 공기가 상쾌해서 좋다.


겨울은 해가 귀하니까 되도록 해가 비치는 시간에는 바깥에 있으려고 한다.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돈 주고 산 것처럼 햇살을 쬐어야만 아깝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햇살을 쬐어도 왜인지 이번 해는 유독 추위를 더 잘 , 풍경을 오래 바라다보거나 감상할 여유가 생겨나질 않는다.


다행히 지난 겨울들은 소록소록 쌓인 눈 위의 발자국처럼 내게 남긴 것이 있었다. 책으로 영화로 노래로 남은 겨울이, 나만의 겨울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또 처음인 것 마냥 어떻게 보낼까 하는 설레는 계획을 짜게 만들었고 찬바람이 불자 캐럴 자주 울렸다.


뒤로 갈수록 얄팍해지는 다이어리를 오랜만에 펼다. 미처 채우지 못한 달들이 휑하게 맞이한다. 몇 글자 채워 넣고 마무리를 짓고 나면 새 다이어리를 사서 새해 계획과 목표 같은 것들을 적어 내려가겠지. 첫 계절도 마지막 계절도 겨울이었구나, 새삼스레 겨울이 새로워졌다.


겨울 저녁 하늘을 바라다보면 달과 별은 유독 노. 그런 달이나 별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않는 걸 보니, 추워지면 낭만도 조금씩 쪼그라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따듯한 방에선 긴 겨울밤에 읽을 책을 침대맡에 쌓아놓고 보고 싶은 영화도 몇 편 골라놓으며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좋아하는 겨울이 좋은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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