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찬 바람이 부는 아침의 산책길은 햇살이 따스했다. 고요한 길 위로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자 동화의 한 장면처럼 평온한 세상이 되었다. 지저귐은 뒤섞였다. 다른 소리가 몇 가지나 되는지 세어보니 서너 개쯤 되었다.
잠이 더 깨어야 하는데 햇살이 따스해서 인지 되려 나른함이 몰려왔다. 그와 같이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초등학교 교실과 일 학년이 된 내가 떠올랐다. 이와 같은 어느 봄날이었겠다. 고개만 돌리면 보일 듯 교정을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렸다.
교실만 낯설었을 뿐 친구들은 모두 유치원을 같이 다녀 어색하지 않았다. 의자 없이 생활했던 유치원과 다르게 처음 책상과 의자에 앉게 되었고, 그 모습들은 의젓해 보이기 충분했다.
새 공책과 필통 안에 깎아 넣은 연필과 아직 반듯한 모양의 지우개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깨끗하고 빳빳한 교과서가 구겨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넘겼던 마음이 있었다.
국어 교과서를 펼치면 샛노란 병아리 그림이 있었다. 그때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겠지만 봄 볕이 내리쬐는 마당 한편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어미 닭과 병아리들. 뒤로 세워진 울타리와 개나리 그림은 초등학교 일 학년 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 아래로 동요 '봄 나들이'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거기까지였다. 설레고 따스한 봄날을 겪은 어린 나를 불러낸 짧은 몽상 같은 시간. 오래된 시절이 꿈을 꾼 것과 다르지 않게 남아있었다. 아직도 어릴 적에 꾸던 꿈이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꿈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