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흐릿한 날로 눈비가 온 덕에 작은 개울마다 물이 흘렀다. 구슬 굴러가듯 또로로 한 물소리에 땅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봄을 깨우는 청아한 소리에 걸음이 느릿해졌다. 나는 그 생명의 소리를 좋아했다. 생명력과 활기 넘치는 봄에 태어난 것을 항상 마음에 들어 했다.
기억 속 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스한 기운이 풍겼다. 긴장은 풀어지고 더는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되었다. 긴팔 하나 입으면 되는 알맞은 온도가 산뜻하게 몸에 배어있었다.
겨울을 지내며 그 봄을 기다렸는데 내가 기다리는 그 봄은 안 오고 다른 봄이 왔다. 기다려도 쉬이 오지 않았고 온다 해도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다. 따듯해지기 전에 더워졌고 맑기보다 뿌옇고 비가 오고 습해지다 여름이 되었다. 봄은 올 때마다 변해있었다.
어쩌면 쌀쌀하면서도 따스한 이 초봄도 봄을 즐기기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휑한 풍경이지만 분명 겨울은 가고 없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 날들이.
그럼에도 봄은 모든 것에서 배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바람에서 구름 뒤에 가려져있다 보이는 햇살에서 흐르는 물에서 쌀쌀한 아침저녁 공기에서 그리고 해 질 녘 노을빛 하늘을 바라보면 봄은 그곳에 제일 많았다. 내일 해가 뜨면 틀림없이 더 봄 같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