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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

by 샹송

사월 초에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했습니다. 부모님, 언니와 형부, 두 조카와 같이 여수를 갔다 왔습니다.


아빠는 가는 길에 화개장터를 들렀다 가자고 했습니다. 길 가득 산수유가 핀 구례를 지나자 하동의 벚꽃길이 나왔는데, 그렇게나 긴 벚꽃길은 처음 봤습니다. 벚꽃들이 참으로 하얗고 풍성했습니다.


거의 다 도착하자 화개장터로 가는 차들이 많아 밀렸습니다. 느릿느릿 이동하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물 위에서 쉬고 있는 있는 새들도 보고, 새싹이 돋아나 파릇파릇한 물가의 나무들도 봤습니다. 도로의 벚꽃나무들은 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흔들렸습니다. 바람에 꽃잎이 지자 차 안으로 날아 들어왔고 둘째 조카는 그것을 줍는 족족 주머니에 어넣었습니다.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부자가 된 기분을 느꼈겠지요. 나중에는 소용없다 느꼈는지 다시 창밖으로 날려버렸지만요.


풍경이 좋아 밀리는 차 안에서도 다들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같은 길 위에서 같은 풍경을 보고 모두가 그것을 예뻐하며 감탄했습니다. 각자가 행복한 사람으로서, 흔치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디에나 꽃잎이 휘날리는 오후였습니다. 장터 어딜 가나 꽃이 있었고 디에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꽃나무아래 다른 여행자들 피해 사진 찍고 다시 여행자들과 섞여 점심을 먹었습니다.

화개장터의 벚꽃과 매화


숙소 가기 전 향일암이라는 절을 가기로 다시 일정이 추가되었습니다. 높이 더 높이. 정말 오고 싶은 사람만 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향일암을 가는 길은 약간 숨이 찼습니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곳곳에 동백꽃이 지고 있었고 그 나무 뒤로 하늘 같은 바다가 떠있었습니다.


풍경은 어느 곳이다 다 멋있었지만 저는 어떤 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올려다봤습니다. 다시 절을 떠나는 내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해서 아쉬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오래 머물게 만들고 싶었던 풍경


숙소는 통유리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숙소에서 본 일몰


다음날은 케이블카를 탔고 또 오동도라는 섬에도 갔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동백열차를 타니 금방 섬에 도착했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바다


오동도 섬전체가 동백나무였습니다. 송이채로 떨어진 동백꽃은 진 모습도 예뻤습니다. 실제로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저는 왜인지 옛날부터 동백꽃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선명한 붉은 꽃과 초록색 이파리는 계속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싶었습니다.

동백꽃나무

다시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 바다가 보이는 큰 정자아래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간직한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조카들이 각자의 소원을 적는 동안 저는 곧 떠날 바다를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바다를 보자 마음이 참 평온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출발할 때보다 더 조용하고 짧았습니다. 동네로 접어들자 거의 다 피어가는 벚꽃나무를 보고 엄마는 꾀죄죄하다고 그러더라니까요. 작년까지는 보면서 예쁘다고만 하더니. 아마 너무나 풍성하고 긴 벚꽃길을 보고 와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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