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이어서)

정채봉

by 샹송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길손이는 아침밥을 먹고 바로 골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살며시 웃고 있는 보살님 그림을 발견한 이후로 매일 그랬습니다. 길손이는 그림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을 웃게 하고 싶어 토끼의 깡충거리는 걸음을, 목탁 치며 염불 하는 스님을 흉내내기도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가물가물 웃는 보살님이 길손이는 마냥 좋았습니다,


『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게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약속하지요? 내 소원은... 저... 엄마를...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저... 엄... 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 방에 드나들지 말랬지 않느냐."

"엄마가 있는데?"

"엄마라니?"

"우리 엄마..."

"탱화를 보고 하는 말이로군. 고 녀석 참... 그건 그렇고 너 내일은 혼자 있어야겠다."』


스님은 양식이 떨어져서 내일 저잣거리에 다녀와야 합니다. 길손이는 무서워 싫다고 했지만 스님이 잘 타이릅니다.


『"금방 갔다 오는 거야?"

"그럼, 금방 오고말고. 길손아, 내일 내가 없는 동안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찾거라. 알았지?"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이 오셔?"

"오고말고 네가 마음을 다하여 부르면 꼭 오시지."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인석아, 엄마가 아니고 관세음보살님이라니까."』



쌓인 눈이 마루에 닿다


스님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서둘러 절로 향했지만 폭설이 쏟아졌고, 스님은 길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느 농부의 집이었습니다. 스님은 어린아이가 혼자 암자에 있다며 그곳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농부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갈 수 없다며 단호합니다. 그날부터 스님은 앓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큰 절로 향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였습니다. 큰 절에서 감이를 데리고 관음암으로 간 것은 떠난 날에서 한 달하고 스무날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산은 눈이 녹고 봄기운이 돌았습니다.


『"스님, 냄새가 나요."

"사향노루 내음 말이냐?"

"아냐요. 우리 길손이 내음이어요."』


스님은 감이를 업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목탁 소리가 들려옵니다. 스님은 감이를 업고 숨 가쁘게 길을 걷습니다. 관음암 가까이 가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꽃비가 내리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냐? 길손이 네가 살아 있다니?"

스님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 하면 젖을 주고 나랑 함께 놀아주었어요."

길손이의 말이 떨어졌을 때였다.

뒷산 관음봉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소리도 없이 내려오는 것을 스님은 보았다.

여인은 길손이를 가만히 품에 안으며 말하였다.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꽃이 피면 꽃아이가 되어 꽃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과연 이 어린아이 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그때 감이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터졌습니다.


『"스님, 파랑새가 날아가고 있어요!"』


감이가 눈을 떴습니다. 감이는 햇빛도 스님도 볼 수 있었고 마루 위에 누워 있는 길손이도 보았습니다. 길손이는 엄마 품 안에 편안히 누운 것 같았습니다. 설악산에 꽃비가 나립니다.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사흘 후 길손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여러 절과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길손이가 골방에서 만난 관세음보살님을 향해 절을 합니다. 스님들은 이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그러나 길손이를 돌보아 온 설정 스님의 괴로움을 조금도 줄지 않았고 감이의 슬픔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정 스님은 부처님 공부에 대해서 다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감이는 막상 눈을 뜨고 보니 길손이가 설명해 주던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이 세상 풍경에 실망하고 더욱더 길손이를 그리워하였다.

오후가 되어 장작불이 타올랐다.

스님들은 모두 염불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절을 하였다.

감이만이 울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구월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