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린 아침이면 거실의 창을 통해 산을 바라본다. 눈 쌓인 풍경이 가장 멋진 곳이라 저절로 시선이 가는 것이다. 유명 산처럼 높고 깊지 아니하지만 가까운 곳에 올라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산이었던 곳에 길을 낸 곳이라 오르지 않고 평지를 산책할 수 있다.
밤새 쌓인 눈으로 뒤덮인 땅, 해도 뜨지 않고 바람기도 없는 춥지 않은 날이 있다. 나는 그런 날을 겨울의 완벽한 날씨라 부른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웅크리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있다.
차곡차곡 쌓인 눈이 같은 높이로 고르게 쌓인 것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그 위로 내 발이 닿자 주위가 금세 흐트러지고 지저분해진다. 그것이 하얀 세상의 유일한 옥에 티다.
물론 나보다 먼저 흔적을 남긴 이들이 항상 있다. 하지만 눈길 위의 고양이나 강아지, 또는 나뭇가지 같은 새의 발자국을 보고 흠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발이 자연을 닮아 그런 것이다.
더 안으로 걷다 눈 위에 유독 큰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본다. 그런 것을 발견하면 긴장이 좀 된다. 고요한 주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반응을 하게 된다. 이전에도 수 없이 왔다 간 존재일지라도, 흔적이 남았을 때만이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라면 용감한 마음이 필요하다. 게다가 깊은 산속도 아니고 인적이 없는 길도 아니라 동물들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길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구름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 한다. 해가 나오면 등지고 있어도 앞에 펼쳐진 눈으로 인해 눈이 부시다. 어느 사이 내리던 눈발이 잦아들고 빠르게 내리던 눈들이 느릿한 속도로 날린다. 빠른 화면에서 느린 화면으로 바뀌는 것 같아 세상은 달라 보인다.
한 차례 불어드는 바람결에 다음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찬바람의 기세가 누그러진 것이다. 조금만 겨울의 기세가 꺾여도 봄은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02.02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