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인 나는 어려서부터 자주 눈물을 쏟았다. 어른이 돼서 달라진 건, 덜 울기도 했지만 한번 울면 소리도 없이 오래 운다는 것.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 때문에 울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점점 나 때문에 우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이십 대 중반쯤 직장을 다닐 때 처음으로 나 때문에 울어봤던 것 같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자신의 몫을 해 나가는 사이에서 작고 초라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들이 내 기분을 눈치채는 게 싫었다.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티가 날까, 가난한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래서 자주 울면서 조금은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에 갑자기 노랫말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울고 싶진 않아, 다시 웃고 싶어 졌지. 당시에는 잘 모르던 노래였는데, 순간에는 다른 건 다 접어두고 그 노랫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쏟아내 날 만들지 말고 웃음으로도 만들고 싶어졌다.
물론 생각일 뿐, 노랫말 하나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면 청춘 영화 같았겠지만 결국에는 버티다 일을 그만뒀다. 그 덕에 웃음이야 금세 되찾았고.
이제 눈물은 채워질 때마다 한 번씩 비워내는 쓰레기통과 같아졌다. 모든 것을 다 흡수해 버리고 가끔씩 눈물로 버리는 일. 눈물은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순간의 감정에 바로 쏟아내기보다는 쌓아 놓다 울어 버렸고, 쌓인 감정만큼이나 오래 토해내고 나야 그쳤다.
울지 않으면 더 강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눈물도 습관일까 해서 참아도 봤는데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그만큼의 눈물이 언제고 다시 찾아왔다. 눈물이 많아서 손해 보는 것도 불편한 것도 특별하게 없지만 그래도 이왕 흘리는 거 기쁨의 눈물을 좀 흘려보고 싶다.
*신승훈 님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