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좋은 것들이라 다행이야"
겨울과 봄 사이
봄이 오는 걸 가장 먼저 알린 건 개구리였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들이 강가에서 합창을 하듯 울어댔고, 근처에만 가도 빈틈없이 개굴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꽃. 3월 초부터 꽃들은 눈에 띄게 피기 시작해 들판과 길가를 수놓았다. 원래 알고 있던 꽃들은 민들레나 진달래, 철쭉, 벚꽃 정도였고 대부분은 모르는 꽃들이라 Daum에 있는 꽃 검색 기능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교한 모양과 생생한 색깔들이 신기해진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꽃들조차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영롱하기만 했다. 그렇게 곳곳에 피어난 꽃들이 존재감을 과시할 때 가지마다 막 새순이 돋아난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에 돋은 연두색 새싹들을 보는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봄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들만 봐와서 그런지 싹이 나기 시작한 가지의 모습은 신기하고도 낯설었다.
연두색 새싹들은 무럭무럭 자라 금세 이파리가 되었고 주변을 온통 초록색으로 바꿔 놓았다. 나무뿐만 아니라 따뜻한 봄 햇살에 모든 만물이 쑥쑥 생장을 했다. 길가에 풀들이 자라나자 바람에 실려 싱그러운 풀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산책을 할 때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자주 듣고는 했다.
주변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나 역시 자라나는 식물이 된 듯 가슴 한쪽이 부풀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초록색이 좋아졌다. 눈은 마음을 따라간다더니 사진첩에는 이름 모를 초록색 식물들과 나무 사진들이 늘어났다. 그에 따라 좋아하는 시간들도 똑같이 늘어났다.
좋을 때만 있을 수 없는 삶에서 언젠가는 좋아하는 것들을 다 떠올려봐도 하나도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때 정말로 불행한 시간을 겪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 덜컥 겁이 났었다. 또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다 좋은 것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안심한 적도 있었다.
주말마다 강아지와 함께 하던 산책,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의 독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돌담 위로 생긴 나무 그림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애써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 돈이나 감정을 쓰지 않아서, 잃을 걸 두려워하지 않아서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시골을 좋아하던 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으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났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언제까지나, 어딜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모든 계절을 기다리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