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바깥 날씨가 너무 좋으면 야외에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일을 하다 허리를 펴면 산이 보이고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밭일이 그랬다.
봄부터는 부모님을 도와 밭일을 시작했는데, 몸이 힘들긴 해도 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때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면 힘든 대로 일하고 밤이 되면 고단함에 정신없이 잠들고도 싶었다.
쉬고 있으니 밭일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는데, 다만 엄마와 아빠가 일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아서 난감했다. 어딜 가나 처음 일을 배울 때는 자세하게 알려줬고 나는 그렇게 일을 배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일을 할 때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는 편이었고 그건 밭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엇인가를 다시 물으면 엄마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내가 하던 일을 혼자 마무리 짓기도 했다. 아빠는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서 큰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처음이니까 서툰 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힘들게 일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실은 부모님도 자세하게 농사를 배워본 적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저러한 이유로 고사리 꺾는 일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특별히 조심할 것도 없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일. 혼자 꺾으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그만큼 힘도 들지만 넓은 밭 한가운데서 혼자 고사리를 꺾는 시간은 꽤 낭만 있는 경험이었다.
한 번씩 불어오는 바람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방해도 없는 고요한 시간. 급하게 할 것 없이 쉬엄쉬엄 해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게 힘이 들지만 힘든 만큼 차곡차곡 고사리가 쌓이면 그게 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사리를 꺾은 날이면 마당 한쪽에 솥단지를 올려놓고 물을 끓였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름 모를 새가 전선줄에 앉아있다가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로 푸드덕 날아가는 시간 때였다. 바람이 차지도 덥지도 않게 알맞게 불어오면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나고, 나는 마당에 앉아 산책 중에 선물처럼 만났던 찔레꽃과 아카시아 향기를 떠올려 본다. 물이 끓고 솥에 고사리를 넣으면 그때부터 마당에는 고사리 삶는 냄새가 퍼지고 그러면 꽃 향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해질 무렵 고사리 삶는 풍경을 평생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궁이 앞에 불을 때느라 쪼그리고 앉은 아빠와 고무장갑을 끼고 다 삶아진 고사리를 건져내는 엄마. 내가 없는 동안에도 허리 숙여 고사리를 꺾고 마당에 불 피워 고사리 삶았을 걸 생각하자 내 앉은자리가 빈자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