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

by 샹송

시골에서 지내면서 유일하게 도시에 가는 일은 언니네 집에 가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사과 수확에 바빠 혼자서 언니네에 갔다. 어린이집 다니는 둘째 조카를 잠깐 봐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며칠 지낼 방에서 첫째 조카가 어버이날 언니 내외에게 쓴 편지를 봤다. 편지가 원목에 쓰여서 액자처럼 놓여있었기에 안 볼 수가 없었다.


세 줄짜리 짧은 편지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어릴 때 나도 써 본 말이었고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었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뇌며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어버이날 전에, 학교에서 늘 부모님께 편지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편지가 남아있지 않으니 어떤 말을 썼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도 열한 살 때라면 조카와 비슷하게 썼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부모님이 나를 잘 못 키워줘서도 아니고 내 삶이 남들과 달리 유독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의 의미를 배우면서 감사의 의미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날이라 배워서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에 따라오는 대답은 왠지 그래, 감사하면 나중에 커서 효도해야지? 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조카의 편지를 보면서 서, 너 살 때의 볼살이 통통하고 혀 짧은 귀여운 소리를 내던 조카를 떠올렸다. 말 한마디로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고 존재만으로도 너무 소중했던 작은 아이를.


태어남에 감사해야 하는 건 아이보다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효도라는 빚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안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지만 누구나 좋은 일이 더 많길 바란다. 배고픔보다는 배부름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차가움 보다는 따뜻함을 더 많이 느껴봐야 한다. 자라나는 모든 것 들은 그렇게 자라나야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봐야 나중에 잃었을 때도 잊었을 때도 되찾을 수가 있다.


어릴 때는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아닌지 커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릴 적에 누군가 내 손을 꼭 붙잡고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 말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그 말 자체가 행복의 씨앗이 되어서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럼 그 말해준 이를 평생 잊지 않고 내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짧게나마 글로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 18화"사과는 늦가을에 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