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계절이 되자 바빠졌다. 벼와 깨를 타작하고 고구마를 캤고 콩을 땄다. 새들은 저들이 더 신이 나서 밭과 들을 바삐 날아다녔다.
우리 집은 사과농사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사과를 수확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사과는 이틀 품을 사서 따기로 했고, 혹시 그 이틀 동안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할까 봐 엄마와 나는 며칠 미리 따기 시작했다.
그때가 시월의 마지막 주였다. 여름이 지날 무렵부터 왜 아직까지 따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사과는 원래 늦가을에 따는 거란다.
오월만 해도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뤘던 나무마다 사과들이 보기 좋게 열려 있었다. 빨갛게 익은 사과 하나를 따서 반질반질하게 닦아내자 향긋한 향이 풍겼다. 한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예쁜 향기였다.
사과 꽃
수확한 사과
품을 사서 사과를 따는 날이 되었다. 나는 사정이 있어 첫째 날 오전에만 일을 도왔다.
제일 늦게 밭에 나타나자 일을 하러 온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야 부모님이 민망해하지 않으실 테니까.
왜 집에 와 있느냐는 식의 질문, 시집을 갔는지 안 갔는지 묻는 말들에는 이미 익숙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대신해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그게 나름 부모님의 배려였다.
일을 하는 내내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아 화기애애했지만 되려 그런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았기에 줄곧 주어진 일에만 집중을 했다.
모두가 둘러앉아 점심을 먹을 때 홀로 집으로 갔다. 밭을 벗어나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고 나도 모르게 휴, 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사과는 늦가을에 딴다. 수확할 만큼 크기가 커지고 달아져도 기다린다. 햇빛에 더 빨갛게 색이 입혀지기를 기다리는 거라고 한다.
빨간 사과는 거짓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자연 안에서 부모님의 두 손으로 만들어진다. 나도 그렇게 거짓 없이 자라났다.
가을 햇살이 온 대지에 내려앉았다. 나는 사과처럼 햇살을 가득 머금고 익어가고 있었다. 예쁜 색이 입혀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는 거겠지, 괜찮아.
괜스레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