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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Aug 11. 2020

죄송한데 파인애플 빼주세요

필자는 피자를 무척 좋아한다. 박스 쿠폰 모으던 시절에는 주말마다 시켜먹어서 비싼 프리미엄 메뉴를 공짜로 먹기도 하고, vip가 되어 치즈 토핑도 무료로 푸짐하게 받아봤다. 피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메뉴를 먹어본 것은 아니다. 제일 무난한 슈프림, 콤비네이션, 가장 즐기는 페퍼로니, 가성비로 으뜸인 코스트코 피자 등, 도미노 파파존스 같은 데서 가끔 만드는 신메뉴에 호기심으로 먹어본 것 말고는 거의 오리지널 메뉴만 먹는다.


동네 피자집들이 늘어나면서 각양각색의 메뉴들이 등장했다. 오리지널 외에는 메뉴에서 명시된 재료에 따라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양하게 신메뉴 먹어보고 괜찮다 싶어도 두 번 세 번 더 시킨 적은 없었다. 정말 맛없는 피자를 만나 한번 크게 혼나고는 섣불리 신메뉴에 호기심을 들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먹어본 신메뉴 피자 중 최악으로 기억에 남는 피자. 인간의   호기심은 비극을 불러온다


요트는 바람과 흰 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도
피자는 도우랑 치즈만 있으면 뭘 올려도 다 피자냐?!

 


보기만 해도 고개가 가로저어지고, 나름 피자를 많이 먹어봤기에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대략 짐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선입견을 부수고, 신박하고, 맛도 좋았던 것들도 몇 개 있다.


지금은 없지만 동네에 있었던 이태리 음식점의. 라즈베리 바나나 피자.

단짠의 조화가 적절했다. 뒤에서 역설할 하와이안 피자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치즈와 소스와 두 과일이 잘 어울렸다.


스패뉴의 초콜릿 피자. 

같이 간 친구가 강력히 추천하고 시켜서 마지못해 먹은 것이다. 혼자였으면 절대로 안 시켰을 것이다.

피자 좋아한다. 초콜릿 좋아한다.

헌데... 피자랑 초콜릿? 녹차 괜찮지 아이스크림 좋지. 근데 녹차 아이스크림?!! 과 같은 느낌?

 

그런데 정말 의외로 맛있었다. 앞서 라즈베리 바나나가 단 맛이 피자의 짠 걸 방해하지 않는 바람직한 동거였다면, 이것은 단짠이 완벽하게 조화되었다. 초콜릿의 단맛과 피자 치즈의 짠맛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았다.


고르곤졸라와 꿀처럼 단짠의 조화를 피자에 적용한 메뉴가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메뉴 한 가지가 있다. 

도무지 피자를 입에 대기 시작한 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친해지고 싶지 않은 토핑.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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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

 

파인애플 되시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피자가 하와이안 피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 문에 붙어있던 '피자 씨'에 전화로 물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피자가 뭐가 있나요? 

돌아온 대답이 하와이안 딜라이트였다. 실제로 그 메뉴에 적힌 설명은 '여성과 아이들이 좋아하는'이라고 적혀있다. 엄마가 아이가 좋아하는 걸 물었으니, 아마 엄마도 같이 먹을 거라 생각한 직원이 나름 최선의 선택을 준 것이었다.




피자를 본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고 파인애플을 먹어 본 기억도 없음에도 본능적으로 파인애플을 치웠다. 그 시절 에는 단짠의 조화에 혀가 각성하지 않았었고, 사실 각성이 이루어진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친해져 보려 억지로 물고 씹어본 적이 여럿 있었지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포기했다. 혹시나 피자를 같이 먹는데 하와이안을 시키면 농담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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