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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Nov 09. 2020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외할아버지는 가끔 우리 집에 전화를 거셨다. 용건은 항상 같았다. 

내가 밥 잘 먹는지. 

'울 엄마만큼 밥 잘 챙겨주는 사람도 없을 텐데. 외할아버지가 잘 모르시네.'

수년에 걸쳐 걸려오는 전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또 시골에서 전화 오면, 

‘어휴, 할아버지. 또....’ 하면서 받는다. 

첫마디는 어김없이 “용이니(옛 이름 용현이) 밥 잘 뭉느나?” 

익숙해진 나는 적절히 타이밍 재고 있다가 “네 할아버지”라고 대답한다. 

전화 주시는 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잊을 만하면 왔다. 

잘 지내나, 공부 잘하나 등등 다른 것도 물어보실 수 있는데 

궁금해하시는 건 꼭 한 가지셨다, 


밥 잘 뭉느나?


왜 그러셨는지 나중에 의문이 풀렸다. 어릴 적에 밥을 잘 입에 넣지 않던 나를 걱정하셔서 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외할아버지는 손주들 가운데 내게만 특별하셨다. 심지어 외삼촌 결혼식날 내가 시름시름 앓자 식장에서 나와 시장에 가서 가물치를 삶아 오시기도 하셨다. 


그런 외할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위암 말기십니다. 얼마 못 사십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한 시점부터 병원 계단에서 엄마와 외삼촌, 그리고 병실의 외할아버지 모습 모두 드라마에서나 봤던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싸게 가래이" 보내시던 모습이 마지막 목소리였다. 외할아버지의 온전하신 모습도 마지막이었다. 

급격히 나빠지신 상태로 시골병원으로 옮겨지셨고, 얼마 뒤 돌아가셨다. 

그 날이 평일이었고, 나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임종의 순간에도, 장례식에도 있어 드리지 못했다.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로 엄마가 울었을 순간에도 함께 목놓아 울어드리지 못했다.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지금에야 감사함을 느낀다. 그 시절 꾸준히 보내주신 외할아버지 사랑에, 돌아가신 지 십 수년 지난 지금도 떠오르는 생생한 그 목소리로 외할아버지 얼굴이 잊히지 않음 감사한다. 


곁에 있다 없어진, 인생에서 특별했던 사람의 목소리는 항상 나를 향했던 그의 진심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의 이미지를 다시금 또렷하게 보여준다.




Photo by frank mckenna on Unsplash


https://brunch.co.kr/@attitude-hyo/252 를 수정하고, 감정 형용사 제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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