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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Aug 13. 2020

시를 지으면서 마주해본 나

마주한 진심으로부터 도망친다.


거울에 비추어 아름다웠던 나의 모습이

너를 향했을 땐

날카로운 창끝으로

유리잔 같은 너의 심장을 깨뜨려

파편에 다칠까 두려워 도망친다.



나는 고백을 잘 못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매우 강렬하고,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에 기분 좋아하면서도 그 진심을 외면한다. 자존감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모습이 너무 상상하기 싫고 고통스러울까 봐 자칫 지금의 가까운 거리마저 멀어질 까 봐 두려움만 가득 찼다. 도망치는 이유는 항상 있었다. ‘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하며 웃어 보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반대급부를 모두 각오하고서 고백을 했으면 어땠을까.



나의 진심은 때로는 무섭고 흉측해서

이내 손으로 앞을 마구 휘저으며

근사한 옷을 걸친 마네킹을 찾는다



지하철을 타면, 자리에 앉고 있을 때 앞에 누가 설 때, 사실 대충 알 수 있다. 젊은 사람인지, 임산부인지, 나이 드신 분인지. 임산부에게, 나이 드신 분에게 양보 하긴 하는데, 내가 확신하건대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우러러 나온 양보심이 아니었다. 임산부는 양보 안 하면, 사진 찍혀 인터넷에 돌아다닐까 봐. 


노인의 경우에는 외조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분들을 추억하며. 


몇 년 전에는 엄마가 다리와 무릎이 불편하셔서 걸을 때마다 힘들어하시는걸, 매번 병원을 동행하며 의사로부터 이야기도 듣곤 했다. 그러고 나니 엄마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실 때 젊은 친구들이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으면 서있는 내내 힘드실걸 생각하니, 앞에 계신 분도 그런 불편함을 겪는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닐까 해서 자리를 양보하곤 했다. 그러한 걸 보고 거기서 비롯해 양보하는 과정에서 조차 기꺼운 마음이 아닌 것이 싫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도움이나 심부름을 안 해주었을 때, 상대가 처하는 상황, 내가 얻는 이득. 뭐 휴식이나, 다른 일을 하거나, 비용 절약 등이 있겠지. 그런데 상대가 처한 상황이 딱하게 느껴져서 진심이 아닌, 마지못한 심정으로 손길을 건넨다. ‘세상을 착해서 만은 살아남을 수 없어’ ‘넌 좀 약을 필요가 있어’ 그래 그때마다 내가 냉철하게 나에게만 집중했다면, 그 시간들 에너지 비용 들을 내게만 썼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었을까.



나의 진심은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춰

태양빛 비추며 허우적 헤매다가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호숫가마다 달려든다.

이내 신기루임을 알고 점점 몸을 태워가는 태양빛을 피해 도망친다.



나는 진로가 자주 바뀌었다. 아니면 하는 것이 있는 와중에도 아니다 싶은 것을 다른 그럴싸한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노력이 부족하였던 것을 나와 맞지 않아서 내 길이 아니라 하여 매몰비용 들을 애써 외면했다. 원래 나는 고질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도, 내가 원하는 것은 옆사람과 앞사람이 원하는 것과 같은 척했다. 


20대 창창하니 아직 나는 다른 것 뭐든 할 수 있다 고 자신했지만, 요즘 들어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 그 시절 내 젊음은 그렇게 파릇하고 싱그러운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안 하면서 정작 벌어먹으면서 할 일은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니. 하고 싶은 게 아닌 것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것들이었다. 그리고 challeging 하지 않았다. Challenging 했던 것은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았고 말이다. 


나이에 쫓기고 자존감에 짓눌리는 것은 형편없다고 생각해서다. 예전에는 내 모습이 그렇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내가 보낸 시간들과 순간순간의 내 자화상이 그렇다고 본다. 사람들을 많이 안 봐서 그런가, 다른 이들은 애써 포장지를 둘러친 나를 꿰뚫어 보는 것도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 애쓴다. 내 삶 속의 여러 가지를.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을



나의 진심은 굴광성이 짙어서

올곧아 굽이침이 없는

한줄기 대나무가 필요하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하고자 하는 게 바뀌고, 스케줄이 바뀌고, 심지어 진로도 바뀌곤 했었다.

예전에 청견 했던, 스님이 말씀하셨다. 

사내는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음이 대나무와 같아야 한다   


이제 서른을 넘어가니, 빛이나 음지 따라가지 않고 오로지 뻗어나가고자 하는 한 곳 만을 향하겠다.



내 마음 순수히 지켜가며

너의 마음을 온전히 가질 수 있게

나는 이제 진심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


Photo by Nijwam Swargia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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