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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May 08. 2021

킥보드 타다가 앞니가 부러진 부부

응급실, 부부의 보은 그리고 나의 반성

어린이날에 단지 근처를 지나가다가 어떤 여성이 입에서 피 흘리며 넘어져 있었다. 곁에서 남성은 어쩔 줄 몰라하며 계속 사과하고 있었다. 둘은 부부였고 각자 탄듯한 킥보드 2대가 같이 쓰러져 있었다. 여성은 앞니가 3개나 부러진 상태였다.


남성분이 계속 미안해한 이유는 아마도 둘이 타다가 부딪혔거나, 아내가 타기 싫다는 걸 억지로 타자했다가 사고가 났거나 했으리라. 요즘 도로에 흔히 보이는 킥보드 라이더들처럼 안전모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안전모를 썼더라도 피할 수 없는 부상이었다. 킥보드 타는 사람들 정말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고 난 곳은 인적이 드문 아파트 단지 외곽이었고, 우리 가족이 차로 이동하다가 사고 직후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휴일이어서 일단 급히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피투성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이는 이빨 조각 몇 개도 주워서. 십년감수한 남편은 아내가 당장은 우선이기에 나중에라도 신세를 갚고 싶었는지 아버지 명함을 받아 갔다.


이틀 지나 아버지 회사에 부부가 찾아왔다. 과일 한 바구니와 봉투를 들고. 봉투는 처음에는 편지가 들었을 줄 알았는데 들고 와서 열어보니 현금이 들어있었다. (과일 바구니는 이미 해체된 직후라 사진으로 대체) 빠르게 이빨을 가지고 와서 치료를 해서 부상이 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마주친 거긴 하지만 타이밍이 좋았고, 신속하게 일단 응급실로 향하는 아버지의 기지 덕분이었다는 걸 부부도 잘 아는듯했다. 그러나 현금을 받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서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 사양의 뜻을 표했다. 부부는 나름 표현을 다 할 수 없는 감사함을 어떻게든 표시한 거라 받아주길 애원했다.


하지만 남의 돈 함부로 받지 않기를 당신들의 인생에 철칙 중 하나였고, 우리 형제에게도 굳게 가르친 부모님이 뜻을 굽힐 리 없었다. 어차피 서로 사는 단지가 붙어있어서 가까우니 우리 아파트 건너에 유명한 간장게장 집에서 나중에 식사하는 걸로 합의했다.


보은의 과일 바구니에 감사해하는 통화를 들으면서 홀로 반성했다.


사고 당일 응급실에 데려다준 뒤 돌아오는 길에 연락이 왔었다.

"사장님, 혹시 그쪽에 다시 갈 일이 있으신지요?" 아버지는 용건을 물으셨고, 남은 이 조각을 찾아달라는 이야기였다. 예약한 점심 뷔페 시간이 임박한 와중에 그런 통화가 와서 잠시 격앙되었다.


아니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자란 다고, 이 부러져 피나는 거 (내가 운전 안 했지만) 데려다줬더니 부러져나간 이빨 내놓자란 다고 라임 척척 맞네 아주.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까지 나갔다. 나도 젊은 편인데 (머쓱) 얼마 뒤 다시 전화가 왔는데 본인도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죄송하다고.


오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양심은 좀 있네 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인성 논란은 그 부부가 아니라 내가 맞게 생겼다. 이 부분은 괜히 얘기했나 싶네.


아무튼 혼자 엉뚱하게 급발진한 것은 잘못했다. 평소에는 우리 가족이 안 좋게 이야기할 때 좋은 쪽에서 해명을 대신해주는 나인데 아직 나의 온전한 성품으로 정착되지 않은 모양이다.  


들어보니 부부는 내 동생과 과는 다르지만 학교 동문이었다. 단지도 가깝고 분위기 봐서는 식사 자리 꼭 생길 거 같고, 동문이라니 동생도 만나보고 싶어 한단다. 기왕이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갔으면 한다.


Photo by zero take on Unsplash

Photo by Bryan Burg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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