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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Nov 06. 2021

시간을 들여 꾸준히 쌓은 경험 - 편입시험 합격기

CAUTION: 12년 전 이야기라 지금의 편입시험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12년 전 학교 다니면서 편입 공부를 병행했다. 문과는 영어만 하면 되지만 나는 이과였기 때문에 수학도 같이해야 했다. 학교를 병행할 수 있었던 건 기초가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영어의 경우 어휘가 많이 부족했지만, 문법이랑 독해가 제법 괜찮았다. 수학의 경우 재밌게도 재수까지 하고, 점수 맞춰서 들어간 자연과학대에서까지 3년을 배운 미적분이 큰 도움이 되었다. 


편입수학의 범위는 공대 2, 3학년 수준까지 포함하는데 이걸 1년 미만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려니 강사들 대부분 주입식으로 가르쳤다. 전공이 아니면 독학으로 고난도 문제를 풀만큼 실력을 올리기 쉽지 않았다. 편입 수학 범위 대부분이 미적분에서 출발하기에 공식 따위를 주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서 금방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물론 혼자서 원리와 공식 요약집에 유형 정리까지 하는 등 열심히 하기도 했다. 


영어도 비슷했다. 영어문제 유형은 문법, 어휘, 논리, 독해로 나뉜다. 논리는 독해의 빈칸 문제 축소 버전이다. 문법은 고등학교 때 하나도 맞추지 못하는 것에 오기가 생겨서 고2 때 집중적으로 파서 얻은 실력이 편입에서까지 유용했다. 독해도 재수와 더불어 학부에서 필수 교양이었던 영문 독해 수업을 들어서 얻은 스킬이 통했다. 무엇보다 영어에서 메인은 독해였기 때문에 편입시험 시작부터 7,8할은 먹고 들어온 셈이었다.


나머지 2할 정도를 채우기 어렵게 만든 것이 어휘였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단어 암기를 게을리했었다. 심지어 편입시험 단어는 어려웠다. 매번 문제 풀 때마다 단어장에 적는 단어는 늘고, 본 적 있는 단어들도 새로웠다. 같은 강의 듣는 다른 사람들은 강사가 동의어 물어보면 술술 읊었다. 어휘 시간만 되면 쭈구리가 되었다.


월례고사나 기출 풀이마다 단어 하나를 몰라서 틀리는 문제가 늘기 시작했다. 방학을 앞두었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2학기에도 학교를 계속 병행하려던 나로서는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가 중요했다. 나는 부족한 어휘를 보완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편입에서 투 탑 어휘 교재가 있었다. 보카바이블과 MD. 어느 것이든 단어 개수는 무려 33000개. 일단 시작했다. 




어렵게 공부하면 잊히기 어렵다


내가 이걸 그 당시에 안 것도 아니었고, 망각곡선이나 인지과학, 뇌과학도 당연히 알리 만무했다. 그냥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했었다. 하루 한 챕터씩 외웠다. 어떻게? 백지에 손으로 책의 한 챕터 자체를 모두 쓸 수 있을 때까지! 편입시험 아니라도 보카바이블은 많이 볼 테니 공부해본 사람은 알 거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덮고 손으로 써보고, 다시 보고 손으로 써보고 덮었다 폈다 쓰다가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써보고, 단어 하나하나가 아니라 박스 단위로 이미지가 떠오를 때까지 했다. 됐다 싶었을 때 상담 데스크에 학습매니저한테 백지를 들고 가서 써내면 그날 합격. 


강사는 그냥 눈도장으로 수백 번 반복하랬는데 무시하고 손이 피곤한 공부를 했다. 결과론 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공부, 학습에 있어서 하나의 확실한 방법론을 몸소 실천해서 체득한 셈이었다. 


사실 쓰면서 자주 '이렇게 쓰면서 하는 거 비효율적인가?' '그냥 눈으로 볼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었기에 잦은 유혹에 시달렸다. 점심 먹고 단어 공부하면 저녁시간. 5시간 정도 걸렸다. 어휘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 계획했음에도 막상 공부하면서는 뭔가 어휘만 외우는 게 더딘 전진이라 느꼈다. 하지만 계속 썼다. 눈으로 보면 계속 휘발유 증발하듯 까먹을 것이 뻔했다. 


방학 40여 일 동안 그렇게 5시간 매일 어휘를 쓰면서 외웠다. 계획한 바대로 개강 전에 보카바이블 33000개를 통째로 외우는 데 성공했다. 시험 보는 날까지 더 이상 단어장을 따로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어휘 수업 시간에 동의어를 물어보면 다른 잘하는 사람들처럼 술술 나왔다. 어휘 문제도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 머릿속의 어휘들은 이듬해 초까지 꿋꿋이 자리를 지켰고, 나는 지원한 학교들에 모두 합격했다.




Photo by Romain Vign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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