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반이지만 이 책의 전개 방식은 스펜서 존슨의 <선택>과 유사하다.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젊은이에게 지혜로운 노인이 다가와 조언을 들려줌으로써 그의 인생을 고쳐주는 흐름이다.
줄거리 요약
추운 겨울 돈이 없던 젊은이가 노인의 도움으로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챕터의 주제가 전해진다. 자판기의 따뜻한 밀크티가 1000원인데 젊은이는 900원밖에 없었다. 노인이 100원을 건네준 덕에 젊은이는 주저 없이 밀크티를 뽑아 마시려 한다.
사실 젊은이에게는 3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1) 밀크티를 마시거나, 2) 여기서 좀 떨어진 마트에서 따뜻한데 더 싼 음료를 사서 추위를 달래거나, 3) 1000원을 그대로 가진 채 집에 가서 따뜻한 물을 마실 수도 있었다. 즉, 노인의 100원이 없었다면 1000원짜리 밀크티를 사는 것으로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소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소비를 하는 이유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책에서 선택지가 많아지면 오히려 선택에 있어서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수중에 돈이 적으면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을 충족해야 하기에 중요한 것을 선별한다. 그런데 돈이 많아져서 선택지가 늘어나면, 그간 억눌렀던 욕구들이 솟아나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하게 된다. 예컨대 방에 두면 예쁠 거 같아 장바구니에 둔 무드등,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는 데 그냥 사는 책들, 기분에 따라 계산한 직장동료들 저녁식사 등이다.
선택의 역설은 시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4000주> 초반부에서 저자 올리버 버크먼은 옛날보다 기술 발전으로 일의 효율도 늘고 생산성이 늘었음에도 왜 사람들은 여전히 바쁠까 의문을 던진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남게 되어 다른 것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의 일들 소요시간이 줄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아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는 소비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돈을 번다. 그전에는 어떤 도움으로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다 해도, 원래의 선택지에 머무르는 편이 좋다.
물론 돈이 많아졌을 때도 무조건 돈이 부족하던 시절대로 소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점심값을 아끼려고 삼각김밥만 먹다가 주머니가 두둑해졌다면 돈을 더 지불하여 영양가 있는 한식정식을 먹는 선택이 더 낫다.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로 1시간 가는 대신 택시로 20분밖에 안 걸린다면 택시가 더 좋다.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용시간도 늘리고, 건강도 챙기는 등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단순히 쓰는 돈 액수만 가지고 일률적으로 소비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보다 바람직한 소비를 하는 방법
지금 이 소비가 내가 삶에서 목적하는 바에 부합하는가? 더 쉽게 말해서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소비인가? 진지하게 묻고 답해보면 된다.
보충하면, 책에서 젊은이는 사실 상당한 빚이 있었다. 그런 그가 1000원이 생겼다고 해서 밀크티를 뽑아 마시려는 행위는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장 얼어 죽게 생겼는데 그 밀크티 하나로 살아서 노인에게 감사하며 마음을 다잡고 재기에 성공한다는 결말로 스토리가 이어진다면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자신의 현재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내린 판단은 습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결국 밀크티를 뽑아 마신 젊은이는 나중에 120원으로 갚으라는 노인의 말에 100만 원으로라도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 역시 기분에 따라 내뱉은 말이다. 들으라는 듯이 노인은 "그러니 망했군"이라고 말한다. 단 몇 마디 대화로 노인은 젊은이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부자의 그릇>이다. 그릇은 보통 어른들이 사람 됨됨이를 평가할 때 쓰는 말이다. '쟤는 그릇이 못 된다.' '쟤는 나중에 00할 그릇이다.' 앞으로 젊은이, 책의 독자들에게 부자들만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것이 노인의 역할인 듯하다.
목돈을 잘 모으는 사람들은 쓰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돈을 아끼고 모은다. 당장 자산 얼마냐에 상관없이 그들 모두 부자의 그릇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불필요한 소비는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목적에 따른 우선순위를 망각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많이 사는 나는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족족 사들였다. 지금은 일단 장바구니에 놓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괜찮다 싶은 책만 골라낸다. 그마저도 지금 말고 나중에 읽어도 좋겠다 싶어 내버려 두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사지 않고 심지어 잊어버리기도 한다. 사실 그 책들은 내게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 꾸물거림과 방치하는 것은 지양할 것으로 취급되지만 이처럼 재테크에서는 예외다. 내가 얻은 실천할만한 교훈은 2가지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걸 주저하고
장바구니에 있는 물건들은 당분간 방치하자
사람이 자극을 받아들이고 판단을 거쳐서 반응하기까지 시간은 매우 짧다. 그러니 습관적인 사고회로가 올바르게 작동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이 계속 쌓일 것이고, 그에 따라 돈도 계속 쓸데없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소비습관을 고치고자 한다면 매장에서 물건을 집거나 온라인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반드시 12년 전의 김주원 회장을 소환하자.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사진: Unsplash의Sugan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