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약한 사람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왜 그런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책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한 번 정리해 보자.
미국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비슷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차별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한 여성 노동자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팠다.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가정 남학생들 또한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포함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팠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한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저자는 시카고에서 1995년 폭염으로 인해 700명이 사망했지만 1999년에는 110명에 그치게 된 사례를 소개하며,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의 성과라 설명했다.
그리고 낙태, 대량해고, 위험의 외주화, 직업병, 의사나 소방공무원, 세월호참사 등을 주제로, 각 주제별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그것이 건강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이 문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읽어보니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이고 매우 치밀한 논리로 혐오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동성애를 향한 비과학적 혐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자세하게 기록을 남기고 싶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던, 그리고 정말 비과학적이고 심각한, 제발 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와 그로 인한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만약 그들이 변하길 원한다면 사악한 삶으로부터 치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 아들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바비에게 해준 말이었습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말했을 때 제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저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8개월 전, 제 아들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저는 게이와 레즈비언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는 걸 깊이 후회합니다. 제가 듣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편협한 생각과 비인간적인 모함이었습니다. 바비의 죽음은 그 부모가 가지고 있던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중
위 영화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동성애자를 아프게 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의학계의 입장은 이렇다.
미국정신의학회 : 동성애가 그 자체로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을 개탄하며, 그러한 판단력, 능력, 신뢰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에게 더 많이 지워서는 안 된다. 나아가, 지방, 주, 연방 수준에서 동성애자인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보호받도록 보장하는 민권법의 제정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또한 미국정신의학회는 서로 합의한 성인들 사이에 사적으로 행해지는 성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모든 법률을 철폐할 것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세계정신의학회 World Psychiatric Association :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영속시킨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이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과 행동을 병리화하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수 십 년이 지났다(APA, 1980). WHO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WHO, 1992). 유엔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2012). 두 주요 진단 및 분류체계(국제질병사인분류 ICD-10와 DSM-V)에서는 동성에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 그리고 성별 정체성을 병리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
대다수의 경우 개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인지하게 되는 10대에 이미 성적 지향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성애자가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이성애자가 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의학계 입장이지만,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을 중심으로 동성애 전환치료는 계속 행해졌고, 그 과정에서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었다.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동성애 전환치료를 주도하는 가장 큰 규모의 탈동성애 운동 ex-gay movement 단체였다. 그런데 2013년 6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그동안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 사과문에서 단체의 회장 인 앨런 챔버스 Alan Chambers는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의 활동이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긴 무지로 인해 성소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동성애가 AIDS 주범이라는 비과학적 낙인에 대해 살펴보자.
AIDS 환자가 처음 발견된 1981년 6월. 미국 로스앤젤 레스의 몇몇 병원에서 5명의 남성 동성애자가 면역력이 정상인 일반인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폐포자충렴Pneumocystis carinii pneumonia 등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그 5 명은 공통적으로 T-림프구 숫자가 현저히 떨어져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당시에는 원인인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으나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흔한 감염병이라는 뜻으로 '동성애 질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3년, 그 원인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HIV 감염 이후에 질병이 진행되면 면역 세포인 CD4 양성 T-림프구가 파괴되어 환자의 면역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여러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 규명되었다. 이와 관련해 HIV 감염 이후 질병의 진행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AID 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발견된 첫 AIDS 환자는 1981년 미국의 동성애자였지만, 1970년대 후반에 케냐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는 사실이 이후에 알려졌다. 원인인 바이러스 규명과 함께,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자연히 HIV 감염을 동성애 질환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의학적으로 근거를 잃게 되었다. 동성 간 성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HIV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며, 파트너가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성 간, 동성 간 성관 계 모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HIV/AIDS와 관련하여 생겨난 동성애자에 대한 비과학적인 낙인이 사라 지게 된 또 다른 결정적인 계기는 치료법의 개발이다. 이제 HIV/AIDS가 걸리면 몇 년 이내로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질병 발생 이후에도 수 십 년을 더 살 수 있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HIV/AIDS 와 관련해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퍼뜨리는 이들이 있다.
전 세계 115개국 3,340명의 남성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를 처벌하거나 성적 낙인 sexual stigmao 높은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은 콘돔과 윤활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낮고, HIV 검사에 대한 접근성 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UN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슷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진 아프리카와 캐리비안해 지역 국가들 중에서도 동성애를 처벌하는 국가는 처벌하지 않는 국가보다 HIV/AIDS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즉, 현실에서는 동성애가 HIV/AIDS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동성애 혐오와 차별이 HIV/AIDS 유병률을 증가시키는 원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