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미국변호사가 들려주는 미국소송 이야기
미국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정말 많은 종류의 모션(Motion)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의 민사소송 절차에서는 1대 1로 매칭하기 어려운 개념인지라 한국의 변호사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겠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 변호사로 일할 당시에는 "미국소송" 하면 "디스커버리"는 쉽게 떠올랐어도 "모션"에 대해서는 자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특허소송 기사를 찾아보다 보면 약식판결신청(Motion for Summary Judgment : MSJ) 정도에서나 모션이란 말을 들어봤었고, 그마저도 MSJ 자체를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지 이것이 수많은 모션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럼 대체 이 모션이란 것이 뭘까? 법률적 의미로 사용되는 모션이란 "In United States law, amotionis a procedural device to bring a limited, contested issue before acourtfor decision. It is a request to the judge (or judges) to make a decision about the case." (Wikipedia) 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석하자면, 어떤 제한적이고 이론의 여지가 있는 이슈에 대하여 법원의 판사로 하여금 결정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제한적이고 이론의 여지가 있는 이슈"에서 "제한적"이라는 의미는 하나의 모션에서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이라는 것일 뿐, 내가 요청할 수 있는 모션의 내용이나 종류 자체는 무제한적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소송에서 가능한 모든 모션의 종류를 총정리한다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할 것이다. 단, 대표적인 모션들만 정리하여 그 유형을 알아볼 수 있는데, Black's Law Dictionary 에 따르면 미국 소송에서의 모션의 종류를 총 11가지로 정리를 하고 있다. (https://thelawdictionary.org/article/four-types-legal-motions-u-s-law/)
Motion to dismiss, Discovery motions, Motion to compel, Motion to strike, Motion for summary judgment, Motion for a directed verdict, Motion for nolle prosequi, Motion in limine, Motion for judgment n.o.v., Motion to set aside judgment, Motion for a new trial 등이 바로 그 11 종류에 해당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위 11가지의 모션은 대표적인 유형(Type)을 의미하는 것일 뿐, 같은 유형의 모션이라 하더라도 개별 소송마다 매우 다양한 변형을 일으키면서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이민국 결정과 관련한 Motion to reopen 이나 Motion to reconsider와 같이 위 11가지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자주 사용되는 유형들도 있다. 각 주별로 법원과 기관 별로 종류가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미국에서 모션이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가 또,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누구라도 그 모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야 소송의 당사자인 원고 또는 피고가 모션의 주체가 되기는 하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모션을 제기할 수도 있고 판사가 직접 모션(Sua Sponte)을 할 수 있다. 당사자들끼리는 치고박고 잘 싸우면서 소송을 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판사가 스스로 회피 모션을 신청하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근거없는 소송(Frivolous litigation)이라 판단하여 소를 각하해버리는 모션을 신청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션은 소송이 시작된 후에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 주로 디스커버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재판이 다 끝나고나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 사이에서도 모션을 취할 수 있다. 모션은 구두로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변호사들이 서면으로 작성하여 제출한다. 일단 변호사들은 서면으로 모션 내용을 작성하고 관련 첨부서류(Exhibits)들도 정리해서 제출하고, 판사가 심리기일(Hearing date)을 정하면 그 날 참석하여 구두로 의견진술도 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사실상 하나의 작은 재판(Mini trial)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전체의 소송을 전쟁(War)이라 본다면, 이 여러 모션들은 하나의 전투(Battle)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작은 재판들이 소송 중에 적게는 1~2번, 많게는 10번 이상도 생길 수 있다.
앞선 글에서 길고 장황한 디스커버리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모션이 미국소송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주범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결국,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모션도 곧 돈이다 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한다. 모션을 작성하고 준비하는데 드는 변호사의 시간, 그리고 상대방 모션을 방어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변호사의 시간이 모두 비용이다. 예컨대 나와 상대방이 각각 2번씩의 모션만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소송 과정 중에 총 4번의 모션에 대하여 심리를 하게 될 것이고, 이를 공격하고 방어하는데 지출된 변호사 비용만 하더라도 최소 몇 만불(대형로펌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이) 이상은 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모션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제기하는 모션에 대한 방어방법 역시 정해진 것이 없다. 그리고 MSJ와 같이, 하나의 모션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할 경우에는 소송이 그대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모션에 대하여 신중하게 대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 모션 내용의 부당성에 대하여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변호사의 콤비플레이가 매우 중요하다.
의뢰인이 모션을 잘 알아야 나의 변호사가 적절한 모션신청을 한 것인지, 상대방의 모션에 적절하게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관리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중요한 말이지만, 내가 소송의 내용을 아는 만큼 소송비용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