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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송 비용을 줄이는 Tips (2)

유연한 목적지변경과 지름길 탐색


앞선 글에서는 택시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 중 첫 번째로, 올바른 방향으로 택시를 탑승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목적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유연하게 목적지를 변경하며 지름길을 찾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이전 글에서 예를 들었듯이, 서울 광화문에서 강남역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고 가정한 경우, 택시기사에게 보통 강남역으로 가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일단 택시는 출발하겠지만, 강남역 부근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택시기사는 분명히 강남역 어느 쪽에서 내려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해올 것이다.  승객의 구체적인 하차희망 지점이 현재의 주행경로 상에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간혹 주행경로를 벗어나 있어 경로를 재설정해야 하거나 하차지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택시기사가 애초에 조금 더 빠른 경로로 갈 수 있었던 경우도 있다.  내가 생각한 목적지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는 승객 입장에서 미리 하차지점을 기사님께 고지하는 Proactive한 자세가 필요하며, 이것만으로도 비용을 어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상황에 따라 하차지점(목적지)을 변경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강남대로가 심하게 정체된 경우에는 미리 내려 지하철이나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고, 목적지보다 조금 먼저 내려 걸어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국소송은 법원에 제소된 민사소송사건 중에 전체의 95% 이상이 정식 재판 전 쌍방 당사자간 합의(Settlement)로 처리된다.  흔히들 "합의" 앞에 "원만한(Amicable)"이라는 단어를 붙이는데, 사실 실상을 들여다 보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일단, 미국의 법원 자체가 정식 재판까지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법원이라는 조직의 설립 목적이 소송을 통한 분쟁의 해결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소송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판사들 입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재판으로 가기 전에 당사자들간에 해결할 것을 굉장히 원하고 또 압박을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소송 업무를 진행할 당시에도 외부 전문가를 통한 조정이나 판사가 직접 조정에 회부하여 사건을 중재하고 합의를 유도하는 것을 종종 경험했었다.  그런데 미국 법원은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한 두번의 조정이 결렬되었다고 하여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주로 은퇴한 판사나 변호사 분들을 조정인으로 고용하여 조정(Mediation) 절차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조정이 결렬되더라도 판사가 직접 합의를 위한 회의(Settlement Conference)를 또 주재한다.  이 모든 허들을 넘고 넘어야 겨우 재판을 시작할 수 있는데 판사로부터 상당한 눈칫밥을 먹고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재판까지 갈 경우 워낙 법률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것을 잘 아는 판사들의 세심한 배려라고 선해하자. 


그런데 조정이나 합의로 분쟁을 조기에 종결하는 것은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교통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하차지점을 변경하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들은 모두 소장을 접수하는 시점에는 "피고 이 나쁜 XX,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손해와 정신적 손해까지 받아내리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소송 초기에는 절대 얼마 이하로는 합의할 생각이 없고, 어떤 경우에는 합의 시도 자체도 거부하는 의뢰인들도 있다.  난 길이 막히든 말든 택시에서 절대 안내리겠다는 승객 부류다.  택시 안에서는 몸이라도 편하지, 소송은 길게 가면 갈 수록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비효율성은 급증한다.  특히 내 변호사가 시간당 비용을 청구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필자가 참여한 한 소송에서 원고측을 대리한 바 있다.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이었는데, 사실 계약서의 문구도 명확했고 재판까지 갔다면 원고측의 승소는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그 손해배상액을 다투기 위하여 대기업인 피고 측은 사기로 인한 계약이므로 무효임을 확인하는 반소를 제기하면서 소송을 길게 끌기 위해서 별 수단을 다 썼다.  계약서 문구와는 전혀 무관한 원고의 사생활이나 평소의 행실 등을 물고 늘어지기도 하였다.  그런식으로 소송은 4년이 넘게 이어졌고 아직 정식재판은 시작도 못하고 있었으며, 의뢰인의 법률비용만 이미 수십만불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2차례 조정도 시도했지만 피고측의 제시금액이 너무 낮아 의뢰인의 감정만 상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 번째 조정에서 결국은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피고 측의 아주 높은 직급의 인물의 데포지션이 예정되어 있어 피고 측이 합의금액을 높이기도 하였고, 의뢰인 역시 지루한 공방에 많이 지친 이유도 있었다.  재판으로 가면 분명 배상금액으로 2~300만불은 더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은 되었으나, 재판으로 또 2~3년, 어느 일방이 항소하면 또 1~2년, 정신적 고통의 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물론 변호사 비용 역시 최소 또 수십만불이 더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합의 후에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후련하다는 의뢰인의 마음이 공감이 갔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소송의 최종 목적지 전에 소송을 종결하는 것이 많은 경우에 보다 더 현명한 결정일 수 있다.  "어이 변호사 양반, 그게 당신 돈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어?" 라고 반문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 자신에겐 관대하고 본인의 일은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변호사들도 중요한 송사가 있을 때 직접 하는 것보다 제3의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그러한데, 내 일이라고 하면 자꾸 나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고 싶고 불리한 부분은 못 본척 하거나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곤 한다.  비록 내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나에게 불리한 사실관계들도 보이기 마련이고, 이런 부분들은 내가 처음에 목적지를 정했을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런 부분이 보이면 보일 수록, 나 자신도 목적지를 조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소송을 끝까지 가자고 권유하는 변호사보다 오히려 적당한 시점에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적당한 합의선을 제안하는 변호사가 진정으로 나를 생각하는 변호사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터기의 달리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 




또한, 택시를 타고 가는 경로가 내가 자주 가 본 경로이고 더 빠른 지름길을 알고 있다면 중간중간 택시기사에게 알려주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듯이, 소송 역시 지름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아야 한다.  소송 절차는 택시경로를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내가 지름길을 알려준다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소송 내 절차 중에서 의뢰인이 변호사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예를 들면,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상대방이 보내오는 인정요구서(Request for Admission), 문서제출요구(Request for Document Production)와 질의서(Interrogatories) 등은 의뢰인인 내가 직접 답변서의 초안을 잡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답변서에는 변호사들이 기본적으로 쓰는 템플릿(Template)들이 있는데, 관련된 이의제기(Objection)들도 다 표준 문구(Boilerplate)로 기재되어 있다.  변호사에게 상대방의 질문내용이 기재된 우리쪽 답변서 템플릿을 보내달라고 하자.  인정요구의 내용들은 대부분 Yes or No로 간단히 기재하면 된다.  사실 그대로 답변하면 된다.  애매한 부분만 나중에 변호사랑 상의하면 된다. 


문서제출요구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런 문서가 있으면,  "Without waiving any objections, I respond as follows: I will produce all responsive and nonprivileged documents in my possession, custody, and control relating to (상대방이 요구한 문서 내용)."  만약 그런 문서가 없으면 "Without waiving any objections, I respond as follows: A diligent search and a reasonable inquiry has been made in an effort to comply with this request.  I lack the ability to comply with this request because 1) the responsive documents have been lost.(있었으나 현재 나한테 없는 경우) or 2) no responsive documents have ever existed.(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 와 같이 답변을 하면 되겠다.  그리고 제출할 문서가 있는 경우에는 그 문서들을 정리하여 변호사에게 보내주면, 변호사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문서인지 여부만 검토하여 제출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질의서의 내용들에 대해서도 답변을 간단히 기재를 하면 된다.  예컨대, 질문내용이 "Describe how the entity ABC Corporation was capitalized."라고 할 때, 답변은 간단히 "A(주주1) and B(주주2) provided 100% of the capital of ABC Corporation." 와 같이 답변하면 충분하다.  질문에서 금액(Amount)이나 시점(When)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묻고 있지 않으므로 초기 자본금이 얼마였느니, 언제 자본금을 납입했느니 하는 내용까지 답변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물론 제대로 된 질의서라면 별도의 질문으로 물어봤을 것이다).  


이렇게 의뢰인이 내용에 대한 초안을 잡아서 보내주는 것만으로 해도 변호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변호사가 제출 전에 내용의 정확성에 대해 증거서류와의 정합성 검토는 하겠지만 직접 모든 사실관계를 다시 찾아볼 필요도 없고 자료를 찾아보더라도 의뢰인이 답변한 내용에 국한해서 찾아보면 되기 때문에 일이 매우 줄어든다.  내가 영어가 부족한데, 문법이 틀렸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할 필요없다.  어차피 마지막에 나갈 서류는 미국 변호사들이 오타나 문법적 오류를 검토하고 나가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실질적인(Substantive) 알맹이(Contents)를 채워주면, 변호사는 껍데기(Format)만 잘 포장하면 된다.  


데포지션(Deposition)의 경우에도 의뢰인의 직접 관여할 여지가 많다.  앞서 설명했지만 데포지션은 여러명을 할 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일단 데포지션 대상 증인(Deponent)을 선정할 때 나에게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인지 심사숙고해봐야 한다.  아무리 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줄 증인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유의미한 증언내용을 기대할 수 있을지, 굳이 데포지션까지 부르지 않더라도 진술서 등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지 등 가성비(?)를 종합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상대방이 데포지션을 요구하는 증인들에 대하여도 사건과의 관련성들을 신중히 검토해서 별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간혹, 자금에 여유가 있는 당사자일수록 소송을 길게 지연하면서 상대방을 피말리기 위하여, 그리고 이를 대리하는 대형로펌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증인 데포지션을 저년차 어쏘 변호사들에게 트레이닝의 차원으로 진행하는 경우들이 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절대 이런 경우에 말려서는 안되겠다.  




다소 긴 글이었지만 정리하면, 1) 소송(특히 미국소송)은 끝까지 가보자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면 결국엔 나에게 상처뿐인 영광만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하면서 유연한 마인드로 소송의 Exit Plan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과, 2) 변호사는 소송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자일뿐 소송의 모든 알맹이는 결국 내가 채워야만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특히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핵심적인 증인과 서류들을 가려내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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