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미국변호사가 들려주는 미국소송 이야기
미국소송을 진행하다보면 변호사 간에 주고받는 서신에서 "Meet and Confer"라는 용어가 정말 많이 등장한다. 특히 디스커버리 과정 중에서 서로가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재반박을 하는 과정 중에서 분명히 한번쯤은 등장하는 용어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는 '서로 좋게 좋게 말로 해결합시다'라는 취지로 으레 쓰는 용어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무를 하다보니 많은(대다수의) 영역에서 대리인들간에 법원이 개입하기 전에 만나서(meet) 상의하는 것을(confer) 의무적인 사항으로 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자세한 정의를 보자면,
"Meet and Confer refers to a requirement that before certain type of motions and petitions are heard by a judge, the lawyers of the parties or the parties themselves should meet and try to resolve the matter. This requirement helps in saving the court’s time and at times, is beneficial in settling the matter." (출처 : definitions.uslegal.com)
다시 말해, 법원에 어떤 특정 모션이나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에 각 당사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만나서 해당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합리적이고 충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법원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바쁘신 판사님들의 시간과 법원의 리소스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필자가 예전에 미국소송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 중 마지막 세번째로 법원의 자유방임주의(라고 쓰고 무관심이라 읽는다)를 든 적이 있는데 이 Meet and Confer 제도도 전형적인 법원의 자유방임주의의 일환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살펴보자. 상대방의 재무제표가 증거로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자. 디스커버리 절차 중에 Request For Production of Documents (보통 줄여서 RFP 또는 RFPD)를 상대방에게 보내, 예를 들어 현재까지의 당신 회사의 모든 재무제표(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하지 않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상대방의 답변은 일단은 거의 99%의 확률로, "이러한 요구는 기간적인 제한이 없어 너무 방대하고 자료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들며 우리를 괴롭히려는 것이므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이러한 요구는 사적인 기밀 자료 또는 attorney-client privilege나 attorney work product doctrine으로 보호되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이의를 제기한다." 와 같은 objection을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당신네는 말이 안되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자료들은 본 소송의 중요한 쟁점과 관련이 있다. 당신네는 자료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든 이유를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있지 않나?" 라고 서신을 보내면서 마지막 문단에는 대충 다음과 비슷하게 끝맺음을 하게 될 것이다. "We hope that this discovery issue can be resolved without seeking the Court's intervention. I am available to further meet and confer regarding this matter next week." 이 말의 숨은 의미는 "계속 거부하면 판사한테 이른다?" 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변호사들간에 서신을 주고 받고나서 실제로 만나서(일반적으로는 전화상으로도 가능하나 각 지법의 Local Rule마다 다를 수 있음) 우리가 그 자료가 왜 필요한지 이유를 설명하고, 필요하면 기간적인 제한을 두어서(예를 들어 분쟁이 시작된 2016년 이후 자료만 제출)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나 사실 법원에 개입없이 합의를 한다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다. 일단, 합의를 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100% 포기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이 자료가 상대방의 주장처럼 본 소송의 쟁점과 관련이 있고 기간적인 제한까지 두어 제출을 요구한다면 우리 쪽에서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근거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일단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왜 선뜻 나서서 자료를 제공하냐며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소송의 경험이 있는 한국기업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법원의 강제제출명령이 나오기도 전에 나한테 민감하고 불리한 자료를 공개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종종 합의는 결렬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법원에 motion to compel(자료 강제공개명령 신청)을 신청하면 된다. 판사는 모션이 접수되면, 일단 당사자들끼리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협의를 하였는지 관련 서신자료들을 검토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충분히 자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였고 수차례 임의제출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적절한 이의사유 없이 거부를 해왔음을 증명한다면, 법원은 상대방에게 관련 자료들을 아무런 이의없이 제출할 것을 명령하고 동시에 금전적 제재(Sanction)를 부과하기도 한다. 거기에 판사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덤이다. 간혹 이건 그래도 제출하셔야 합니다라고 설득을 하는데도 법원이 시킬 때까지는 일단 버티라고 주문하는 의뢰인들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각각의 전투를 이기는 것보다도 전쟁을 이기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하다. 변호사와 충분히 상의하되,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자료를 못 내주겠다는 고집은 (적어도 미국소송에서만큼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앞에서 이러한 Meet and Confer를 모션의 선결 요건으로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하였는데, 최근에 캘리포니아는 이 Meet and Confer 요건을 demurrers and motions for judgment on the pleadings 에까지 확대적용하기로 하였다. 흔히 피고들이 원고측의 시간과 비용을 더 들게 하기 위하여 소송 초기에 소를 각하시키려고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인데, 이제는 이런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사전에 원고에게 왜 당신의 소 제기가 불합리하고 불충분한 사실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해야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와 만나서 상의를 하는 정성(?)을 보여야만 가능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