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미국변호사가 들려주는 미국소송 이야기
성공적인 소송은 단지 승소판결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판결을 집행하는 것에도 크게 의존한다. 예컨대 미국기업과 한국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여 (일반적으로는 Forum non conveniens 등을 들어 사건의 이송을 신청하겠지만 증거자료들과 증인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 경우에는 한국법원에서 그대로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상대방 미국기업이 한국 내에 집행할 수 있는 아무런 재산이 없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럼 눈뜨고 휴지 쪼가리가 된 한국법원의 판결문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때때로 한 나라의 법원의 결정을 당사자들이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법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해당 법원의 관할권 내에서 집행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국내 민사소송법 제217조(외국재판의 승인)에 관련규정을 두고 있듯이 미국의 경우에도 외국법원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법원이 해당 판결을 승인해야만 한다. 미국법원이 승인한 외국판결(한국법원의 판결)은 미국에서 처음 내린 판결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반면, 미국법원에서 승인되지 않은 외국판결은 미국 내에서 집행시 아무 효력이 없다. 미국법원에서 외국판결의 승인을 받는 절차는 간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국법원에 재차 소를 제기하여 새롭게 심리(de novo)를 거치는 것보다는 거의 항상 기간도 빠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미국은 외국의 중재판결(Arbitration award)의 집행에 적용되는 다자간 협약에는 가입되어 있는 당사국인 반면에 미국법원이 외국법원의 판결의 집행하는 것을 규율하는 별도의 국제조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외국법원의 판결의 승인과 집행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개별 주법(State law)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연방법원에 외국법원 판결의 승인과 집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해당 연방법원은 관련 주법을 적용하여 결정을 내리게 된다.
각 주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서는 통일 외국 금전적 판결 승인 법률(Uniform Foreign Money Judgments Recogition Act, UFMJRA)을 체택하고 있다(참고로 캘리포니아주는 1968년에 채택). 위 법률은 미국법원이 미국 이외의 국가의 법원에서 판단된 금전적인 판결을 승인하고 집행할 수 있는 표준적인 절차를 제시하는데, UFMJRA를 채택하지 않은 주들은 common law와 국제예양(comity)에 따라 외국판결을 인정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금전적인 판결이 아닌 예컨대 특정 행위를 명하거나 금지하는 비금전적인 판결도 주법에 따라 인정될 수 있다.
한편 UFMJRA를 채택한 주에서는 외국법원에서 판단된 (1) 최종적이고(final), (2) 확정적이며(conclusive), (3) 집행가능한(enforceable) 금전적 판결(금전의 지급을 명하거나 지급거부를 인정하는 판결)에 한하여 승인을 한다. 항소절차가 진행중이라 해서 반드시 해당 판결이 집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미국법원은 항소결정이 있을 때까지 미국 내 집행절차를 중지시킬 수 있다. 또한 UFMJRA에 따르면, 판결을 내린 외국법원이 (1) 공정하지 않았거나(not impartial), (2)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거나(not offer due process of law), (3) 피고에 대한 인적 관할권이 없었던 경우에는(not have personal jurisdiction over the defendant), 미국법원은 외국법원의 판결을 승인할 수 없다.
위의 의무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건들 외에도 대부분의 주의 법원은 외국법원의 승인을 거부할 수 있는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만약 외국판결이 사기에 의해 얻어졌다고 의심이 드는 경우, 재판당시 피고에게 적절한 통지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인정된 경우, 또는 해당 외국판결이 미국의 헌법상 가치에 반하는 경우 등에는 외국판결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몇몇 주들은 상호주의 요건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앞서 판결을 내린 외국법원이 미국 주정부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미국 주정부 역시 해당 외국법원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국판결을 미국법원에 승인 신청을 하기 전에 먼저 해당 미국 주 법률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각 주별로 외국판결을 집행하기 위한 절차법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는 미국시민인 피고나 그의 미국 내 재산에 대해 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법원 내에서 별도의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보통 별도의 소장을 제출하기 보다는 motion for summary judgment 등을 통해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절차의 개시를 신청인은 외국법원의 판단이 타당하고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외국법원의 판결문을 영문으로 번역 후 공증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요건을 충족하게 되면 미국법원은 외국판결을 미국판결로 전환시키게 되고 그렇게 전환된 판결은 이제 미국법원에서 결정된 판결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고 집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