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1_양양 (3)
'서피비치 Surfyy Beach'에서 서핑을 하려면 해변 철조망을 지나야 합니다. 간첩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동해안 철조망 말입니다. 물론 위험하진 않습니다. 하조대에 위치한 리조트 회사, '㈜라온서피리조트'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하조대 해변 800미터를 서핑 전용 구역으로 허가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서프 스쿨, 코로나 선셋 라운지, 카라반 등이 모인 복합시설, 서피비치를 열었습니다. 일 년 내내 운영하는 해변 여가 공간입니다.
"첫여름, 이 해변에서 페스티벌을 열었죠." ㈜라온서피리조트의 박준규 대표가 팔을 넓게 벌려 해변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챙을 빳빳하게 편 뉴욕 양키즈 모자를 쓰고 싱글벙글 웃습니다. "페스티벌을 도와줄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공연을 기획했어요. 가수 산이와 버벌진트가 오기로 하고요. 그런데 메르스가 같이 왔어요. (웃음) 페스티벌을 열기로 한 토요일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죠. 운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박준규 대표가 찡끗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공연마다 1000여 명 정도의 관객이 왔어요."
서핑 중심의 해변 테마 파크
서피비치는 하조대의 기존 마을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한적한 해변에 있습니다. 불과 500미터 거리인데도 주변은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합니다. 눈에 걸리는 건물들이 거의 없고, 철조망 너머로 바다와 해변이 보입니다.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구나, 라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량한 풍경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서퍼와 파티 피플들은 서피비치의 풍경을 '이국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횟집과 모텔이 들어선 동해안 해변 도로의 익숙한 번잡함이 없는 이곳을 말이죠.
박준규 대표는 이런 이국적 해변에 서핑을 중심으로 즐길거리가 모인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서핑 시설과 함께 글램핑, 펍, 라운지 테라스, 카라반 숙소, 오토 캠핑장을 갖추었습니다. 서핑 스쿨은 서핑 강습뿐 아니라, 체험 다이빙, 비치 요가를 함께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서피비치는 서핑 시설이라기보다는 해변의 테마파크 같은 곳입니다. 작은 서핑 숍들과 식당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양양의 마을들과 달리, 체계가 잘 잡히고 규모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서퍼의 두 가지 이미지: 보헤미안과 핫 피플
이른 아침, 보슬비가 뿌리더니 오전이 되자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철조망 너머로는 진한 초록색의 바다가 보입니다. 파란 하늘, 황금빛 모래사장, 바람에 펄럭이는 흰색 깃발들. 진한 물감으로 그린 풍경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자, 서피비치의 스태프들이 바빠졌습니다. 대여섯 명이 모여서 새로 만든 나무 데크 위에 햇빛을 가리는 천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술을 파는 바를 손봅니다. 코로나 맥주와 함께 마케팅을 하는 '코로나 선셋 라운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제도 많이 마셨어요. 한숨도 안 잤네요."
박준규 대표를 도와 서피 비치의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L 이사는 어젯밤 파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지만 얼굴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어떤 분들이 서피비치를 찾느냐는 질문에,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습니다.
"남녀 성비로 보자면 여자분들이 80%예요. 저희도 너무 놀랐어요. 정말 예상 밖이었거든요. 서핑이 끝나는 저녁에는 매일 파티죠. (웃음)"
그는 숙취를 이기는 데는 이것만 한 것이 없다면서 코코넛 워터를 권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나무 데크에 함께 앉아 코코넛 워터와 코로나를 번갈아 마시며 서피비치의 전용 해변을 바라봤습니다. 철조망 너머로 서핑을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보입니다. 몸에 잘 맞는 웻수트 wetsuit를 입고 화려한 무늬의 보드를 들고 있습니다. 멋지게 꾸민 서퍼들이 모여드니, 한적하던 해변의 분위기가 흥겨워졌습니다.
L 이사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작년만 해도 서핑 패션이 노랑과 빨강의 원색 계열이었는데, 올해는 블랙 쪽으로 갔어요. 서핑 패션은 화려하고 세련되니까 좋아들 하시죠. 서핑을 패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박준규 대표가 말을 이었습니다. "퀵 실버 Quicksilver 같은 회사들이 그런 소비자 층을 고려하고 있고요."
퀵 실버는 1973년 호주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회사입니다. 핵심 사업은 서핑입니다. 퀵실버라는 이름도 파도와 관련 있고, 회사의 로고도 파도와 산의 모양에서 따왔습니다. "퀵 실버가 패션에 민감한 젊은 여성 서퍼들을 위해 만든 록시 Roxy라는 서브 브랜드가 있어요. 보세요,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주며) 로고 모양도 비슷하죠? 록시가 바로 퀵실버 회장의 딸 이름이에요."
서핑은 보헤미안이나 반항아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스타일 좋은 패션, 음악, 파티의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헐렁한 반바지와 그래픽 티셔츠를 입은 서퍼도 있지만, 날렵한 비키니를 입은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의 서퍼도 떠오릅니다. 헐렁함과 세련됨의 두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스포츠입니다. 서피 비치가 마련한 공간은 트렌드에 민감한 서퍼들에게 어울립니다. 서핑 전용 해변을 바라보면서 데크에 앉아 좋은 음악을 듣고, 차갑게 식힌 코로나 맥주를 마십니다. 해가 지면 바베큐를 즐기고, 공연을 보고, 카라반 침대 누워 파도 소리를 듣다가 잠듭니다. 이런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머물도록, 서피비치는 서핑의 중심지가 된 남애, 죽도와 떨어진 한적한 해변에 자리 잡았습니다. 기존의 번잡한 마을과도 경계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 곳에 20대와 30대의 '핫 피플'을 대상으로 서핑을 주제로 하되, 관련된 즐길 거리를 충분히 준비한 '서핑 테마파크'를 만들었습니다.
서핑 컨셉트의 공간 플랫폼 사업
"서피비치 이전엔 뭘 하셨나요?" 공간을 기획한 박준규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해운대 스마트비치에서 기획 일을 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해야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죠."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둥글둥글 미소를 짓으며 말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노는 분들이 정말 재미있게 놀다 갈 곳을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어요. 바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서핑을 정말 잘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돼요. 매일매일 두 달은 타야 어느 정도 안정적인 라이딩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보통의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그렇게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물론 서핑을 평생 내 취미로 삼고 싶은 분들이 많겠지만, 대부분은 1년에 한두 번 서퍼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양양에 올 거예요. 서프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요. 이 리버럴 liberal 한 문화에 대한 동경이요."
리버럴한 문화를 즐기자. 이것이 서피 비치가 양양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이를 위해 서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파티, 숙박, 캠핑이 가능한 복합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맥주와 협력해서 바를 만들고, 스타일 좋은 캠핑 사업자를 섭외하고, 인기 있는 디제이를 초대합니다. 박준규 대표는 이런 플레이어들을 고르고 엮어서 해변에 배치하는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서피 비치는 서핑 컨셉트의 공간 플랫폼 사업이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양양의 서퍼들에게 미움을 좀 받고 있어요.(웃음) 순수하게 서핑을 목적으로 하는 서퍼 분들과 달리, 우리에게 서핑은 공연 포스터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우리는 서퍼 감성을 복합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서비스죠."
박준규 대표는 서핑을 바라보는 조금 더 대중적인 시각,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서핑의 소비 공간을 양양에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핑 문화를 보급하고 싶은 서퍼들과 즐거움의 문화를 내세운 기획자가 좋은 비율로 섞여 함께 일해야 양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바다를 즐기는 일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시다시피, 우리는 삼면이 바다입니다. 바다를 즐기는 일을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싱글벙글하던 눈이 진지하게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해수욕장업은 300미터 해변만 있어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놀 수 있어요. 해수욕장을 생계의 장으로 일 하시는 기존 분들은 -음식, 술, 아이스크림을 파는 분들- 이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입장시켜야 이윤이 커지겠죠. 그런데, 해수욕이 아니라 서핑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요. 서퍼 1인당 10미터의 운동 반경이 필요하거든요. 300미터 해변이라고 해 봐야 몇 명 못 놀아요. 그러니까 해수욕장에 의존해서 생계를 하시는 분들에게 서핑은 효율이 떨어지는 사업이죠."
그래서 서핑을 중심으로 식음료, 숙소, 공연을 세련되게 운영하면, 해변이라는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박준규 대표는 설명합니다. 파도 속으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서핑은 바라보고 즐기기에 좋은 풍경이니까요.
서피비치는 서핑의 모객募客 기능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서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코로나 선셋 바를 운영합니다. 여름밤에는 비치 파티를 열고, 음악과 춤과 폭죽으로 해변의 분위기를 돋웁니다. 독특하게 꾸민 카라반에 누워서 다음에는 글램핑을 해봐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해변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핑을 하지 않더라도 양양을 재방문할 이유가 생깁니다. 박준규 대표는 바다와 서핑을 현실적인 사업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업가의 미래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앞으로 양양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3일 정도 밤낮없이 하는 페스티벌요. 우드스탁처럼."
진지하게 바다 사업의 컨셉트를 설명하던 사업가가 다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1969년, 미국 화이트 레이크라는 농장에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네 명의 친구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잔치를 벌여보자 하다가 우연히 시작된 일입니다.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뻔하기도 했고요. 막상 페스티벌이 열리자, 무려 30만 명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시골에 모였습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화장실 시설도 제대로 없는 벌판에 말이죠. 페스티벌에 온 히피들은 이런 허술함에 더 즐거웠습니다. 진흙탕 위에서 뒹굴고 장난치며 음악을 듣고 아무데서나 옷을 덮고 잤습니다. 그리고 이 페스티벌은 히피, 평화, 변화, 반문명 등의 새로운 정신과 라이프 스타일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전설로 남은 거죠. 그로부터 50년 후, 우리나라에 이런 페스티벌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서울-양양으로 페스티벌 전세기를 띄울 겁니다. 비행시간은 19분이에요."
19분 만에 자신이 만든 바다 플랫폼의 세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꿈이라고, 박준규 대표가 말했습니다.
양양의 개척자들
양양이 짧은 시간에 서핑의 성지가 되고, 매력도시가 된 중요한 이유는 바다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동해안의 파도와 산을 보며 해수욕장과 단풍놀이를 생각하는 대신, 서핑과 카라반을 떠올린 개척자들 덕분입니다.
매력도시 연구소는 양양에서 두 명의 개척자들을 만났습니다. 바루서프의 채화경 대표는 양양을 삶의 터전으로 보고, 서퍼의 라이프 스타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서핑숍을 운영합니다. 서피비치의 박준규 대표는 1년에 한두 번 노는 우리를 위해 바다를 배경으로 파티와 페스티벌을 열고 축제의 문화를 알리고 싶어 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두 사람은 우리가 그동안 지방의 소도시에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모험심 넘치면서도 여유 있고, 헐렁하면서도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요. 우리가 원하고 있지만 해소할 곳이 없었던 욕구를 양양이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벽을 네 개 세워야 공간이 됩니다. 제가 양양에서 세우고 싶은 네 개의 벽이 있어요." 박준규 대표가 말을 이었습니다. "벽 하나가 서핑이고, 두 번째 벽이 캠핑이고, 세 번째 벽이 클럽 라운지이고, 마지막 벽 하나가 페스티벌이에요. 그리고 그 벽에 문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 문이 아름답다면 사람들이 들어올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플랫폼을 만들 거예요."
대낮부터 데크에 앉아 함께 마신 코로나 맥주의 빈 병이 늘어갔습니다. 철조망 너머 먼 바다에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보입니다. 폭죽이 터질 밤이 기다려집니다. A.City
Reference
서피비치 Surfyy Beach +
록시 Roxy +
우드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