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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Oct 21. 2017

오노미치 U2: 어서오세요, 폴 스미스 경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2)


일본 히로시마현의 작은 항구 마을 오노미치. 여기에 낡은 창고를 개조한 독특한 호텔, '오노미치 U2'를 살펴 보고 있습니다.

1편은 여기서: 오노미치 U2_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2014년 어느날, 오노미치에 옵니다. 뭐하러 일본의 작은 소도시까지 왔느냐. 무려, 자전거를 타러 왔습니다. 자전거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난합니다. 어린 시절 레이서가 목표였던 그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꿈을 접고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거든요. 알록달록 양말을 신고, 자신이 디자인한 빛나는 오렌지색 자전거를 타며 해변의 라이딩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오노미치 U2를 방문합니다. 한눈에 오노미치 U2가 마음에 쏙 든 폴 스미스는 오노미치 U2와 공동 기획하여 티셔츠와 사이클 저지를 디자인했습니다. 호텔 내 잡화점에서 한정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눈 높으신 최고의 디자이너를 감동시킨 오노미치 U2. 영국의 폴 스미스 경은 일본 소도시 호텔어떤 점이 마음에 든 것일까요?


www.onomichi-u2.com



우선, 창고를 따라 걸으며 오노미치 U2의 내부를 좀 더 둘러보겠습니다.


창고로 들어서면 입구에 진열대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진열대 위에는 청바지, 그릇, 화분이 놓여 있고요. 호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들 중, 생각과 모양이 좋은 것들을 골라내서 판매하는 잡화점, 'U2 시마 숍' 입니다. 지역 특산품의 편집숍이라고 보면 됩니다. 청바지 천으로 만든 독특한 앞치마가 눈에 띄었습니다. 점원의 설명에 따르면, 근처에 청바지를 만드는 천인 '데님'의 산지가 있다고 합니다.

'청바지 유명 산지라...온 김에 하나 사볼까.' 그런데 가격표를 넘겨보는 순간, 흠, 살짝 망설이게 됩니다. 8000엔. 8만원 정도 하는 앞치마군요. 다른 물건들의 가격도 꽤 높습니다. 웬만한 백화점, 명품 숍 못지 않은 가격의 지역 특산품 가게입니다. 특산품 가게라고 하면, 지역 먹거리, 공예품 같은 것을 합리적 가격에 판매하는 곳이 떠오릅니다만, U2 시마숍은 도쿄나 런던의 세련된 편집숍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의 상품이라는 것을 크게 내세우지도 습니다. 말하자면 지역 특산품 가만, 좋은 디자인의 물건이라면, 혹은 숍의 콘셉트에 어울리는 상품이라면 판매가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폴 스미스의 알록달록한 한정 상품들을 특산품들과 함께 진열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죠.



잡화점의 건너편에는 자전거 가게가 있습니다. 진열된 자전거의 디자인이 하나 같이 유려하고 독특합니다. 앞치마를 입은 직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전거의 기어를 손보고 있습니다. 자이언트Giant라는 가게인데요.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생산량 세계 1위 브랜드입니다.

추후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오노미치 U2의 슬로건은 '자전거, 여행 그리고 좋은 물건들' 입니다. 자전거족을 위한 호텔 복합 시설이라는 컨셉트로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이언트 숍이 호텔 내부에 있는 것이고요. 자전거는 대부분 200만원 대의 고급 제품들입니다. 가게에는 자전거 전문가가 늘 대기 중이니다. 구입 가이드를 해주고, 판매하고, 라이더의 몸에 맞게 피팅해줍니다. 고장이 나면 수리 가능. 잠시 빌려서 시운전도 가능. 날씨 좋은 계절에는 라이딩 이벤트를 열고 전국 각지, 아니, 전 세계에서 온 자전거족맞이합니다.



창고의 중간쯤에 다다르자 빵을 굽는 부드럽고 달콤한 냄새가 퍼지고, 그릇과 유리잔이 달그락 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접시를 닦으며 점식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세련된 디자인의 모자와 앞치마를 입고 절도있게 일합니다. 앞서 잡화점에서 봤던 그 명품 데님 앞치마입니다. 메뉴를 잠시 살펴 볼까요. 메인 요리는 그릴 입니다. 지역에서 나온 신선한 식재료를 숯불 화덕에서 구워 세계 각지에서 모은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 앞에는 20명 쯤 둘러 앉을 수 있는 작은 바, 'Kog Bar'가 있습니다. 호텔 컨셉에 맞춰 바의 좌석 중 하나는 자전거 안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의 진열장을 채운 술병 너머로 밤바다와 지나가는 배의 불빛이 보입니다.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도 젓고 마티니도 젓고. 편안한 니트를 입은 바텐더가 솜씨 좋게 술을 나릅니다.



내부 공간은 창고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살려, 천장은 높고 막힘없이 트여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고 아늑한 느낌입니다. 콘크리트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낸 기둥 사이에 세심하게 디자인한 부드러운 갈색 나무 가구들을 두었습니다. 미묘하게 조정한 빛과 어둠을 칸막이 삼아, 생경한 창고 공간을 친근한 크기로 나누었습니다. 거친 개성을 가진 오래된 창고를 부드러운 조명, 가구, 물건이 감싸며 공간을 완성합니다.

오노미치 유투는 창고를 개조한 독특한 호텔이라고 했는데요. 내부를 따라 걸어가면서 보면, 단순히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충분치 않습니다. 창고 안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웬만한 시설들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잡화점, 레스토랑, 카페, 바, 베이커리, 자전거 수리점이 모여 있습니다. 이 호텔에 묵으면 의식주 + 즐길거리가 한번에 해결되는 것이죠. 숙박하고 아침먹고, 쇼핑하고, 자전거 타고, 자전거 고치고, 쥬스 마시고, 커피 마시고, 빵 먹고, 저녁 먹고, 와인 마시고, 위스키 한잔 더 하실 수 있는 곳입니다. 극단적인 경우라면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하루를 멋지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참 구경하며 걸었는데, 아직 호텔 로비와 리셉션 데스크는 보이지도 않는군요.




80미터 쯤 되는 길다란 창고의 끝에 다다르자 드디어 호 프론트 데스크가 나타났습니다. 조명은 더욱 낮게, 조용히 공간을 비춥니다. 어둠 너머 작은 불빛 하나를 켜두고 단정한 검은색 복장의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잡화점에도, 자전거 숍에도, 바 에서도, 호텔 프론트에도, 그 공간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적절한 옷차림을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썰미 좋은 감독이 스토리에 딱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알맞는 분장을 시켜서 연극 무대에 세워둔 것 처럼 말이죠.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서자 잘 정돈된 침대 위에 천연 옷감으로 만든 잠옷이 단정히 기다립니다. 특별히 튀는 디자인  없이, 좋은 목재와 패브릭으로 담담히 꾸민 침실입니다. 벽에는 독특한 물건이 있습니다. 레이싱 자전거의 손잡이로 만든 자전거 걸이입니다. 숙박객은 자전거를 침실까지 가져와서 벽에 걸어둘 수 있습니다. 애차愛車와 한 공간에서 잘 수 있는거죠.

앞서 말했듯, 이 호텔의 독특한 콘셉트는 '자전거 여행족을 위한 공간' 입니다. 원한다면 여행 전에 집에 있는 자전거를 오노미치 U2로 미리 보내둘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체크인하고, 객실로 들여와서 벽에 걸어두고, 호텔의 전문가가 자전거를 수리하며, 체크아웃할 때 자택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족을 위해 특화된 호텔입니다.



'창고를 개조한 자전거 콘셉트의 호텔.'

물론, 다른 호텔에서 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노미치 U2를 둘러본 후, 이곳이 마음에 든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환호한 것은 의외로 평범합니다. 좋은 공간 디자인, 가게와 제품의 질, 직원들의 태도와 인상, 그들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겸손하지만 감도 높습니다. 숍에서는 최고급 재질의 데님 소품을 판매합니다. 베이커리에서는 천연 발효종을 사용해서 빵을 만듭니다. 와인은 유기농 제품을 취급하고요.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최상품 해산물로 화덕에 바로 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수리공은 능숙한 영어로 랜탈 가이드를 해주었습니다. 직원들의 서비스는 적절하고 수준 높습니다. 좋은 생각을 가진 공간 기획자 재능있는 디자이너와 함께 호텔을 만들고, 높은 수준의 운영 방식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오노미치는 그리 세련된 마을이 아닙니다. 변변한 관광지 하나 없는 오래된 항구 도시입니다. 한때는 입지가 좋고 앞 바다의 수심이 얕은 덕분에 많은 배가 드나들었습니다. 돈과 사람들이 몰려 들던 시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이 발달하고 배의 규모가 커지자 이런 장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심이 깊고 큰 배가 드나들기 쉬운 주변의 도시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며 급격히 쇠락합니다. 후배들에게 밀려난 초라한 노년입니다. 어느날 노년이 둘러보니, 한산한 항구 구석에 한 때 물건으로 넘치나던 해변의 콘크리트 창고가 보였습니다.

자, 여러분이 여기에 누군가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떤 공간을 만들까요?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가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폴 스미스는 어쩌다가 오노미치 U2를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앞서, 매력도시 연구소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어딘가 일본 소도시에 독특한 공간이 있어' 라고 트렌드에 민감한 지인이 소개했기 때문이었다는 얘기를 했을 겁니다. 아마 폴 스미스도 비슷했을 겁니다. '폴, 요즘도 자전거 타? 일본의 어느 촌구석에 가니까 자전거를 컨셉트로 꾸민 호텔이 있더라고. 한 번 가봐.' 자전거라는 말에 끌려 이곳에 온 스미스는 의외의 발견을 했을 겁니다. 잡화점의 물건 수준에 놀라고, 맛있는 해산물 구이를 즐겁게 먹고, 세련된 서비스로 무장한 직원들을 본 후 결정했겠죠. '여기라면 내가 디자인한 물건들을 가져다 둬도 되겠네.'


우리가 둘러보니, 오노미치 U2는 자전거 콘셉트를 과하게 내세우지도, 오노미치라는 지역 특성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양념처럼 살짝 갖추고, 오노미치 속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 듯 창고를 꾸몄습니다. 좋은 디자인으로 무대를 만들고 적절한 배우들을 이 공간에 세우자, 오래된 오노미치에 세련된 콘텐츠로 무장한 작은 점 하나가 생겼습니다. 오래 입어온 단색 수트에 알록달록한 양말 하나를 포인트로 삼아 패션을 완성한 노년 신사 처럼, 작지만 단단한 컨텐츠를 갖춘 점이 도시에 찍힌 것이죠.



이렇게 하자, 오노미치 U2는 전 세계로 신호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 근사한 음식과 물건으로 가득 채운 공간이 있어요. 세상의 멋쟁이들, 안심하고 한번 와보세요' 라고요. 폴 스미스도 그 신호를 받았습니다.  수준 높으신 영국의 남작님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겁니다.


공동 기획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래된 창고를 현대 호텔과 레스토랑, 상점 등을 즐길 수있는 복합 시설로 리노베이션 한 U2를 반년 전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자전거와 일체화된 이 지역에 나는 매우 친근감을 가졌습니다. 자전거 프레임에 사용되는 합금강의 배합 비율로 유명한 '531'라는 숫자를 기본 프린트로 한 공동 상품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폴 스미스


폴 스미스도 만족했으니, 이곳은 단지 자전거 족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저녁 시간, 오노미치 U2는 데이트하는 남녀,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넥타이를 맨 출장객, 외국인들로 붐볐습니다. 오노미치 U2는 외국인 투숙객이 30퍼센트에 이릅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좋은 음식을 나누고, 질 좋은 제품을 판매합니다.

그리고, 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잡화점을 둘러보다가 이 지역이 고급 데님의 산지이며, 마을에 한 구석에 청바지 디자이너가 낸 좋은 가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저녁, 맛있게 먹은 딱새우 구이를 재래 시장의 오래된 이자카야에서도 맛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얻습니다. 자, 이제 호텔을 벗어나 도시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오노미치 U2는 신호를 보내 멋진 신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 후, 오래된 도시로 내보내는 '발신기지 發信基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호텔을 벗어나 자전거도 타보고, 시장 구경도 하고, 호젓한 언덕길도 걸어보죠.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폴 스미스의 자전거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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