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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Nov 02. 2017

고양이 언덕: 심심함이 도시의 매력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3)


오래된 해운 창고를 멋지게 개조한 호텔 복합시설, 오노미치 U2에 머물고 있습니다. 들여다볼수록 매력 넘치는 공간입니다. 공간이라기보다는, 작은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루 종일 창고 안에 콕 박혀서 레스토랑, 커피숍, 바, 숍, 호텔을 이용하며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리는 호사도 잠시, 우리는 슬슬 바깥세상이 궁금했습니다. 세련된 의식주로 짜인 무대 같은 공간을 나와서, 오노미치의 맨 얼굴을 보고 싶었달까요. 마을 산보에 나섰습니다.


1편은: 오노미치 U2_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

2편은 여기: 오노미치 U2: 어서 오세요, 폴 스미스 경




고양이의 마을, 오노미치


오노미치가 심심한 동네라는 점은 앞서 누차 말했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항구도시입니다. 센코지 千光寺라는 절이 유명하긴 한데, 그리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마을 뒤편의 언덕 위에서 한적하게 참배객을 기다리는 절일 뿐입니다.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서 절을 감상한 후,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기본적으로 마을 구경이 끝납니다. 굳이 재미라면, 골목길이 꼬불꼬불하다는 것 정도일까요. 서울의 이화동이나 삼청동에서 볼 수 있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마저도 대단한 볼거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근거도 없이 '오노미치는 심심한 도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 탐방에 나서기 전, 이 도시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한적한 언덕의 골목, 고양이를 보러 가자.'  따위의 기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오노미치가 '고양이의 마을'이라고 소개하는 글도 있습니다. 얼마나 볼거리가 없으면 골목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러 오라고 하겠습니까. 대체 누가 길 고양이 따위를 보러 지방의 소도시까지 온다고... 네, 그런데 놀랍게도, 관광객들이 옵니다.  젊은 여성 둘이 사진기를 들고 오노미치의 언덕길을 오릅니다. "예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두근두근해."  "어머, 저기 있어. 꺅. (찰칵찰칵)." "오늘 정말 운이 좋은데"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는 말입니다.


https://en.japantravel.com


진작 이런 줄 알았으면 이화동과 삼청동 골목에도 고양이를 더 풀어놓을 걸 그랬죠? 오노미치의 언덕이 삼청동과 다른 점은 있습니다. 삼청동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붐비지 않고, 이화동처럼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벽화도 없습니다. 담담하고 심심한 골목일 뿐입니다. 생각보다 고양이 발견도 쉽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 가끔 귀여운 고양이를 마주치면 고양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경입니다. 


실은 이곳이 고양이의 골목으로 불리는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소노야마 슌지(園山春二)라는 예술가 때문입니다. 20년 전, 그는 오노미치에 왔다가 이 언덕 골목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사찰 벽화를 그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던 그는 언덕의 집을 수리해서 이곳에 눌러앉습니다. 그리고 둥근 돌멩이에 고양이를 그려 넣는 일을 하는데요, 귀여운 고양이, 웃는 고양이, 놀란 고양이 등등 각양각색의 표정을 물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고양이 돌멩이가 108개. 그는 오노미치 언덕 곳곳에 돌멩이들을 숨겨 둡니다. 처마 밑이나 대나무 숲 사이 같은 곳 말이죠. 

자, 보물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든 여고생들이 고양이 돌멩이를 하나 찾을 때마다, '꺅 가와이~'라고 소리 지릅니다. 행운의 고양이를 찾아 전국의 고양이 팬들이 오노미치로 몰려왔습니다. 소노야마 슌지 씨의 귀여운 장난에 걸려들었네요.


https://setouchifinder.com



고양이와 돌멩이를 찾다가 골목에 숨은 오래된 커피숍을 만났습니다. 손으로 쓴 메뉴판을 내걸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낡은 돌담, 바람이 스치는 대나무 숲. 낮잠 자는 고양이. 한적하고 따스한 풍경입니다. 이런 한적함이 좋아서 오노미치의 언덕을 걷습니다.


한적함이 관광자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오노미치의 독특한 지형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의 북쪽에는 언덕이 있고, 언덕이 내려오다가 급하게 바다를 만납니다. 언덕과 바다 사이의 좁은 평지에 다닥다닥 마을이 들어서 있고, 평지를 차지하지 못한 집들은 언덕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언덕 위의 집으로 가기 위해 비탈길이 생기고, 비탈길을 연결하는 작은 돌계단이 놓이고, 계단을 둘 수 없는 급한 경사는 돌벽을 쌓아 막았습니다. 그리고, 돌계단과 돌벽의 틈에 고양이들이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내려다보고 있는 오노미치의 경관입니다. 멀리 바닷가에 오노미치 U2의 콘크리트 지붕이 보이네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적하고 심심한 경관이 오노미치가 가진 '발 밑의 보물'이었습니다. 오노미치를 찾아온 사람들이 SNS에 올려놓은 사진들은 대부분 돌계단, 고양이, 바다와 언덕의 풍경입니다. 심심한 풍경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거장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도쿄 스토리>를 촬영한 장소가 여기라고 합니다. 도쿄의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사는 노부부의 고향 이미지로 딱 들어맞았던 것이죠. 


한적함이 관광자원이고, 심심함이 도시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Reference

고양이의 눈으로 보는 오노미치 CAT STREET 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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