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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Nov 17. 2017

오노미치 상점가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4)


고양이 언덕을 내려와 오노미치 상점가 尾道本通り商店街 를 따라 걸었습니다. 둥근 지붕이 길게 덮인 상점가 양쪽으로 오래된 술집과 잡화점이 늘어서 있습니다. 형광등을 안에 넣고 불을 밝힌 옛날식 간판들이 걸려있고, 가게 주인들의 자전거가 문 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100년쯤 된 오래된 목욕탕, 야마토유大和湯를 개조해서 만든 기념품 상점을 만났습니다. 오래된 아치 장식  밑에 한 글자씩 쓴 붓글씨 간판이 고풍스럽습니다. 목재 창문틀에 칠한 하늘색 페인트는 조금씩 벗겨져 있고, 가게로 용도가 바뀐 내부에는 목욕탕 시설의 흔적을 남겨 두었습니다. 곱게 잘 늙어 가는 건물입니다. 관광객들이 건물 앞에 모여 사진기 셔터를 열심히 눌러댑니다. 세월을 버텨온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끕니다. 오노미치 같은 오래된 도시가 가진 중요한 매력 자산입니다.



오래된 상점들 위에 아치 지붕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공간을 '아케이드 Arcade 상점가'라고 부르는데, 지붕 덮인 골목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골목길 양쪽으로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요.

아케이드 상점가는 뿌연 빛 감도는 은밀한 분위기입니다. 반투명 아치 지붕이 걸러낸 빛이 고르게 상점가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햇빛을 받고 있으니 외부라고도 할 수 있고, 지붕이 덮여 있으니 내부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케이드 상점가입니다. 비와 눈을 피해 쇼핑을 할 수 있으니 내부 공간이라 봐도 좋고, 골목길을 통해 흐르는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 외부 공간의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반半 외부공간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겠군요. 늘어 선 가게들을 구경하며 이것저것 간식을 사 먹는 즐거움도 있어서, 도시 산책의 핵심 루트라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쯤, 일본많은 도시 아케이드 상점가가 세워졌습니다. 낮에는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밤에는 식사와 술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죠. '심심한데, 상점가나 다녀올까?' 이런 가벼운 감각으로 아케이드에 나갔습니다. 요즘 쇼핑몰의 원조라고 보면 될 텐데, 다만 지금의 쇼핑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명품숍 같은 화려한 가게들이 아니라, 정육점, 생선가게, 철물점이 상점가를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민 밀착형 상업 시설이 모여있는 것이죠. 자생적으로 들어선 소형 상업 시설군이 하나의 지붕 아래 모여있는 것이 아케이드 상점가의 본질입니다. 오노미치 상점가의 지붕은 도시의 중심을 관통하며 무려 3킬로미터 가까이 뻗어있습니다. 오노미치가 한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도시였는지, 상업이 융성했는지 상상케 합니다.

 


아케이드 상점, 지붕이 만드는 상인 커뮤니티


지붕 아래에 모인 자생적 상점가는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지붕을 공유한 가게의 사장님들은  골목길과 지붕을 함께 유지 보수할 책임이 생깁니다. 결국은 돈이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가게의 규모와 위치에 맞게 이 비용을 나누어 내야 할 텐데요. 이를 조정하기 위해 가게의 주인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이익을 위한 룰을 만듭니다. 지붕이 만드는 상인 커뮤니티입니다. 지붕 때문에 유대 관계가 생기고, 상점가 번영이라는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뭉칩니다.



안타깝게도 경제 하락기를 맞아 아케이드 상점의 인기도 서서히 내려갔습니다. 가게들은 하나하나 셔터를 내렸습니다. 지방 도시의 인구가 줄어 쇼핑을 나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적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적어지자, 은밀한 빛을 내뿜던 아케이드의 독특한 분위기 오히려 사람들을 오지 않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일 때는 은은한 분위기가 매력 있었지만,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으슥하고 음울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쭉 뻗은 골목길, 셔터 내린 가게들. 이런 곳을 혼자 걸어가던 여성이 골목 코너에서 침침한 그림자라도 만난다면 진땀날 법합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아케이드 상점의 성공 조건은  활기입니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만드는 활기 말입니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으면 셔 내린 가게가 늘어납니다. 셔터가 늘어나면 사람들의 숫자가 더 적어집니다. 셔터의 악순환이 시작되면 지붕 아래의 골목은 순식간에 슬럼 slum이 됩니다. 잘 될 때는 참 좋은데, 안되면 없느니만 못한 것. 아케이드 지붕의 양면성입니다.


진짜 괴로운 일은 지금부터 입니다. 지역이 슬럼이 되면 아케이드를 유지 보수하기 위해 들어가던 부담이 고스란히 남은 가게들로 전가됩니다. 철거파들이 등장합니다. '돈만 잡아먹는 아케이드는 철거해버리자.' 합리적인 주장이죠. '음, 그래도 지역 명물이었는데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존파는 신중합니다만, 이들이 찾아낸 유일한 방법은 행정에 손을 벌리는 것입니다. 

운이 좋아서 지원금을 받고, 지붕은 간신히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게를 덮는 지붕에 함께 돈을 내고 정성을 들이던 상인들의 결속력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겠죠. 오노미치 상점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산업이 쇠퇴하면서 많은 가게들이 셔터를 내렸습니다. 셔터의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런데 언제인가부터 아케이드 상점가에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셔터가 닫힌 오래된 가게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생선가게와 쌀집 자리에 분위기 좋은 페와 베이커리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전국에서,  세계에서 사람들이 상점가를 찾아와, 오래된 공간에 들어선 세련된 가게에 들러 사진을 찍고 물건을 샀습니다. 아케이드 상점가에 부활의 조짐이 일어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


오래된 아케이드 상점가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오래된 건물이나 가게에 애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고풍 시인 것이. 오래된 건물이나 공간뿐 닙니다. 노스탤지어는 요즘 문화와 사고의 전반적인 추세 보입니. 아날로그 방식의 삶이 각광받고,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속도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노스탤지어에는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노스탤지어의 본질은 좋았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땐 그랬지.' 중장년층이 노래처럼 하는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노스탤지어는 중장년층이 느끼는 감성일 텐데, 최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노미이치의 낡은 돌 길을 걷고, 오래된 찻집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20, 30대의 젊은 층입니다.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들을 보고 있으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가 요즘의 젊은 층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된 목욕탕에서 몸을 씻어 본 경험이 없는 20대들이 낡은 목욕탕 타일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요.



로컬의 집적, 재래시장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아케이드 쇠락의 원인이었던 경제 하락 덕분에 시장의 본모습이  점입니다. 재개발이나 현대화 사업을 벌일 여유 없었기 때문에 야마토유 목욕탕은 기념품 상점 사장님에게 원래 모습 그대로 넘겨졌습니다. 

상점가의 보존과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상점가와 재래시장이 지역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작은 가게들의 집합체라는 것이 상점가의 본질이다 보니, 대규모의 상업시설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스타벅스와 이마트가 작은 상점 10개쯤을 한꺼번에 통 매입해서 대형 상점을 열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평평하게 Flat World' 만드는 사업들이 발붙이기 힘든 곳이 바로 여기, 좁고 길게 뻗은 아케이드 상점가입니다. 지붕으로 덮인 상점가의 외관뿐 아니라, 작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인적 구성 보존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케이드 시장,  넓게 보면 도 재래시장의 부활은 오노미치의 일만은 아닙니다. 서울의 광장시장, 망원시장, 통인시장이 다시 뜨고, 이삼십 대와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다시 살아난 오노미치 상점가와 서울의 재래시장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의 작은 가게를 채운 새로운 세대의 가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오노미치 상점가의 <타카하라 세이키치 쇼쿠도 高原誠吉食堂>가 그런 곳입니다. 아케이드 상점가 한편에 자리 잡은 일식 레스토랑입니다. 가게의 외관은 상점가의 다른 가게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밋밋한 페인트 벽에 작은 창들을 낸 평범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모던한 일본풍의 인테리어가 펼쳐집니다. 원목으로 만든 바 테이블에 앉으면 주방 너머로 작은 일본식 정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도쿄에 있어도 손색없는 우아한 레스토랑을 오노미치의 오래된 아케이드 상점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레트로 retro와 힙 hip의 만남입니다.


오노미치 아케이드 상점가의 재미는 오래된 가게들 사이에 숨은 감도 좋은 공간을 구경하는 데 있었습니다. 일종의 대조 효과랄까요? 허름한 시장 골목에 감각 있는 가게가 놓이니까 금방 눈이 갑니다. 소박한 옛 것도 원하고 세련된 것도 원하는 우리의 들쭉날쭉한 마음의 변덕을 모두 받아주는 곳이 오노미치 상점가입니다. 오노미치 U2가 우리의 마음을 끈 것도 같은 이유겠죠. 오래된 해변 창고에 멋진 호텔이 들어 있는 대조 효과 때문입니다.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간결한 모양의 디자인 가방을 제작 판매하는 회사 Rawraw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한편에 쇼룸을 오픈했습니다. 품질 좋은 한우 스테이크를 파는 본 앤 브레드 Born & Bred는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 레스토랑을 냈습니다. 디자인 가방, 스테이크 같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아이템을 지역 특색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마약 김밥과 순이네 빈대한 지붕 아래에 있는 디자인 가방 회사. 이런 회사들은 지역성과 인적 구성이 훼손되지 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의 사업과 공간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로컬의 배경인터내셔널의 특이점을 찍는다고 할까요.



로컬의 배경에 인터내셔널의 특이점을 찍는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재래시장을 바라보는 두 가지 흐름이 보입니다. 하나의 흐름은 시장 전체를 손 보는 현대화 사업입니다. 행정의 힘으로 지붕을 새롭게 보수하고, 시장 입구에 표시물을 세우고, 모든 가게들에게 일련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가게의 간판으로 아름다운 그래픽으로 바꾸어주는 사업입니다. 서울의 통인시장에서 이런 일을 벌였고, 광주의 1913 송정역 시장은 대기업이 사업을 주도했습니다.


오노미치 상점가에서는 대안이 되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닫힌 셔터와 오래된 가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이에 강력하고 매력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오노미치 상점가에  서서 먹는 빵집 <빵야코로 パン屋航路>, <마리온 크레페 Marion Crepe> 같은 상점들이 그런 곳입니다. 좋은 인테리어와 편한 좌석으로 주변의 오래된 상점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고 공간의 느낌을 복고풍으로 유지해서 상점가의 분위기에 녹아듭니다. 독특한 상점과 맛집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이고, 주변의 오래된 가게에도 들러보게 됩니다. 강력한 점들로 먼저 유인하고, 선형의 상점가를 걷게 만듭니다.

전체를 손댈 것인가, 강력한 점들을 만들 것인가, 오노미치 상점가를 걸으며 생각해 볼만한 질문입니다.


상점가를 따라 산책을 계속했습니다.  긴 상점가의 끝에, 강력한 점들 중에서도 정점을 찍은 놀라운 가게, <오노미치 데님 숍>을 만났습니다. 오노미치 데님 숍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지난 이야기는 여기에:

1편: 오노미치 U2_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

2편: 오노미치 U2: 어서 오세요, 폴 스미스 경

3편: 고양이 언덕: 심심함이 도시의 매력



Reference

오노미치 상점가 회장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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