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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Nov 24. 2017

오노미치 데님숍: 청바지로 사람들을 잇다.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5)


상점가를 따라 걷다가, 독특한 가게를 만났습니다. <오노미치 데님숍> 입니다. 좁고 긴 공간에 나무 합판으로 만든 테이블만 하나 달랑 놓여있고, 그 위에 청바지를 일렬로 눕혀 두었습니다. 의장대 사열처럼 줄을 딱 맞춘 청바지들이 부동자세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벽에는 도시의 모습을 촬영한 흑백 사진 몇 장이 걸려있고요. 이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청바지와 도시 사진, 우리 가게의 전부입니다.' 가게가 이런 말을 손님에게 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데님 숍'이라고 했으니, 가게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당연히 청바지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중고 청바지, 즉 누군가 입었던 청바지를 세탁, 가공해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오노미치에 온 기념으로 하나 사볼까?' 자세히 살펴보다가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벌이 무려 50만 원! 명품 청바지도 아니고, 중고 청바지 가격으로는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청바지에 이런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직업(청바지를 입었던 사람) : 어부, 허리 사이즈: 94, 가격: 4만 8천엔"

오노미치 인근에서 일하는 동네 어부가 입던 청바지라는 설명입니다. 궁금함은 커졌습니다. 동네 어부가 입던 청바지를 비싼 가격으로 파는 이유가 뭘까요?


<오노미치 데님 숍>은 도시와 청바지, 이 두 개의 키워드로 근사한 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노미치 일대는 질 좋은 데님의 생산지입니다. 100년이 넘는 데님 생산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해외에서 만든 저가의 청바지들이 수입되면서 지역 공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카스미 오가와 씨와 친구들은 지역의 자랑인 데님을 주변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성실한 장인들이 만드는 청바지의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지역의 공장들도 저가의 청바지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엉뚱한 발상이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청바지는 입는 사람에 의해 색깔이나 모양이 바뀐다는 것에 착안, 오노미치에 사는 주민들이 입던 청바지를 재가공해서 내놓기로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평범한 오노미치 사람들이 입었던 청바지를 수집하고 지역의 장인들이 재가공해서 판매한다.' 이것이 <오노미치 데님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몇 벌이나 수집이 가능할까요? 평범한 주민이 입던 청바지를 구입할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조금은 황당한 계획이었습니다. 오노미치 데님 숍이 청바지에 내건 조건은 세 가지. 1) 오노미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입었던 청바지일 것, 2) 개성 있는 사람일 것, 3) 적어도 일주일에 4일 이상 같은 청바지를 입고 있을 것.


http://www.onomichidenim.com


점점 더 황당 지수가 상승하고 있죠? 이들이 사업을 위해 처음으로 한 일은 입던 청바지를 벗어(!) 줄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목표는 200벌. 동네의 어부, 농부, 스님, 술집 사장을 만나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체크하고 일정 기간 입은 청바지를 모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젝트를 설명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녀의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가져다준 청바지가 쌓였습니다. 멧돼지 사냥꾼 아저씨가 입었던 청바지는 허벅지 부분이 희미한 동물의 혈흔이 남았습니다. 험한 산속을 헤치고 다니며 사냥을 하던 흔적이 청바지에 남은 것이죠. 어부이자 지역 협동조합장님이 입었던 청바지는 다리가 약간 짧고 헐렁합니다. 장화를 신고 벗기 좋은 모양입니다. 매일매일 물건을 옮기다 보니 청바지의 특정 부분이 닳았습니다. 직업과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 청바지에 새겨진 것입니다.


http://www.onomichidenim.com


그녀는 이 청바지를 인근의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평생 청바지를 생산해온 공장의 장인들이 섬세한 손길로 세탁하고 재가공했습니다. 장인들의 목표는 새 것처럼 보이는 청바지로 가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었던 사람의 특성이 남은 청바지를 한 벌 한 벌 들여다보고, 새겨진 흔적을 존중하며 청바지를 매만졌습니다. 세탁한 청바지는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착용과 세탁을 반복합니다.


오노미치 데님 숍에 일렬로 놓여있는 청바지는 이런 사연을 거쳐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한 벌 제작에 1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비싼 이유를 아시겠죠? 게다가, 이 청바지는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오노미치에 있는 가게로 와서, 누가 입던 청바지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설명을 듣고 나서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대면 판매 對面販賣를 가게의 원칙으로 정한 것입니다. 오노미치, 동네 사람들, 지역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야 청바지 한 벌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벌의 옷이라기보다는 지역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기념품을 구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과연, 팔릴까요? 멧돼지 피 얼룩이 아직도 남아있는 중고 청바지가?  네, 팔립니다. 지역의 고등학생이, 도쿄에서 온 여성이, 자전거를 타러 해외에서 온 관광객이, 사냥꾼과 어부가 입던 바지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청바지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농부와 데님 장인이 청바지를 매개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부 할아버지가 입던 청바지를 지역의 고등학생이 입고 다닙니다. 도시의 여성이 상점가 주인과 연결되었습니다. 100년 전통의 데님 생산지의 역사와 섬세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의 스토리가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오노미치 데님 숍에서 청바지를 직접 보고 온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스토리를 제외하고 보자면, 청바지는 참 평범합니다. 오노미치 언덕에 숨겨둔 고양이 돌멩이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고 물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겠죠. 우리는 청바지와 고양이를 찾아가다가 골목의 작은 가게, 상점가의 오래된 찻집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청바지의 제작 과정을 듣고, 오노미치에 사는 평범한 이웃개성, 작은 항구 마을의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들과 소박한 역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오노미치를 다시 보게 되었달까요. 청바지는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내서, 관광객과 지역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세대, 지역, 성별을 초월한 사람들의 연결. 쇠락한 지방도시가 그렇게도 하고 싶은 일을, 상점가 끝에 조용히 숨은 10평 남짓 작은 가게가 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그려진 돌멩이도 마찬가지고요.


지방도시가 원하는 사람들의 연결, 청바지가 해내다.


동네 구경을 마치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오노미치 U2의 근사한 바에서 하루를 마무리할까 하다가, 우리는 상점가의 작은 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굵은 뿔테 안경을 쓴 바텐더 아저씨가 전단지와 장난감으 어수선 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 대여섯 명이 테이블에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서 뿔테 바텐더가 건넨 하이볼 한잔 했습니다. 이른 저녁, 살짝 취한 오노미치 사람들의 잔잔한 웃음과 수다를 배경으로요. 청바지의 주인공들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지난 이야기는 여기에:

1편: 오노미치 U2_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

2편: 오노미치 U2: 어서 오세요, 폴 스미스 경

3편: 고양이 언덕: 심심함이 도시의 매력

4편: 오노미치 상점가


Reference

오노미치 데님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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