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6)
'자전거족의 성지.' '세계 7대 자전거 도로.'
일본의 <세토우치 시마나미 해안도로 瀬戸内しまなみ海道>를 소개하는 말입니다. 줄여서 <시마나미 해안도로>라고 부르는 이 길은 바다 위 작은 섬들을 이으며 뻗어있는데, 일품 경치를 즐기며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해협 횡단 자전거 도로입니다. 섬을 연결하는 높은 다리를 건너다보면 발아래 푸른 바다와 다도해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일본 전국, 아니 전 세계의 자전거 마니아들이 언젠가 꼭 라이드 해보고 싶은 코스로 꼽는 곳입니다. 자전거족의 성지 순례 코스죠.
시마나미 해안도로가 일본 본토 쪽에서 시작되는 지점이 우리가 와 있는 오노미치입니다. 그래서, 타봤습니다. 매력도시 멤버들이 자전거를 타고, 과연 세계적인 자전거 도로로 불릴 만 한지, 검증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오노미치 U2>가 자전거족을 위한 호텔이라는 이야기를 앞선 글에서 했었죠? 오노미치에 자전거 콘셉트의 호텔이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오노미치가 시마나미 카이도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자전거 족들이 푸른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족을 위해 디자인된 멋진 호텔로 돌아와서 쉰다. 라이더들이라면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이야기를 놓치신 분들은 오노미치 U2: 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검증에 참여한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들을 자전거와 연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조성익 교수: 가끔 자전거로 출근 / 보유 자전거 삼천리 / 하루 최대 주파 기록 20Km
이호 대표: 주말 라이더 / 보유 자전거 클라인 Klein MTB / 최대 주파 기록 80Km
김기중 이사: 보유 자전거 없음 / 최대 주파 기록 40km
김정영 상무: 보유 자전거 없음 / 최대 주파 기록 동네 한 바퀴
세계 7대 자전거 도로 검증에 적합한 그룹인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자전거 능력 레벨이 상중하로 적절히 안배되었다는 점에서 우수하다고 자평합니다.
자, 먼저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오노미치 U2> 호텔은 자신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착 전, 미리 호텔로 자전거를 배송해 둘 수 있고, 호텔 룸 내부까지 애차 愛車를 가지고 들어와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빌려야 한다면, 호텔의 프런트에서 Giant사의 최고급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지한 라이더라면 최고급 자전거를 테스트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처럼) 그럭저럭 라이더라면, 호텔에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를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평범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자전거를 빌릴 수 있습니다.
평범한 자전거를 선택한 매력도시 연구원들, 드디어 세계 7대 자전거 코스 검증 시작.
시작 지점부터 재미있습니다. 자전거 대여소 앞에 있는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첫 번째 섬으로 이동합니다.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는 방법도 있지만, 운치 있게 배를 타고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얻은 자전거 지도를 보면, 뱃길이 자전거 코스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전거와 배를 번갈아 타며 섬을 건너 다닌다, 우리나라 다도해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건너편 섬에 도착해서 해안선을 따라갔습니다. 잔잔한 2월의 바다를 따라 조용한 길이 뻗어 있습니다. 작은 바위섬들이 수평선에 떠 있고, 자갈로 채워진 해변에 파도가 차르륵 밀려옵니다. 가볍고 연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페달을 밞았습니다. 길의 한편에는 고요한 바다의 풍경, 다른 한편에는 한적한 섬 마을 풍경. 평화로운 길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자전거 도로였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도로입니다. 자전거 전용 도로도 아니고, 자동차 통행량이 적은 한적한 길에 페인트로 자전거 코스를 표시했습니다. 수선 떨지 않고, 좋은 풍경을 따라 페인트 선 하나 그어 놓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여하튼, 4명의 매력도시 연구원들이 묵묵히 자전거 도로를 검증해갔습니다. 반갑게도 길 가에 오렌지를 파는 노점이 보였습니다. 잠깐 서서 오렌지를 사 먹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동네 빵집이 나타났습니다. 빵도 안 먹을 수 없었습니다. 1시간도 안돼서,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페리를 타고 섬으로 올 때만 해도 다들 전의에 불타올랐는데, 슬슬 이쯤 했으니 검증된 것 아닌가, 좋은 코스라고 생각한다, 라는 의견이 후미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오렌지와 빵을 먹은 후미 그룹은 낙오.
자전거 경력이 가장 긴 이호 대표만 남았습니다. 고독한 라이드를 하던 이호 대표가 발견한 곳이 <타치바나 식당 立花食堂>입니다. 이노시마 대교 인근에 있는 가정집 풍의 식당 겸 카페입니다. 자전거를 열심히 달려 도착한 단층집. 조용한 마당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물 덮밥. 완벽한 한 끼 아닙니까. 이 집은 원래 지역 기업의 휴양시설이었는데, 쓸모가 줄어들자 식당으로 개조했습니다. 감자, 브로콜리, 우엉 같은 건강 재료로 만든 정식을 내고 있습니다. 가게의 콘셉트는 "먹어본 사람이 만들어 보고 싶어 지는 요리"라고 합니다. 따뜻한 기분이 감도는 집입니다.
결국 이호 대표도 여기까지. 시마나미 카이도의 전체 코스 검증에는 실패했지만, 체력을 길러서 언젠가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고 오노미치로 돌아왔습니다.
자전거의 확장력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착착 분해해서 버스의 짐칸에 싣고 떠나는 라이더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애차로 독특한 풍경 속을 달려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여가 활동입니다. "나 이번 휴가에는 제주 해안도로를 일주할 계획이야." "길게 휴가를 낼 수 있으면 남 프랑스의 도로를 달려볼 텐데." 라이더들은 이런 꿈을 꿉니다. 언젠가 지방 도시에서 만난 회사원은 한반도를 종단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주말에 일정 구역을 달리고, 주중에 서울에서 직장 일을 한 후, 다음 주말에는 지난주의 종착점으로 와서 다시 종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전거족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주 해안도로 일주, 동해안 종단, 미국 대륙 횡단. 출발점과 목표점을 정하고 그 사이에 선형의 경험을 계획합니다. 자전거에 올라 미지의 장소를 달려, 지나온 궤적을 남기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열심히 달리면 하루에 100킬로미터 남짓 선을 그을 수 있죠. 새로운 장소에 선 긋기를 하고 싶은 라이더가 늘어나면서 '사이클 투어리즘 Cycle tourism'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자전거를 탈 것으로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라이더들은 적극적입니다.
멋진 풍경이 있는 도로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거친 산악 지형을 찾아가 스릴 넘치는 라이드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소를 가진 지방의 도시들은 열성적인 라이더들의 목표가 됩니다.
장시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준비도 적극적입니다. 장소에 맞는 장비를 갖추고, 의류와 소품들이 구매합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편안한 휴식을 원합니다. 이런 요구를 만족시키는 장소를 찾습니다. 자전거 코스 주변으로 질 좋은 레스토랑, 숙박, 정비, 용품 상점이 있다면 대환영입니다. 안전하게 고가의 자전거를 보관하고, 수리해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욱 좋고요. 라이더들의 적극성 덕분에, 사이클 투어리즘은 관련 상품의 소비로, 공간의 체류로 이어집니다. 자전거가 관광, 식음료, 상품 소비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사이클 투어리즘의 또 다른 특징은 넓은 소비층입니다. 트렌디한 소비시장이 대부분 20, 30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반면, 자전거는 구매력 높은 30-40대 이상의 남성층까지 포괄합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것이죠. 세대를 넘는 소비 확장력을, 자전거가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상호 교류가 라이더의 특징입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한다면, 지역 정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로 상황, 기후 변화,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코스에 대한 정보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라이더들은 지역 사람들, 다른 라이더들과 교류에 적극적입니다. 교류를 라이더의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끼리 독특한 유대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찰싹 달라붙는 사이클 복장을 하고 있으면 서로 금세 알아볼 수 있고, 서로 예의를 지키고, 도와주려는 동료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모일 공간이 필요합니다. 함께 쉬고, 교류하고, 먹고, 마시고, 고칠 곳이 말이죠. 자전거 인포메이션 포인트, 사이클 호텔, 사이클 캠프, 자전거족 레스토랑이 있어야 합니다. 라이더들은 자신이 긋는 선위에 거점이 필요합니다. 오노미치 U2와 타치바나 식당처럼요.
사이클 투어리즘, 지방 소도시의 기회
방문객을 기다리는 지방 소도시 입장에서, 사이클 투어리즘은 큰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 자전거 탈만해"라는 소문만 나면, 라이더들이 제 발로 찾아옵니다. 프랑스의 전국 일주 자전거 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 Le Tour de France>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주일 동안 벌어지는 경주 내내 중계 카메라가 자전거 선수들을 따라다니는데, 선수들의 배경으로 프랑스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은 매해 바뀌는 경주 루트에 포함되기를 열렬히 원합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루트에 들어가면, 별것 없는 피레네 산맥 촌구석까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마을 입장에서는 투자비가 별로 들지 않는다는 것도 사이클 투어리즘의 장점입니다. 자전거는 F1 자동차 트랙 같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경치 좋은 한적한 도로만 있으면 됩니다. 하루에 자동차 몇 대 겨우 지나가는 한적한 도로. 지방 소도시들에 흔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놀고 있는 지역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자전거입니다. 오래된 도로, 폐쇄된 다리가 큰 투자 없이 자전거 도로로 재이용될 수 있습니다. 유럽 이스트리아 반도의 <파랜자나 루트 Parenzana>가 그런 예입니다. 1930년대에 폐기된 철도를 자전거 도로로 개방하자, 세계적인 자전거 명소가 되었습니다.
선을 그을까, 점을 찍을까
만약 지방 소도시가 자전거 매력도시가 되려고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세계 7대 자전거 도로 중 하나를 (조금) 경험한 연구원으로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애초에 자전거를 타볼까,라고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자전거 도로의 출발점에 강력한 거점, 오노미치 U2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노미치 U2에는 좋은 자전거, 보기 좋은 지도, 친절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라이드 후,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식당, 바, 호텔이 있어서 우리는 부담 없이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라이드 중에 만난 타치바나 식당은 편안한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수준 높은 음식과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갔습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안심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오노미치 U2와 타치바나 식당은 도시에서 온 초보 라이더들에게 '우리가 있으니 안심하고 즐겨'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시마나미 해안도로의 멋진 풍경과 한적한 도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언젠가 한번 다시 와서 전 구간 일주를 도전해봐야지"라고 마음먹은 이유는 이 길 가에 있는 좋은 거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해안도로의 선 위에 놓인 미지의 점들 말이죠.
자전거 매력도시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예산을 들여 자전거 도로를 정비하고, 코스를 개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전거족을 위한 좋은 거점들이 지역에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라이더들의 적극성과 자전거의 확장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만든 호텔, 식당, 숍은 매력적인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거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은 라이더들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지난 이야기는 여기에:
4편: 오노미치 상점가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