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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Dec 22. 2017

소도시여, 발신기지를 가져라.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7)

매력도시 대담: 조성익 x 이호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매력도시 매거진 편집장

이호       FIT Place 대표,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




조성익   요즘 매력도시 연구소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단어가 바로 '발신기지 發信基地'인데요, 이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이호  매력도시 연구소가 오노미치를 찾아간 이유를 생각해보면 돼요. 우리가 가보자고 했던 이유는 <오노미치 U2>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감도 있는 디자인으로 잘 꾸며진 자전거 컨셉트의 호텔 복합시설', 이런 게 어딘가 일본의 작은 마을에 있다는 지인의 한 마디를 듣고 간 거예요. 도시가 특별히 궁금했다기보다는. 오노미치 U2는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 도시의 발신기지였죠. 


조성익   '이곳에 뭔가 있으니, 와서 봐'라고 신호를 보내는 도시의 한 점이 발신기지군요. 우리도 그 한 점을 보고 간 거고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오노미치 U2 하나를 보러 갔지만, 그곳에서 오래된 시장도 가고, 데님 프로젝트도 알게 되고, 자전거도 타고 왔어요. 신호에 이끌려 가서, 도시 전체를 발견하고 온 셈인데요.


이호   그게 바로 발신기지의 역할입니다. 매력적인 신호를 내뿜어 멀리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곳이 출발점이 되어 사람들을 도시의 여러 장소로 퍼뜨린다는 개념입니다. 


발신기지. 사실은 그리 특별한 개념이 아닙니다. 마음이 끌려 어딘가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발신기지입니다. 에펠탑은 파리의 발신기지이고,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발신기지입니다. 대도시의 랜드마크 건물은 우리를 쉽게 유혹하는 발신기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는 대중적 발신기지죠.


도시의 발신기지


신호를 보내 사람을 끌어들이고,
출발점이 되어 사람을 퍼뜨리는 것이 발신기지입니다.


조성익  사람을 끌어들여 주변으로 퍼뜨린다. 이런 식으로 발신기지의 개념을 생각해본다면, 뉴욕 현대미술관 MOMA라던가,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링컨 센터도 발신기지겠네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니까요. 문화 컨텐츠로 발신을 하는 것이겠죠.


이호  맞습니다. 말하자면, 대도시는 발신기지도 많고 종류도 세분화되어 있는 것인데요. 반면, 지방 소도시는 제대로 된 발신기지 하나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큰돈을 들여 랜드마크를 짓기도, 컨텐츠를 제대로 잘 갖춘 발신기지를 가지기도 어렵죠.

이런 관점에서, 오노미치 U2는 소도시에 적합한 발신기지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컨텐츠가 강한 발신기지죠. 거대한 규모로 여러 개의 발신기지를 만드는 것은 대도시에나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 소도시들은 강력한 한 점을 만드는데 집중하자. 이게 우리가 오노미치 U2에서 발견한 관점입니다.


조성익  일단 강력한 한 점에서 나오는 신호를 만들면, 그 신호에 관심이 있는 인플루언서 influencer들이 반응하고, 인플루언서를 동경하는 팔로어 follower가 따라온다는 것일 테고요. 인플루언서의 눈길을 끌 강력한 신호를 먼저 보낸다, 이게 핵심이네요. 발신기지를 만들기 쉽지 않은 지방도시일 수록 작지만 강한 컨텐츠를 만들어라. 오노미치 U2는 이런 측면에서 완벽한 발신기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런던의 폴 스미스 경에게 까지 신호가 닿았으니까요. 발신기지가 보내는 신호는 어떤 것이 특별해야 할까요?


이호  컨셉트와 감도感度, 두 가지를 신호에 실어 보내야 합니다. 물론, 둘 다 좋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오노미치 U2의 경우, 자전거가 컨셉트의 신호입니다. 세계 7대 자전거 도로인 <시마나미 카이도>의 출발점, 그 입지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자전거 테마의 복합 호텔을 만든다. 이게 오노미치 U2의 컨셉트죠. 자전거 매니아인 폴 스미스 경에게 그 신호가 닿았던 거고요.

그런데 컨셉트의 신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창고를 개조한 공간의 디자인과 호텔 서비스의 감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다, 이런 지방 소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수준 높은 시설이 있다. 이 신호가 감도의 신호입니다. 



'자전거 호텔이라, 컨셉트 좋은데?' '그런데 와 보니 디자인과 서비스 감도가 좋잖아.' 이 두 가지 반응이 방문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폴 스미스 경이 안심하고 몸을 눕혀도 좋을 정도의 침대와 조명과 인테리어와 호텔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도쿄에 있어도 아무 문제도 없을 정도의 호텔이 소도시에 있는 것입니다. 오노미치 U2의 유기농 와인, 지역 해산물 그릴, 지역 장인이 만든 명품 청바지는 인플루언서에게 명확한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 해야 발신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컨셉트와 감도感度,
두 가지를 신호에 실어 보내야 합니다.


조성익  우리가 그동안 소도시 활성화에서 간과했던 포인트가 오노미치 U2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방 소도시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을 때, 낙후된 지역을 전반적으로 활성화하자던가, 커뮤니티의 평균 수준을 높인다거나, 하는 일들은 이미 모두들 수긍하는데요. 이를 실행하고 있는 소도시도 있고요. 그런데, 오노미치 U2는 전체를 만지는 것보다는, 한 점을 갈고닦는 것이 효율적이다, 는 관점을 제시해줬어요. 


이호  지역의 평균을 올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죠. 다만, '매력적인 발신기지를 세운다'라는 생각은 지방 소도시가 고려해 볼 만한 꽤 좋은 방법입니다. 일단 한 점에라도 모여야, 오노미치 상점가도 가보는 것이고, 자전거 코스도 활성화되고, 로프웨이에 사람들도 붐비고... 그런 확장 효과가 있다, 그 얘깁니다. 우리 매력도시 연구소도 오노미치에서 같은 경험을 한 거고요. 


조성익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발신기지를 오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획이 획기적이거나 시설의 수준이 높아야 발신기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소도시에 고급스러운 호텔 지으라는 것이 아니냐, 이런 오해 말이죠. 럭셔리 공간을 만들어라, 국제적인 장소가 되는 것을 노려라, 이런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데요.


이호  인플루언서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간, 브랜딩, 제품... 이런 것을 만들어서 한 점을 찍으라는 의미죠. 예를 들어 오노미치 데님 같은 것 말이에요. 인플루언서들의 감도에 맞춰져 있고 그들이 와서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들. 쉽게 얘기하자면, 인플루언서들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것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매력도시 매거진의 다음 편에서 소개될 예정인데, 우리가 일본 오부세 있는 양조장을 방문했었죠. 고색창연한 건물에 있는 오래된 양조장인데, 술병 디자인을 하라 켄야에게 맡겼습니다. 양조장의 공간과 상관없이, 하라 켄야의 술병 하나에 우리가 반응했었어요. 이런 것이 한 점의 발신기지를 만드는 일이라고 봅니다. 


진열대에 놓인 좋은 디자인의 술병 하나도 발신기지가 될 수 있다, 호텔이나 상점 같은 공간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말하자면, 발신기지는 환경 속에 하나의 특이점을 놓는 일입니다. 오노미치 속에 놓인 오노미치 U2, 오부세 양조장 속에 놓인 하라 켄야의 술병. 이런 특이점들이 발신을 하면, 인플루언서들이 첫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조성익  '자, 알겠어, 우리도 발신기지 하나 세우자, 이제 뭐해야 돼?'라고 물으실, 성격 급한 도시 시장님, 행정가, 사업가들. (웃음) 이 분들에게 대답해주신다면?


이호  아마도 행정가, 사업가들은 마스터플랜에 익숙할 겁니다. 도시 전체의 스토리 속에 여러 시설물을 장기짝 두듯 배치하는 마스터플랜적 사고에 능한 사람들이니까요. 발신기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도시의 특이점인 발신기지는 지역과 굳이 연결될 필요가 없어요. 그 한 점으로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과의 연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말하자면, 발신기지를 만들기 위해선, 안티 마스터 플래닝 Anti-masterplanning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발신기지를 만들기 위해선, 
안티 마스터 플래닝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조성익  지역 전체를 다 건드리려는 마스터플랜적 사고에서, 특이점에 집중하는 안티 마스터플랜적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거군요. 특이점의 컨셉트나 감도를 지역 특성에 반드시 연계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요.


이호  오노미치는 쇠퇴한 지방도시죠. 한때, 해운의 중심지로 발전했다가 지금은 힘을 잃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시장님이 나타나서, 자, 우리 도시, 다시 살려보자, 이런 생각을 품었다 쳐요. 시장님 눈에는 재래시장도 들어오고, 고양이 언덕도 들어오고, 자전거 도로도 들어올 겁니다. 이 아름다운 소도시를 전반적으로 살리고, 평균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을 거예요.


조성익  네, 그런데, 매력도시 연구소가 오노미치에서 보고 온 것은 한 점에 집중하는 방법이었어요. 도시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해운 창고에 세계인의 감각에 맞는 호텔 복합시설을 짓자, 이런 결정을 한 거죠. 특이점을 만들기 위해서, 오노미치의 기존 컨텍스트 context가 없는 곳을 오히려 찾아갔다고 할까요.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야 세계인에게 보내는 신호의 강도가 더 강해 질 테니까요.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vol.02_오노미치

1편: 오노미치 U2_쇠락한 도시의 우아한 신호탄

2편: 오노미치 U2: 어서 오세요, 폴 스미스 경

3편: 고양이 언덕: 심심함이 도시의 매력

4편: 오노미치 상점가

5편: 오노미치 데님 숍: 청바지로 사람들을 잇다.

6편: 시마나미 카이도와 사이클 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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