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력도시 연구소 Jan 20. 2018

후라노의 눈 밭에서 달콤한 푸딩을: 아무푸린 제조소

매력도시 매거진 |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2)

눈보라 치는 날...

푸딩 오두막의 문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사슴: 여행자 입니다만,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여기에 불빛이 보이길래...

오두막 주인: 사슴 씨, 푸딩이라면 조금 드릴 수 있는데요.

사슴: (맛을 보고) 오이시이! 오이시이! 도대체 이게 뭐죠?

오두막 주인: 간식인데, 여기서 직접 만들고 있어요. 이봐요 이봐요 사슴 씨, 오늘은 하룻밤 묵고 가시죠?


http://amupurin.com/


<아무푸린 제조소 アムプリン製造所> 홈페이지에 있는 5단 만화의 내용입니다. 뭐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나 싶죠? 그런데 이런 동화 같은 일이 홋카이도 후라노의 눈밭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무푸린 제조소는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도로를 벗어나 밭 한가운데 난 비포장 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미터쯤 쌓인 눈이 길의 경계를 지워 버려서, 몇 번이나 여기가 맞는지 의심하며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멀리 눈밭에 홀로 서있는 작은 나무 간판이 나타났습니다. 옆에는 전나무 한 그루와 작은 너와집이 있었고요. 백지에 먹 몇 점을 찍어 그린 미니멀한 풍경화 같습니다. 간판도 없이 손 그림 하나만 달랑 붙어있는 입구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문을 똑똑똑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오두막의 주인이 문을 열고 등장.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주인입니다.



"지나가다가 잠시 들렸는데요, 여기가 아무푸린 제조소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우리는 푸딩을 판매하고 있어요."


잠시 구경하기를 청했더니 흔쾌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오두막에 들어서자마자 설탕을 졸이는 달콤하고 따뜻한 향기가 훅- 밀려와서 우리를 감쌉니다. 홋카이도의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행복한 스위츠의 세상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딱 여기까지. 한 평 남짓 오두막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두막 공간의 대부분은 푸딩을 만드는 도구와 화덕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방에 남자 주인이 앞치마를 단단히 두르고 재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이 카운터와 주방만 두고 이런 외딴곳에서 푸딩을 판매합니다.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푸딩을 사러 올까요? 



오두막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상대로 이 두 사람은 부부.  

도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남자와 음식점에서 일하던 여자는 결혼 후 봉고차로 푸딩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 파는 단순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말 그대로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동형 푸딩 가게는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손님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을 실천합니다. 홋카이도로 훌쩍 떠난 거죠. 


"도쿄에서 이곳으로 온 이유가 뭔가요?" 

"자연이요."


부인 카오리 씨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냐는 표정입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후라노 도심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평원. 대자연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버려진 축사의 폐자재를 모아 자신들의 힘으로 작은 너와집을 지었습니다. <아무푸린 제조소>라고 쓴 푯말을 평원에 세우자 이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푯말을 세우고 12년. 지금까지 부부는 이곳에서 푸딩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활 방식은 간단합니다. 하루 18개의 푸딩을 굽고 그것을 판매한 돈이 이들의 생활비입니다. 푸딩을 만드는 원칙도 간단. '100% 홋카이도, 100% 핸드메이드'가 모토입니다. 푸딩을 굽는 날은 아침 일찍 갓 짜낸 우유를 받으러 이웃 목장에 갑니다. 동네 밭에서 기른 사탕무에서 설탕을 얻어내고, 인근에서 길어온 샘물로 캐러멜 소스를 만듭니다. 

'동물도 자신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범위의 것을 먹고살지 않나요?' 아... 맞는 말씀.

100% 홋카이도의 재료들은 오븐으로 들어가서 2시간 동안 천천히 천천히 푸딩으로 변합니다.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푸딩의 개수는 6개. 이 작업이 하루에 3번 반복되고, 18개의 푸딩이 탄생합니다. 

푸딩을 구입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합니다. 6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있습니다. 이곳에 찾아온다 해도 가게에서 푸딩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오두막 밖으로 나와서 후라노의 벌판을 바라보며 먹어야 합니다. 


동물도 자신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범위의 것을 먹고살지 않나요?


자, 이쯤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푸딩의 맛이죠? 말씀드렸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습니다. 다만 가끔 운이 좋은 우연한 방문객에게 한두 개를 판매하고 있긴 합니다.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노끈으로 단단히 포장한 종이 박스를 벗기자, 지름이 한 뼘쯤 되는 동그란 거대 푸딩이 등장했습니다. 푸딩은 오렌지색 토기에 담겨있는데요, 푸딩을 다 먹고 여기에 밥을 지으면 밥 맛이 참 좋다는군요. 재활용 가능한 그릇입니다.

흙을 구워 만든 소박한 그릇에 담긴 캐러멜색 푸딩. 시골풍의 귀엽고 달콤한 물건입니다. 후라노의 눈밭에 숨겨진 작은 오두막에서 만든 이 귀여운 물건을,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우리는 배고픈 사슴이 되어 푸딩을 둘러싸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후라노는 구도심과 스키장 타운으로 이뤄진 도시입니다. 겨울이면 스키장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여름에는 라벤더 꽃밭을 보러 온 관광객으로 마을이 북적댑니다. 그리고 도심에서 한걸음 떨어진 조용한 평원에는 아무푸린 제조소 같은 매력적인 점들이 숨어 있습니다. '저 푸른 초원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자연을 즐기며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며 산다.' 이런 생각을 품고 매력 사람들이 만든 공간 말입니다. <후라노 버거 ふらのバーガ>는 자신들이 26년간 운영해 온 목장의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듭니다. 홋카이도 목장 직영 햄버거 가게인 셈입니다. <불랑제리 라피 ブーランジェリーラフィ>는 국도변 오두막 빵집입니다. 장작을 지핀 가마에서 오랫동안 발효시킨 빵을 굽습니다.

숨겨진 매력 사람들을 찾아 눈 덮인 평원을 달리는 행복감. 후라노는 매력도시였습니다.


 스키장을 둘러싼 다운타운과 
자연 속에 흩어진 점들로 이뤄진 매력도시


푸딩 18개를 다 구운 후, 아무푸린 제조소의 부부는 평원을 산책하고 눈썰매를 탑니다. 버섯을 채집하고 야생동물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험을 동화 같은 일기로 써서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우리가 시골 마을에서 기대하는 것이 후라노에 있습니다. 소박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일 말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http://www.amupurin.com



매거진의 이전글 [특집] 매력도시연구소, 홋카이도 리포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