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력도시 연구소 Mar 09. 2018

[매력대담] 평평세상파派들에게: 블루보틀의 도쿄 진출

매력대담: 조성익 x 이호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매력도시 매거진 편집장

이호       FIT Place 대표,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




호텔과 결합한 홋카이도의 카페, <모리히코>를 취재한 후 나눈 대담을 보내드립니다.

도시 인프라 infrastructure, 혹은 도시 기반 시설이라 함은 도로, 공원, 광장처럼 도시 기능이 잘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시설을 말합니다. 요즘의 카페는 사무실, 도서관, 광장이 담당하던 일들을 하고 있는 도시 인프라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모이고, 먹고, 생각하니까요.


조성익   매력도시 연구소가 카페를 주목하는 이유인데요. 상商공간 디자이너인 이호 대표 의견이 궁금합니다. 도시 생활에서 커피가 왜 이렇게 중요해졌나요? 매력도시의 관점에서 카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의견 부탁드립니다.


이호   의미 부여를 하기 전에, 카페 <블루보틀 Blue Bottle>을 조사했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블루보틀이 도쿄에 매장을 여는 단계별 과정을 보면 질문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조성익   자세한 이야기를...


이호   커피의 시작은 콩을 굽는 것이죠. 즉, 로스터리 시설이 필요해요. 블루보틀이 도쿄에 진출하면서 처음 만든 시설이 기요즈미에 있는 로스터리였어요. 기요즈미는 도쿄 외곽의 한적한 주택가인데요. 별로 뜨는 동네도 아닌데, 여기에 있는 목재상 창고 건물에 로스터리를 만든 거죠.

'도쿄에 매장을 여러 개 만들 계획인데, 첫 단계는 로스터리부터 짓자. 로스터리는 생산시설이니까, 조금 한적한 동네에 있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갓 구운 원두를 신선할 때 도심으로 배달해야 하니 이동 거리를 고려하자.' 커피의 속성에 근거한 매우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이에요.


블루보틀은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 시작된 로스터리 카페입니다. 나무에 열린 커피 열매가 한 컵의 커피가 되는 전 과정을 세밀하게 관리해서 최고의 한잔을 만든다. 이런 집요한 장인 정신을 블루보틀 커피의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순식간에 커피 업계의 신선한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블루보틀이 도쿄에 진출하면서, 먼저 변두리 동네에 로스터리를 세운 것은 이런 장인 정신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긴자 같은 핫플레이스에 근사한 카페를 만든 것이 아니고요.


조성익   커피의 시작점, 로스터리가 있어야지 다른 매장들도 일정한 품질의 원두를 공급을 받으니까, 라는 생각이네요.


이호   원래 기요즈미의 로스터리는 생산시설이에요. 손님들을 받는 카페라기보다는. 그래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좌석도 몇 개 없어요. 그런데 소문을 듣고 커피 팬들이 몰려오고, 허구한 날 로스터리 창고 앞에 줄을 섰죠.


조성익   블루보틀 하나 때문에 한적한 기요즈미에 사람들이 찾아온 거군요.



이호   그리고 블루보틀이 두 번째로 만든 것이 아오야마 매장이에요. 도쿄의 아오야마는 우리로 말하면 청담동인데, 도시에서 가장 소비 수준이 높은 동네에 핫 플레이스를 만든 거죠. 블루보틀이 고객을 받고 홍보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위치로 아오야마를 고른 거예요. 


조성익   한적한 동네 로스터리에서 생산하고, 핫플레이스에 플래그십 스토어 Flagship store를 만들어 자신들을 소개했군요.


이호   그다음 세 번째가 신주쿠 하고 롯폰기예요. 신주쿠는 강남역 같은 곳이니까 일반 대중들과 친밀하게 만나는 곳.  그러니 대형 매장이 되어야죠. 그리고 롯폰기는 광화문처럼 오피스 밀집 지역이니까 사무직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어요, 회사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해 놨죠. 심플한 공간에 마당도 있고. 대로변을 벗어나 조금 숨겨진 공간이라, 일하다가 몰래 빠져나와서 숨어있기 좋아요. (웃음)


조성익   생활 밀착형 매장을 낸 셈이네요.


이호   그렇죠. 그렇게 대중적인 카페 두 개를 만들고. 그다음에 한 것이 나카메구로에 바리스타 양성하는 아카데미. 이곳은 로스터리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에요. 앞으로 일본에 매장을 확대해야 하니까 바리스타를 교육하는 아카데미를 세운 거죠. 그래서 건물도 크지 않고. 

아카데미를 만들고 다음에 만든 것이 시나가와. 시나가와는 우리로 치면 KTX 용산역사 같은 곳인데 대규모 역세권 개발에 포함된 대형 상가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지방으로 사람들이 퍼져나가는 중심에 들어간 거예요. 지방 진출의 교두보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다시 블루보틀의 도쿄 진출 단계를 정리해보자면, 1) 생산시설, 2) 플래그십, 3) 생활 밀착형 매장, 4) 바리스타 아카데미, 5) 대규모 교통시설 순으로 확장해갔습니다. 불과 2~3년 만에 도쿄의 주요 지점에 각각 역할을 분담한 블루보틀의 네트워크가 생긴 것입니다. 짧은 기간을 고려해보면, 블루보틀은 미리 계획표를 잘 짜두고 단계별로 정확히 실천하는 느낌을 줍니다. 아래의 표를 보시죠.


자료제공: FOURBASIC


이호   블루보틀의 도쿄 진출 과정을 잘 짜인 비즈니스 전략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실은 이 과정이 카페가 나아가야 할 상식적인 매장 확장 계획이라는 점이죠. 로스터리 만들고, 접객 공간을 지역에 맞추어 정리하고, 접객을 담당할 바리스타들이 더 필요하니까 교육하고. 여기까지 도쿄에서는 임무 끝. 그다음은 지방으로 가는 전초 기지에다 매장 만들어서 도쿄와 지역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대단히 영리하지만 근본에 충실한 확장이라고 느꼈어요.


조성익   동일한 매장을 도시 곳곳에 복사해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커피의 속성에 맞게 단계별로 확장한다는 것이군요.


이호   그것이 입지 선정과  맞물려있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죠. 커피의 속성에 맞는 입지 선정. 기요즈미 같은 도시 외곽에서 로스터리를 만들고, 아오야마에서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심어 주고, 신주쿠의 대중들이랑 롯폰기의 화이트 컬러들과 접촉하고. 그리고 이제 매장들이 늘어났으니, 나카메구로 같은 조용한 동네로 다시 돌아가서 바리스타들을 차분히 교육하자. 그리고 지방으로 진출하자.



조성익   확장하는 순서랑, 동네의 특성에 맞추는 것. 제품 속성과 입지 선정이 연결되어 있네요.


이호   일반적인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세요. 매장 개수 몇백 개, 몇천 개, 이렇게 숫자를 늘리면서 확장하고, 역세권에서 몇 미터 이내에 가게가 있어야 된다는 공식으로 입지를 정하잖아요. 


"커피家 1위 전쟁, 매출왕 스타벅스 vs 매장왕 이디야" 최근 신문 기사 제목입니다. 이런 숫자에 근거한 확장 방식도 체인점 사업의 속성을 고려할 때 물론 중요합니다만, 같은 확장이라도 블루보틀의 전략은 조금 달라 보입니다. 확장을 하면서도 장인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제품의 속성에 근거한 확장. 원두가 한 컵이 되기까지 과정별로 매장에 역할을 부여하는 방법이 블루보틀의 도쿄 진출 전략으로 보입니다.


조성익   특정 역할을 가진 매장이 도시의 어느 곳에 어울리는지 도쿄의 지도를 펴놓고 전략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인데요. 매력도시연구소가 흥미를 가지게 되는 포인트네요. 하나의 브랜드가 도시의 여러 곳에 여러 개의 지점을 확장해야 되는데, 지역의 색깔을 읽고 개성 있게 들어간다는 것.

커피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쿄 곳곳에 있는 블루보틀만 찾아다니며 커피를 마실 이유가 생겼어요.      


자료제공: FOURBASIC


이호   그렇죠. 매장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니까. 뒷골목 작은 커피숍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대형 커피 브랜드에서 느낄 수 있게 된 거예요.


조성익   그리고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블루보틀을 더 좋아하게 될 테고요.


커피에는 보편적인 상품 소비와는 다른 독특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원두를 수입해서 쌓아두고, 콩을 볶아서 갈고, 뜨거운 물로 우려내는 과정. 커피가 컵에 담기기까지의 과정을 사람들은 바라보고 싶어 합니다. 커피 팬들은 원두 포대가 어지럽게 쌓여있는 창고 구석에서도 행복하게 커피를 마시고, 새까만 원두가 빙빙 돌아가는 뜨거운 기계 옆에 자리를 내줘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햄버거를 지글지글 굽는 철판 옆에 바짝 다가앉아 '아아... 쇠고기 굽는 향기'라며 빅맥을 기다리는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은색 티포트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종이 필터를 통과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 짓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커피 팬입니다.



커피의 속성이 이렇다 보니, 확장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커피의 과정을 분해해서 매장 하나하나마다 역할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홍대 앞에는 빵 굽는 맥도널드, 신촌에는 고기 반죽 맥도널드. 이건 난센스이지만, 성수동에는 로스터리, 청담에는 핸드드립, 망원동 뒷골목에는 아카데미형 매장. 이런 방식의 확장이 하나의 브랜드 아래 가능한 것이 커피입니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인프라가 된 카페가 지역의 역할을 읽고 상품의 속성에 맞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 매력도시 연구소가 커피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평평한 세계를 만드는 커피,
독특한 지역을 만드는 커피


스타벅스는 세상을 평평하게 만드는 사업입니다. 어느 도시에나 녹색 여인이 이리 오세요, 팔을 벌리고 있고, 그곳에 가면 일정한 품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노란 조명 밑에 진한 색깔 나무 테이블이 종로, 샹젤리제, 왕푸징 거리에 펼쳐집니다. 이들은 세계의 주요 도시 지도를 펴놓고 유동 인구를 파악하고 스타벅스 컵을 들고 걸어 다니기 좋아하는 고학력 인구 비율을 분석해서 매장의 개수를 늘려나갑니다.


평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들뿐 아닙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하철 출구를 나서면 노란색 m자를 붙인 햄버거 가게가 영업 중이고, 동네 상가에는 주사위 모양의 피자가 기다립니다. 지역을 막론한 퇴근길의 보편적 풍경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개성과 문화를 주장해봤자, 숫자로 분석해보면 세상사事는, 세상의 지역은 그리 다를 것 없는 몇 가지 룰로 정리되나 봅니다. 익숙한 룰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그리고 규모 확장을 통해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시대와 맞기 때문에, 평평한 세상파派들은 동어 반복을 통해 이윤을 늘려갑니다.



평평해야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지역과 동네가 뚜렷한 개성을 가져야 장사가 잘 되는 사업도 있습니다. 성수동의 창고 카페, 연남동의 반지하 카페는 평평한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성 깃든 커피 한 잔을 대접합니다. 힘들게 구한 온두라스 원두를 가게의 작은 화로에서 정성껏 굽고, 동네 이름을 애칭으로 붙인 개성 있는 커피를 말입니다. 그리고 블루보틀이 등장했습니다. 개성파라고 꼭 작게만 가야 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도 확장할 수 있어,라는 것을  블루보틀이 보여줬습니다.

다채로운 색깔의 동네와 소도시의 시대가 오길 기다리는 매력도시연구소 입장에서, 개성파 여러분, 평평파들이 장악한 세상에서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4편: 홋카이도에도 근사한 커피 로스터가 있다구요: 모리히코

5편: 최종병기 커피: 호텔 포트멈 스테이&커피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