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4)
여러분, 그거 아세요?
홋카이도에도 근사한 커피 로스터가 있다구요.
진심을 가득 담은 두꺼운 고딕체입니다. 입구에 이런 호기로운 선언을 써붙인 이곳은, 삿포로의 카페 <모리히코 森彦>입니다. '거, 도쿄의 블루보틀이나 푸글랜만 좋아들 하지 마시고...' 우리도 좀 쳐다봐달라,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가 봅니다. 홋카이도에 왔으니 홋카이도의 커피를 마셔봐야겠죠? 눈보라 치는 삿포로의 밤, 모리히코에 들어섰습니다.
겉에서 볼 때는 덩치만 커다랗고 밋밋한 창고 같았는데, 한 걸음 들어서니 분위기가 독특합니다. 천장이 높다란 공간에 커피콩을 담은 마대자루가 쌓여있고 오렌지색 시트로엥이 그 옆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 주차장에 커피 자루를 잔뜩 배달해두고 떠난 것 같은 풍경입니다.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커피콩을 볶는 향기와 장작불의 따뜻한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눈길에 고생들 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는 듯합니다.
삿포로 중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동네. 원래는 보일러 공장이었던 건물에서 모리히코 커피는 콩을 볶고, 커피를 내리고, 함께 먹을 과자를 굽습니다. 멋지게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와 로스팅 기계 앞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2층 테라스로 올라가면, 창고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다시 입구부터 화면을 되돌려보면, 커피 포대를 쌓아두고, 커피콩을 혼합해서 볶고,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걸어 들어오면서 하나하나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커피콩의 일생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라는 시나리오일까요.
모리히코 커피는 홋카이도에서 9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지역에서는 꽤 규모가 큰 회사입니다. 9개의 지점별로 각자 독특한 역할과 스토리가 있는데요. 우리가 와 있는 곳은 로스터리를 담당하는 <모리히코 플랜테이션 Plantation>입니다. 모리히코의 농장이라는 뜻입니다. 마대자루 속 커피콩이 로스팅되기를 기다리는 농장인 셈입니다.
모리히코는 '홋카이도의 근사한 커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커피콩이 액체로 변해 컵에 담기는 전 과정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지역 브랜드였습니다.
모든 것은 20년 전,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도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치카와 市川草介 씨, 당시 25세. 무언가를 찾아 눈 오는 홋카이도의 뒷골목을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계의 전설, 센리큐 千利休의 '초암 다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는 차를 매개로 사람들의 감정이 연결되는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다도茶道라 하면 어르신들의 느릿느릿한 의식儀式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차를 위한 모임과 공간의 등장이 당시에는 매우 전위적인 사건이었다는 것, 이것을 깨달은 이치카와는 뒷골목에 있는 작은 집 하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첫 커피숍을 꾸밉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찻집을 만들고 손님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 단순하고 전위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삿포로는 도로가 반듯반듯하게 계획된 도시입니다. 길 찾기도 편하고 자동차도 시원하게 직진하니 참 좋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도시구조가 잘 정돈된 까닭에 삿포로에는 꼬불꼬불한 뒷골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도시에서 이치카와 씨는 굳이 후미진 좁은 골목의 집을 자신의 커피숍으로 선택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지니는 미덕에, 손님은 애정을 보내는 곳. 메인 스트릿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가게와 손님의 친밀한 관계. 나는 이것을 '뒷골목의 진실함'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가 뒷골목을 찾아 헤맨 이유입니다. 그로부터 장장 3년에 걸쳐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개조하고, 드디어 모리히코 1호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1996년, 홋카이도입니다.
가로로 선을 하나 긋고 이름을 적어 넣기 시작하면, 오른쪽 끝에는 스타벅스가 있고 왼쪽 끝에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뒷골목 커피숍이 있는 것, 이것이 아마도 커피숍의 세상일 겁니다. 위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동일한 품질의 맛을 보장하는 스타벅스류의 커피숍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예상 가능'에서 오는 안심 말입니다. 반면, 감춰진 뒷골목의 어두침침한 아뜰리에 커피숍은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은밀하고 따뜻한 소속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글로벌 대 뒷골목, 제국 대 독립군. 이 양극단 사이에 놓인 다종 다양한 공간의 감정을 즐기러 우리는 카페로 찾아 들어갑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제국 중의 대제국, 스타벅스도 '우리는 시애틀에서 출발했어'라는 설명을 붙인다는 점입니다. 지역의 꼬리표를 달고 세계를 점령한다, 이런 얘기입니다.
커피는 독특하게도 브랜드에 지역의 이미지가 겹쳐진 사례가 많습니다. 소비자는 커피 브랜드와 지역을 연결해서 떠올리게 되고요. <블루보틀>에 들어서면 캘리포니아의 푸른 하늘이 생각나고, <인텔리젠시아>를 마시면 뼈속까지 추운 시카고의 겨울이 떠오릅니다. 우리도 하나 있습니다. <테라로사> 하면 강릉이죠.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며 샌 버나디노의 맛이구나,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커피는 그 지역, 그 도시와 연결된 한 잔이라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커피와 지역의 연결.
매력도시연구소가 커피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죠. '지역과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커피의 제조과정에 있습니다. 커피의 원료인 콩이 생산되는 지역은 커피가 액체로 소비되는 지역과 대부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 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이런 곳 말입니다. 기후와 노동력의 조건이 맞아야 생산이 가능한 농산물. 이것이 커피의 원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신비로운 원산지 지역색이 커피에 입혀집니다. 지도에서 찾아내기 조차 힘든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예멘이 상품명의 일부가 됩니다. 밥 위의 완두콩을 보며 '아아 오늘 완두콩은 중국 길림성 농장산. 고소함이 다르구먼' 이렇게 음미하지는 않지만, 커피콩만큼은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맛이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이런 분야가 바로 커피의 세계입니다.
신비로운 남쪽 나라의 언덕에서 생산된 커피콩은 비행기와 배에 실려 세계의 주요 도시로 운반됩니다. 포대자루 속 짙푸른 색 콩은 도시에 도착해서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갑니다. 굽기의 과정을 거쳐 진한 갈색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꼬리표가 추가됩니다. 굽는 자의 이름 말입니다.
콜럼비아의 커피를 홋카이도 모리히코에서 강하게 볶았어. 에티오피아의 커피를 강릉의 테라로사에서 새콤하게 볶았어. 이런 식으로 원산지와 가공자가 제품을 식별하는 키워드가 됩니다. 다른 것은 그런 게 없냐고요? 보르도 포도주는 동네 포도로 동네 사람들이 만듭니다. 포천 이동 막걸리를 만드는 쌀이 동네에서 재배된 것인지 이천에서 재배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여하튼, 특이하게도 커피는 원산지와 가공지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두 개의 장소가 브랜드의 일부로 강하게 인식되는 제품입니다.
도시의 이름을 건
로스터리 카페들이 생겨나는 이유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스타벅스에 맞서, 도시의 이름을 걸고 커피를 만드는 로스터리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차고 넘치는 게 커피숍이지만, 홋카이도에서는 홋카이도의 커피가, 제주도에는 제주도의 대표 커피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덕택에 커피 성지순례도 생겼습니다. <스텀프 타운>을 찾아 포틀랜드에 가고, <% 아라비카>에서 궁극의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교토의 골목을 헤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그 지역만의 커피'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은 매력 포인트를 찾고 싶은 소도시에게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겨울 날씨가 혹독해서 커피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소도시들, 주목해주세요. 커피는 지역 특산물이라는 개념을 좀 더 폭넓게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근사한 로스터리 하나로 지역의 특산물이, 개성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크래프트 비어, 위스키도 비슷한 경우긴 하지만, 특히 커피는 생산시설의 투자에 비해 지역의 색채가 쉽게 입혀지는 물건이 아닐까요. 이치카와 씨가 인터넷 매체 <cake.tokyo>와 인터뷰한 내용을 아래에 옮깁니다.
"풍토가 그대로 커피의 맛입니다. 커피콩은 남쪽 나라에서 구매한 것이니까 어디서 로스팅하여도 같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추어. 실은, 로스팅 위치에 따라 거기에서 밖에 만들 수 없는 커피가 됩니다. 그리고 나는, 홋카이도가 가장 맛있는 커피 로스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죠?
"홋카이도의 커피가 프렌치 로스트인 것은, 분명히 말하지만, 미소라멘을 낳은 땅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커피도 짙은 것을 좋아하거든요. (웃음)"
한 남자가 뒷골목에 시작한 카페는 이제 홋카이도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모리히코 플랜테이션에서는 주기적으로 장터가 열리는데, 한 번에 수천 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교류합니다.
모리히코는 전국구 커피로 성장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구워진 원두는 전국의 카페로 배달됩니다. 긴자의 우아한 카페에서 모리히코가 구운 콜롬비아 원두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열대의 태양이 기르고 홋카이도의 눈보라가 맛을 더한, 이 한잔을 말입니다.
25세의 이치카와는 자신의 제국을 세우기로 마음먹고, 아마도 도쿄와 홋카이도 사이에서 마음속 저울질을 했을지 모릅니다. 대도시냐, 변방이냐. 그의 발걸음은 열도의 북단으로 향했고 숨겨진 뒷골목에서 작은 불씨를 지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대표 선수가 되어, 일본 전역의 카페에서 홋카이도의 설원을 떠올리며 모리히코를 마시도록 만들었습니다.
네. 홋카이도에 좋은 커피 로스터가 있다는 것,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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