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Aug 06. 2021

대만 쟈오시의 타이완 마마(1)

6인용 여성 호스텔에서 만난 호의와 친절

  쟈오시는 온천으로 유명한 대만 이란의 한 소도시다. 이란부터 어디냐구요. 이란은 대만 동북부로 타이베이에서 화롄 사이에 있다. 이란 중 가장 번화한 뤄동으로 숙소를 잡지 않은 건 쟈오시의 상대적으로 싼 숙박비와 여기저기 산재한 온천들 때문이었다. 숙박 사이트와 구글 지도, 대만 여행 카페에서 몇 번 교차 검증한 '이스트 호스텔' 덕분도 있다. 숙소 안에 온천수가 나오는 탕이 있단다. 탕을 이용하려면 수영복을 꼭 지참해야 한다. 불행히도 쟈오시 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수영복 따윈 없다. 뜨끈한 물에 발목 수포들이 터지는 상상을 했고 없던 병균도 탕에 옮길 것 같아 온천수 입수는 취소했다. 



  샤오헤이원이란 모기보다 작은 벌레는 대만 환도 여행을 고꾸라뜨렸다. 여행 카페에 샤오헤이원 기피제를 넉넉히 바르란 경고들이 있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물리면 간지럽다 못해 아프고 운이 나쁘면 수포도 생긴다고 했다. 딱히 살성이 약한 타입은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타이동과 화롄을 지나 대만 북부에 도착했을 땐 발목과 손등에 보기 싫게 피어오른 수포들이 덤처럼 따라왔다. 수포 주위를 건드리면 아팠다. 그 자체보다 봉와직염 같은 다른 감염으로 전이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고작 벌레에 물린 건데 내 엄살이 아닐까? 이러지로 저러지도 못하고 호스텔 숙박일에 맞춰 지역을 이동하던 때였다. 


  

  쟈오시 역 앞에는 눈에 익은 프랜차이즈들이 보였다. 안심이 됐다. 부은 다리를 질질 끌거나 때때로 절뚝거리면서 숙소로 걸어갔다. 직전에 간 화롄 숙소가 최악이어서 깔끔하고 온화한 조명에 반절은 빈 8인실 여자 도미토리가 무척 맘에 들었다. 나는 짐 몇 개를 매트리스 위에 던져놓고 그대로 누워 울었다. 가족 단톡방에 아픈 것만 싹 빼고 오늘의 일정과 사진을 전송했다. 가족한테 어리광 부릴 성격도 못 되는데 혼자 괜찮다고 삼킬 성숙도 못 됐다. 팔자 좋게 한 달 여행이나 갔으면서 벌레에 물려 엉엉 아파하고 있는 꼴을, 들키고 싶지 않은데 또 아무도 모른다는 게 서럽다. 몇 달 동안 운 적이 없는데 지금은 툭치면 울 것 같은 날의 연속이다. 울다가 자세를 고쳐 옆으로 누우면 다시 다리가 찌르르 아팠다. 



  못 견디겠어서 호스텔 1층 스텝에게 내 상태에 대해 물었다. 병원에 가야 할까? 사실 내가 정말 원한 반응은 "세상에, 아팠겠구나, 너, 병원에, 가야, 돼."였을지도 모른다. 내 기대 그대로 그녀는 답했고 내게 바르는 약 같은 걸 주러 우리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이때 우리 방엔 나를 제외하고 3명의 사람이 있었다. 스텝들 대신 내 건조기 속 축축한 짐을 처리해주고 묵힌 짐의 양을 봐서 장기투숙객 같던 50대 여성, 영어와 중국어 둘 다 능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리가 돼줬던 20대 홍콩인 대학생, 그리고 말이 없던 60대 여성. 한 명은 후에 사기꾼으로 밝혀졌고 다른 한 명은 한국과 홍콩의 사회, 문화에 대해 밤새 신나게 대화를 나눈 친구. 마지막 이가 후술 할 타이완 마마다.


이스트 호스텔, 6인 도미토리

  스텝과 도미토리 룸메이트 앞에서 다시 발목을 내보이며 타이동, 샤오헤이원, 찡그림 세 마디로 내 상황을 전했다. 그들은 내 발목을 보고 경악하고 찌푸린 표정으로 '너 정말 걱정됨'을 돌려줬다. 모두가 나를 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떠드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어딘가 웃음이 나는 상황이고 이 복작복작함이 위안이 됐다. 걱정을 덜려고 열심히 바르고 있던 물파스를 꺼내 들며 그래도 괜찮단 메시지를 전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걸론 안 돼' 뉘앙스인 중국어가 다시 빠르게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에야 이게 가려움을 가라앉히는 '버물리'에 불과하단 걸 알았다.   


  몇 번을 세 룸메이트끼리 말이 오가다가 홍콩 대학생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이 타이완 레이디가, 너와 내일 병원에 갈 것이다. 그녀는 그걸 원한다. 타이완 레이디는 개중 제일 말이 없던 6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처럼 자동반사적으로 호의를 거절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나는 괜찮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내 영어가 홍콩인을 통해 중국어로 번역돼 타이완 레이디에게 가닿았다. 너 병원에 꼭 가란 말을 영어로 듣고 상황이 정리됐다. 응, 응. 한국에서 맘에도 없는 말로 상대방에게 안심시키려고 할 때처럼, 습관적인 응, 응. 난 괜찮아. 


  몇 시간 뒤에야 갑자기 홀로 현지 병원에 간다는 게 엄청 무서워졌다. 파파고와 구글 번역만으로 진료가 가능할까. 병원이 병원인걸 알아볼 한자실력도 없는데. 병원비는 얼마가 나올까. 걱정인간이 되살아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홍콩인을 붙잡고 한 번만 더 물어봐줄래? 그녀가 나랑 병원에 가는 게 정말정말 괜찮은지. 그녀가 그걸 개의치 않을지 말이야. 나를 두고 양옆의 룸메가 중국어로 빠르게 대화했고 '정말로 괜찮대. 내일 아침 9시에 출발하재'가 영어로 번역돼 내 매트리스로 날아들어왔다. 이번엔 홍콩 친구를 통하지 않고 타이완 레이디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씨에씨에. 씨에씨에. 다시 본 타이완 레이디의 얼굴은 인자함이 말할 수 없었다.



  맘이 풀어진 나는 룸메들에게 내 대만 여행도 더듬더듬 자랑했다. 환도, 가오슝과 타이동과 화롄. 여행 사진들. 나이가 비슷했던 홍콩인과는 방을 나와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다. 내 영어 실력이 만드는 답답함도 엇비슷한 동아시아 여성의 처지를 나눌 땐 큰 장벽이 되지 않았다. 그녀와 더 놀고 싶었지만 앉아만 있어도 다리가 찌르듯 아팠다. "미안해, 다리가, 아파. 쉬어야겠어." 선언을 하고 아쉬움을 갈무리해 잠이 드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정말로 내일 병원에 같이 가는 게 맞나? 선물 같은 호의에 얼떨떨했다. 



  겨우 일어나니 내 옆에 타이완 레이디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니 이미 그녀는 2시간 전에 일어나 날 기다리고 있댄다. 세상에나. 얼른 간단히 씻고 로비에 가니 이미 채비를 다 마친 그녀가 있었다. 손에는 병원의 이름과 약도가 적힌 쪽지를 쥐고 있었다. 그렇지, 그녀도 나와 같은 여행객이지. 쟈오시 관광지는 알아도 병원은 모를 것이다. 타이완 레이디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인을 위해 시간을 쪼개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하고 스텝들에게 인근 병원 약도를 받고 아침부터 나를 기다렸다. 우산을 펴 드는 그녀 옆에서 나는 조용히 팔짱을 꼈다. 누군가의 팔짱을 낀 건 아주 오랜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