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시간의 인용'

by 아무개



걸음을 멈추는 순간. 차 오르는 것이 있다.


나는 이 글을 마치기에 앞서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위대한 작가의 호칭을 노벨의 메달에 새겨 넣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라 생각해 나는 모든 작위와 권위와 호칭을 사양한다. 아니 잠시 뒤로 미루고자 한다. (결코 사양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여러 분들에게 최고로 유익하다는 것을 나는 넘치는 지혜와 현명함으로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잊을 수 없으며, 잊어서도 안되며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하는 분들을 여기서 일일이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것이 지금 해야 할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날. 오래된 미소로 이른 아침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목촌 돼지국밥집 그녀. 구봉산 산길에서 흙의 속 살로 약도를 그려주신 어른. 산책과 휴식의 평화를 다툼과 분쟁으로 몰고 가면서까지 올바른 길을 안내하던 두 노인. 한반도 지도를 펼치며 나의 종단 작전을 계획하다 급하게 퇴임한 삼분천하의 주인공 구포역 밀면집 사장님. 비닐팩에 얼음을 담아 준 햄버거집 숙녀. 내게 목청 높여 말할 기회를 주신 김해 한림면 신천리의 할아버지.


두 번째 날. 봉하의 국밥집 주방 아주머니. 고마움에서 피로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신 구석구석을 다 아시는 토박이 딸꾹씨. 딸기우유를 내게 주신 주남저수지의 강태공.


세 번째 날. 자연에게 치유의 손길을 맡기셨던 어르신. 걱정과 염려를 호된 꾸지람으로 승화시킨 아주머니. 수줍지만 관심을 보이며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부곡온천 사우나 매표소의 남자. 지저분한 내게 반해 제육볶음으로 내 마음을 구매하려 했던 식당 주인.


네 번째 날. 김치찌개와 두루치기가 어떻게 발음이 유사한지 풀리지 않을 문제를 제기하고 차비까지 쥐어주려던 급진파 서울식당 아지매.


다섯 번째 날. 내게 전문가 수준의 마사지 강의를 듣고 순수한 시간을 수강료로 지불한 천양과 최 군.


여섯 번째 날. 자랑과 걱정을 푸념 안에 버물여 독특한 레시피로 대화의 맛을 살려내고 밑반찬으로 내 배낭의 무게를 늘려주신 주유소 아주머니. 막걸리 두 병에 내게 양반의 작위를 내려주신 마리면의 세 노인. 제국주의를 몰아내듯 텐트를 해체시킨 뒤 내게 기적의 역사를 체험시킨 의병장의 후예. 젊음의 열정을 뽀사버리고 멋진 건물을 짓는 동갑내기 목수. 그 목수와 한 판 겨룬 스포츠머리. 그리고 그 옆의 한 남자.


일곱 번째 날. 빗속에서 차를 세우며 탑승을 권했던 운전자. 구천동 버스 정류장에서 비옷을 덮어준 아주머니.


여덟 번째 날. '공부 많이 하세요' 하며 시간마저 경의를 표하게 만든 백 선생님. 옥수수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대동여지도보다 값진 지도를 그려 주신 아스팔트 노점의 아주머니. 노벨문학상 후보의 책의 저자이자 탁월한 방문판매 재능의 소유자이신 충청도 작가님. 국수 한 그릇 팔고 무한리필에 파전도 공짜로 주는 자계리 부녀회. 낯선 내게 맥주캔을 건네 준 남자. 자동차 불빛으로 길을 밝히며 속도를 맞춰주신 사장님.


아홉 번째 날. 내게 관찰의 기쁨을 준 쌈밥집 사장님. 남은 것은 부질없다는 듯 나들이 음식 모두를 남겨 주고 간 두 여자.


열 번째 날. 얼린 물병 하나로 새로운 차원의 정신 분열과 각성을 경험하게 한 철물점 여주인. 생각을 떠올리면 언제나 눈을 감고 몸을 뒤로 젖히며 깊은숨을 쉬게 하는 어머니와 아들.


열한 번째 날. 동안(童顔)의 기쁨을 알려준 남편에게로 가던 여자. 말은 섞지 않았지만 곱빼기 제곱으로 먹방의 가능성을 열게 한 손짜장면집 사장님. 결정의 번복으로 감동의 나날들에 원망과 낙담으로 여행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준 문의면의 주민.


열두 번째 날. 태풍 걱정에 전화를 하신 대청호 어머니. 내게 온전한 하루의 휴식을 허락한 나. 그 원인이 되어준 태풍.


열세 번째 날. 어떤 간절함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상에게는 거리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주유소의 여자.


열네 번째 날. 엄마네 식당의 엄마.


열다섯 번째 날. 샴페인 대신 오줌으로 마지막 밤을 축하해 준 어떤 놈.


열여섯 번째 날.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던 집.







나의 작은 내적 변화가 나를 이끌고 나아가게 한 이후. 짧지만 길게 늘어난 고무줄 같은 태양과 바람의 나날들을 모두 지나왔다. 열여섯 번의 지구 자전 횟수에 비하면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시간이 많아 분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분량이 시간을 늘려버리고 말았다.


지루하지만 흡족한 내 이야기는 많은 사람과 많은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드물어진 만남이 이야기를 번식하게 했다. 사람이 그립고 그들에게 나를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일상을 바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바라 본 나 자신은 위대하고, 비루하고, 연약하고, 비범하고, 고상하고, 천박한 잡식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신비한 나를 탐험하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려야 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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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지나가는 모든 발걸음에 본질적인 의미를 상기시키고, 드러난 의미들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한다.


.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을 것이다.


. 출처 없는 수많은 시간의 인용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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