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시작일 줄은 몰랐다.
또 하루를 걸었고 걸으며 먹었고 먹으며 쉬었고 쉬면서 싸고 싸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걸었다.
어디인지 모를 곳에 도착했다. 성남이었던가. 넓은 도로와 자동차와 빌딩과 사람들. 강이 흐른다. 강인지는 몰라도 그만한 폭을 물들이 흐른다. 그렇다면 강이지.
도시의 중심부로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건물과 불빛이 물결 위에서 춤을 춘다. 물결과 함께 그 속에서 흔들리는 형광 불빛들이 목젖 위로 올라오며 머리끝에서 굵게 쭈뼛거린다. 이 흥분은 무엇인가. 중독자에게 필요한 약물이 눈앞에서 출렁인다. 도시의 욕망.
물가에는 산책로와 잔디밭과 작은 모래 밭도 있다. 장소를 결정하고 몸을 씻기 위해 사우나를 찾았다. 얼마를 돌아다닌 끝에 몸을 씻고 맥주캔의 온도가 높아질까 마음 쓰며 잰걸음으로 작은 모래밭으로 돌아왔다. 거품으로 목을 축이고 빠른 흡수를 통한 알코올의 혈중농도를 처지는 눈꺼풀로 확인하고 텐트를 설치했다.
내일이면 서울. 아니, 집으로 돌아간다. 아니, 집에 도착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꿈결에 비가 오는 소리를 듣는가 싶었는데 빗소리와는 유사하지만 마음을 가라 앉히거나 감상에 젖게 하는 유익한 소리가 아닌 불편하고 심하게는 불쾌함마저 느끼게 하는 소리가 나를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빗소리는 태생이 서라운드다. 하지만 그 소리는 서라운드가 아니라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질 낮은 음색으로 내 귀의 가까운 곳에서 불편함을 만든다.
아... 어떤 유인원이 콩팥에서 걸러낸 찌꺼기를 번식을 위해 이용하기도 하는, 개체마다 다양한 크기로 돌출된, 예민한 신경세포가 넘쳐나는, 길쭉한 신체 말단의 혈관 덩어리의, 중앙을 통과하는 튜브를 통해 쏟아내고 있었다. 소리는 잠깐 끊기기를 몇 차례. 마지막으로 항문을 조이는 애처로운 힘의 크기를 가늠케 하는 몇 방울의 소리를 끝으로 어석이며 모래를 짓누르는 발길이 멀어진다,
아..씨...이..ㅂ.ㅏㄹ... 설마 텐트에 직접 엎지르지는 않았겠지. 나가서 확인을 해?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귀찮았다. 그냥 그 유인원을 저주하며 잠을 자는 편이 이롭다. 아침에 확인을 해보니 텐트 바로 옆에 장마철 처마 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패임 자국이 있다. 액체가 쏟아지며 갖고 있던 가속의 힘을 모래들은 제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 충격을 분산시키려 튕겨 오른 모래들이 텐트에 덕지하게 붙어있다. 유체 가속의 에너지는 그렇게 텐트 외벽에 기하학적 패턴의 물리적 결과를 남기며 새로운 수학적 증명의 숙제를 내고 말았다. 이런 고양이 새..애..ㄲ-ㅣ... 개보다는 욕의 강도가 조금은 약화될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해 본다. 고양이를 혐오하는 것 절대 아니다. -현재 나는 제주도에서 만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열여섯 차례의 낮과 밤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향해 걸었다. 분당선 지하철역을 지나쳤다. 알 수 없는 흥분이 내게서 감돌았다. 올림픽 대교를 지나며 맞는 바람에 모든 갈채와 박수가 함께 피부를 뚫고 몸안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착각과 환상은 개인의 의식 안에 깊게 남아있다. 그것은 자만을 부추기지만 경쟁력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바람을 들이마시면 한껏 부풀린 폐를 통해 정신적 쾌락을 증진시키는 분비물들이 몸 안에서 펑펑 쏟아져 나온다.
대문 앞에 섰다. 누구나 바라는 만남의 장면이 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 동안 체중의 일부였던 30킬로의 배낭이 내 등에서 떼어진 뒤로 내 몸은 어미와 분리된 아이처럼 불안했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 마다 몸이 떠올랐고 기우뚱 거렸다. 중력을 상실한 몸의 균형을 잡으려 허우적 모습이 드러 날 까봐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걸음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을 때는 한 달 이상이 지나고 나서였다.
만남.
나는 홀로 걸었던... 하지만 사람을 만났던, 그 하루하루의 길 위에 떨어진 시간의 초침들이 날이 지날수록 선명 해진다. 사람은 만났을 때 사람에 대한 의미가 있다. 만남은 지나친거나 바라 보기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상의 시간 안에서 밀려들고 나가기를 반복 하지만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은 선물과 같다. 자신의 시간이 상대에게 선물이 되고, 더불어 오래 간직 되기는 쉽지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어떤 사람은 어떤 이 에게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불쑥 손을 펼쳐 내어 놓는다. 나는 매일 그 손을 잡았었다.
나는 이 길 위에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아니 어쩌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내가 뒤돌아 서서 그 길을 바라볼 때까지만 허용이 되는, 기억에 의존한 무의미함 보다는 실제적 행위의 연장에서, 즉 그 걸음 안에서, 잠시 멈춘 그 돌아봄 안에서만 길을 걸었고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멈춤과 돌아봄은 지나감을 염려해서이거나 아니면 아쉬움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 길에서 작용한 나와, 내가 작용한 그 길 전체의 인상을 기억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 길을 떠나보낸 뒤에는 -나를 떠나보낸 것은 길이지만-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기억뿐이었다.
나를 멈추게 하고 사로잡는 시간들, 그 길 위의 시간들에서는 내가 앞서거나, 나를 앞지르거나, 마주쳐 지나가는 것들은 없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나는 시간의 길을 지나갈 뿐이었다. 모든 것은 머물러 있다. 단지, 그 기억의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