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간다. 오르는 것이 지겹고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다 싶을 때 어김없이 내리막이 시작된다. 끝없이 내리막이 계속된다 싶고 차라리 오르는 게 좋다고 생각할 때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4명을 만났다. 어울림이 관심을 보인다. 촘롱을 지나 시누아에 도착했다. 어울림의 바지를 두고 왔다. 잠시 쉬며 말리기 위해 꺼내 놓았었다. 돌아갈 때 찾게 된다면 이야기 하나가 추가될 것이다.
아침은 평화롭게 그리고 차분하게 시작되었다. 비는 멈추었지만 하늘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계곡의 물들을 기쁨과 아우성의 소리로 음량을 높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어떤 시간이라도 특별하겠지만 아침이라고 말하는 시간은 사람의 잠을 깨우기 시작하는 공기의 흐름과 누군가의 늙은 기침 소리와 숲의 정적, 무엇보다 예민한 작은 새들의 조급하고 안달 난 지저귐, 풀잎을 깨우는 대지의 바람, 밤새워 모래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잠을 달래던 파도와, 푸른 침묵을 선사하던 달빛이 오후를 향해 서둘러 떠난 뒤에 남긴 자취와 흔적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아침은 그것들의 뒤를 따라 오후를 향해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다.
오후는 교만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인간은 깊은 협곡의 계단을 오르고 시간은 오후의 가장 높은 언덕에서 장난스럽게 꿈틀거린다. 햇빛은 앞세워 놓은 구름 사이로 비치며 마르지 않은 땅을 빛나게 한다. 덥고 마르지 않은 바람과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의 연속은 평소에 발견할 수 없었던 생각의 영역에 다다르게 한다.
계단은 인간의 신체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두발로 서서 오르고 내려갈 때 반복되는 관절의 운동을 고려한 작품이다. 힘줄과 근육은 단절된 관절의 마디를 이어주고 움직임을 연결한다. 단절된 마디의 움직임이 없으면 역시 단절된 계단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계단은 단절을 통한 도약의 꿈을 이루려는 직립의 산물인 것이다. 계단은 애초에 오르려는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오르고 계속 오른다.
저녁은 누군가의 온정이 준비되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낮아지는 시간이다. 모두가 돌아가는 시간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자는 나무 둥치 대신 낡은 의자에 등을 부리고 앉는다. 숨구멍을 좁힌 나뭇잎을 더딘 바람이 흔들고, 들뜨지 않은 느린 소리는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와 아침까지 머무를 준비를 한다. 구름은 협곡의 이불이 된다. 서로의 얼굴에 윤곽과 그림자가 없어지고 평등해지는 시간. 밤의 기온보다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덜 부드러운, 그래서 더 큰 기대를 품기보다는 주춤거리며 떠나는 하루를 배웅할 여유를 담아 주는 시간. 딱딱한 손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우유차 한잔이 바로 그렇다.
구름에 가려진 산을 두고 어울림과 유(有) 무(無)를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인식론과는 무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보는 자신을 의심하기 위한 시간이 되었기를. 고쿨이 숙소 주인에게 말 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고마움 속에서 샤워를 했다. 이 후에도 물통에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채워 주는 코쿨은 하루 만에 고용된 포터에서 보호자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