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괜찮아?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의 응원과 공감의 단어.

by 아무개



아침. 고쿨이 문을 두드렸다. 몸 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의무감이 나를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어울림은 깊이 잠이 들어있다. 몇 분 동안 말을 걸고 흔들어 가며 깨웠다. 잠에서 풀려난 어울림이 춥다며 몸을 움추린다.




아침은 '구릉 브레드'와 꿀, 삶은 계란을 먹었다. 구릉 브레드는 네팔의 산악지역에 사는 구릉족이 먹는 빵을 일컫는 것이라 짐작하며 그 생각도 함께 천천히 곱씹어 먹었다. 히말라야에서, 여름에, 그것도 아침에 맞는 햇빛은 누구의 정수리나 콧등을 스친 적이 없는 순수 혈통이다. 가끔은 어느 오후에 덧없는 인간의 영혼과 마주치는 독수리의 깃털에 튕겨 나오거나, 상승하는 구름에 여과되는 것 말고는 가장 먼저 이곳에 내린다. 깨끗하고 순수한 빛이다. 높을수록 척박해지는 지상에서의 삶을 충분히 보상하고 남을 만큼의 정결한 빛이다.


멀리서 마차푸차레도 밝게 빛난다. 마차푸차레가 스스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틀은 더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지만 그 보다 훨씬 가까워 보인다. 사람들은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목표가 가까워 보일수록 열정과 희망이 더욱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서 누구나 강한 믿음을 갖고 힘겨운 걸음을 디디며 간다. 마차푸차레는 그런 면에서 우리를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보여주고 있었다.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을 향해 가는 우리는 길을 잃을 일도 없다. 마차푸차레는 밤바다의 북극성처럼 히말라야의 길을 안내하는 한낮의 별이다.






11시가 조금 넘자 허기와 함께 지친 기색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어울림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과도한 준비성이 칭찬을 받을 순간이다. 고쿨은 가스버너와 라면을 챙겨 온 나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뭘, 이 정도 가지고' 번거로운 만큼 우리에게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삼양라면을 끓여서 코펠 뚜껑에 담아 어울림에게 주고 나와 고쿨은 비빔면을 먹었다. 이것이 라면을 사랑한 족속이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평범하고도 양보할 수 없는 일상이다. 자존심을 지키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점심을 지나자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안개가 점점 사라질수록 빗방울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떨어진다. 비옷을 꺼내 입고 카메라가 젖지 않도록 배낭에 넣었다. 기온은 차가움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어울림이 지팡이를 쥔 오른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비에 젖은 손을 만져 보니 얼음같이 차갑고 손가락 마디가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지팡이를 왼손으로 바꾸어 잡도록 했다.



앞에서 가던 내가 뒤에서 걷기로 하고 자리를 바꾸었다. 내가 균형을 잡지 못해 스스로 체력을 낭비했기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두 사람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고쿨과 어울림 그리고 내가 그 뒤를 따른다. 어울림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에게 알맞은 속도와 보폭으로 걷는다. 고쿨은 어울림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박자를 맞추어 움직인다. 그리고 어울림의 뒤를 따르는 나도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앞장서는 사람은 경험이 있어야 좋다. 경험이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빠 괜찮아?" 어울림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어... 괜찮아"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사실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 앞의 작고, 제법 가느다란 아이에게만은 괜찮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어울림의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지쳐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눈두덩이에 보톡스 대신 피곤함을 여러 대 맞은 것 같은, 그 심란한 낯빛을 본 아침부터, 어울림은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고 있었는도 모른다. 차라리 '힘들지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라고 말할 걸.



어울림이 다시 한번 뒤돌아 보고 묻는다. "아빠 괜찮아?" 숨 한 번 들이키고 내가 말했다. "응. 조심해..."

어울림이 말 한 "괜찮아?"는 내게 '힘 내'라는 응원의 박수와 '나도 힘들어' 하는 공감과 '같이 가자'하는 연대의 약속이 담겨있는 선물 바구니 같았다. 내 가슴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어울림이 지팡이를 쿡쿡 짚을 때마다 계속해서 '아빠 괜찮아?' 하는 말소리가 바닥에서 튀어 오른다. 그 목소리는 익지 않아 신맛이 강한 사과처럼 들떠 있고, 산속의 얕은 개울 물이 작은 바위돌을 부딪치며 돌아 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팽팽하게 풀을 먹인 화선지를 바람이 빠르게 치고 달아날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얇고 초록한 목소리였다. 나는 흔들리는 작은 등짝을 보며 계속 걸었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 뒤에서.













그리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모든 것이 눅눅했다. 먼저 카메라를 꺼내 김이 서린 렌즈를 분리하고 습기를 증발시켰다. 소지품 중에 화폐 단위가 가장 높은 공산품이니까. 뜨거운 짜이 한잔과 비스켓도 함께 먹었다.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어울림은 너무 심심하고 집이 그립고 또 놀러도 가고 싶다 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반쯤은 놀러 왔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해 보니 놀러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즐거움이 솟아나는 시간인 것이다. 심심하면 놀이가 아니다. 힘들어도 놀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힘든 여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으로 가자.









더불어...

구름, 고쿨과 더불어








고양이와 더불어.









'아빠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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