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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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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30. 2021

나비를 만나려면.

결심은 필요치 않아. 그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야.


9장.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작은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떠나던 날 아침, 어린왕자는 별의 청소를 마쳤다.'

떠나던 날 아침, 어린왕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을 거야. 잠을 못 이루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해가 지는 모습을 마흔네 번이나 보며 아침을 맞이 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매일 하던 별의 청소를 될 수 있으면 아주 천천히 하려고 했겠지. 두 개의 활화산은 물론 불이 꺼진 휴화산도 청소를 했어.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 마지막 바오밥나무 싹을 뽑을 땐 기분이 울적해졌어. 떠나기 전에 별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 담아 두려고 마음을 썼을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늘 해오던 그 모든 아침 일들이 유난히도 정겹게 느껴졌다.'


마지막인 것은 모두가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야. 매일 보던 낡고 오래된 골목길이나 이끼가 낀 붉은 벽돌 담장도 달라 보여. 녹슨 대문의 페인트가 벗겨져서 돌돌 말려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고. 그래서 문득 걸음을 멈추게 돼. 꾹꾹 눌러 담지 않아 헐렁한 종량제 봉투는... 꼼꼼하지 못했어. 그걸 보고 알뜰하지 않다고 타박하던 누군가도 따뜻한 기쁨으로 되살아 나지.


사랑하는 사람! 그의 작은 것들이 유난히 크게 보여. 귀밑의 흰 머리카락과 아래로 처진 입꼬리는 가슴 깊이 덜컥 뛰어들어와. 그건 잊지 못할 깃발 하나를 가슴에 꽂는 것과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습관은 자꾸만 따라 하게 돼. 그런 모습에서 오는 정겨움에 기쁨을 느끼지.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될 때쯤 아마 눈물이 날지도 몰라. 마지막이라서 알게 되는 기쁨이니까. 결국 마지막이니까. 그래서 슬픈 거야.


어린왕자도 마지막으로 장미에게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주려다 왈칵 눈물이 터뜨릴 뻔했잖아.





"나비를 만나려면 애벌레 몇 마리쯤은 견뎌야겠지."

나는 책을 가슴에 덮어 놓고 그대로 눈을 감았어. 눈물이 고였어.


장미에게 애벌레는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던 거야. 장미는 자신의 존재 과정 안에 나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 애벌레는 당연한 거야. 그러니 견뎌야 하는 거고. 자연스러운 거야.


나비는 자신의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미 예견된 대상이지. 장미가 말했잖아. 애벌레 몇 마리는 견뎌야 되는 거라고. 나비는 희생을 조건으로 하는 보상이 될 수 없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비는 장미의 존재 범위 안에 본래부터 있었던 거야.






자신의 삶 안에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쟁취하려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야. 희생과 대가를 치렀다고 하면서. 그래야 불가능한 것을 성취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 가봐. 당연한 것을 그렇지 않게 생각해.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데도 늘 자신을 격려하고 긍정하려 하는 거야. 긍정하려면 부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걸 알잖아. 그래서 많은 것들이 힘든 거야. 애쓰지 않은 것도 훌륭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런데 당연하다는 이유로 트로피의 받침대로 사용하려 해. 그렇게 낮추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희생과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성취하려 할 때뿐이야. 혹시 지금 이겨 내야 하거나 견뎌야 할 일들로 고통받고 있는 거야?  그건 스스로 자신의 범위 밖으로 벗어났기 때문 일지도 몰라. 생각해 봐. 자기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은 거부할 수 없는 거야. 거부할 수 있다는 듯이 생각하지 마. 거부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여서 견디는 것처럼. 그런 생각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야.





어린왕자!


나는 왜...

언제나 굳은 결심을 필요로 했을까.

왜.

모든걸 이겨 내려고만 했을까.

.

.

.

'꿀은 벌집에 있잖아. 벌을 잡는 게 무슨 소용이야?'




'너는 어디에...'


나의 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 자기 별을 벗어난 것 같았다.'



나는 어린왕자가 별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떠나던 날 아침 별을 청소하기 시작할 때 내 안에서 불안한 설렘과 흥분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내 열여섯 시절. 우울과 슬픔을 떠안고 그동안 머무르던 별을 떠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불안한 하늘을 향해 서 있었던가. 마지막 아침을 위한 연습은 왜 그렇게 설렘 속에 울적했는지. 만약 반항이라는 철새의 퍼덕임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별을 떠나지 못했으리라. 오랜 여행의 날들이 지난 지금, 나는 또 한 번 철새들의 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별을 떠나서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기 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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