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린왕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개 Dec 07. 2020

말(言).

그때는 몰랐어요. 말에 신경 쓰지 말아야 했었다는 것을.



8장.


'그 꽃은 아름다운 빛이 가득해졌을 때 비로소 나타나기를 원했다.'





사실,  꽃뿐 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엇도 서투르게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자기의 빛을 가득 품고 가장 완벽한 채로 나타났던 것이다. 다만 내가 서투르게 나타난 것을 보았을 때는 나 자신이 모든 것에 서툴렀을 때였다. 

지금도 자주 그렇지만.






꽃은 아름다운 빛이 가득했을 때 나타났고 어린 왕자는 그 꽃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군요!'






꽃은 까다로웠다. 

겸손할 줄 모르는 꽃의 허영심은 어린왕자를 괴롭게 했다. 호랑이는 무섭지 않다면서 바람은 싫어했다. 신선한 물과 바람막이와 추위를 막아 줄 덮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꽃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향기로웠다. 아침마다 소행성 B612에는 꽃향기가 가득했다. 


꽃은 연약했다.

꽃은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꽃은 곤란하거나 창피할 때면  기침을 하곤 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부주의가 꽃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마음을 쓰며 한 편으로는 꽃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꽃은 기침을 더욱 심하게 해댔고 어린왕자는 죄책감을 느꼈다. 꽃의 하찮은 말 한마디도 신경을 쓰게 된 나머지 어린 왕자는 점점 불행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난 그 꽃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했어요.'

 


꽃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꽃의 말 뒤에 숨겨진 상냥함을 알았어야 했다. 꽃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별을 가득 채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즐길 줄 몰랐다. 






어린왕자는 꽃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했는데 말이에요...'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말 뿐인 것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늘 말을 붙들고, 붙잡힌다.-

말 뿐인 것들은 귀 기울여 듣지 말아야 한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꽃의 서툰 거짓말은 연약한 것이 존재하는 방식이 까다롭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서였다. 왜냐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사랑하는 존재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더욱 싫은 법이니까. 꽃은 단지 관심과 보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도 꽃과 같다. 까다롭고 연약하다.

나는 이것이 내게 가장 큰 약점이며 언제든 그 약점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 없는 강한 말 뒤에 숨는다. 하지만 정작 까다롭고 연약한 내 존재 방식을 부정하려는 말이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그 말이 내게 유일한 약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말 뒤에 숨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나를 오해 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연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게 바로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호소라는 것을 꽃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래도 꽃에게 바람을 좋아해 보라거나 신선하지 않은 물도 괜찮다거나 추위를 견뎌 보라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또 겸손해 지라거나 연약하지 않은 척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도 안된다. 꽃은 그래선 안된다.






왜냐면,

꽃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미의 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