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재회와 다음의 기약 / 체왕 돌마(Tsewang Dolm)에게.
01:30분 미니 버스가 도착했다. 예약 차량이 맞는지 명단을 확인했다. 운전수에게 바르푸르와 사추에서 정차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를 모른다고 했다. 차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시 말했다. "헤이, 유 노 바르푸르? 아이 원트 스탑 바르푸르 앤드 사추" 그는"노프러블럼"이라고 말했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끝없이 친숙하고 아름다운 '노프러블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배신과 실망을 주는 것도 바로 노프러블럼 이다. 남자는 운전수에게 내 말을 전해주었다.
버스가 잠시 정차한 곳은 뉴마날리의 어느 곳. 건장한 인도 중년 남자가 좌석을 확인한다. 그리고 내 옆의 한국인 남자에게 자리를 잘 못 앉았으니 뒷자리로 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승차권을 확인했다. 하나의 자리가 두 사람에게 팔렸다. 서로가 승차권을 보이며 자신들의 자리가 맞다고 주장했다. 인도 남자는 차주에게 항의를 했다. 차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얼굴이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입은 반쯤 벌리고 있었다. 접신에 실패한 무당 같았다. 자신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에게 해결책은커녕 핑계나 변명도 하지 못했다. 따져 묻는 상대에 따라 모두 맞다고 했다. 인도판 황희 정승이었다. '네 말도 옳다.' 회사가 좌석 배정을 실수로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양쪽 모두의 말이 맞는 것이다. 계속된 항의에 한국인 남자는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표정을 읽었다. "그냥 있어요." 나는 쿡 찌르듯 낮게 말했다. 인도 남자의 거센 항의가 여행자들의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것이 싫었다. 투덜거리던 그는 결국 뒷자리에 앉았다.
로탕 패스를 오르는 길은 축축한 어둠과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진동으로 안정감을 잃고 있었다. 날이 밝아지기 시작할 때 다르차에 도착했다. 운전수의 이름은 '노루부'라고 했다. 그가 정차를 하지 않고 지나갈까 봐 잠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바라본 길들은 과거를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지스파'를 지날 때는 한 야영장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던 '오닐'이 생각났다. 그는 지금도 이효리의 '텐미닛'을 들으며 몸을 들썩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야영장은 텅 비어있었다. 주변에는 다른 텐트와 방갈로가 세워져 있었다.
반가운 것에 대한 낯섦이 찾아들었다. 변화라고 말할 것도 없는 작은 것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친구와의 만남처럼, 반가운 길 위에서 긴장이 피어났다. 이런 낯섦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의 작은 방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방 안에 들어섰을 때 찾아든 시간의 변화는 달라진 책상의 위치나 담배연기에 찌든 벽지의 쿱쿱한 냄새처럼, 아주 작고 선명한 감각들에 의해서 새롭지 않은 낯섦이 다가오는 것이다.
'파시오'를 지나간다. 내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곳...
회상이 주는 평화로움 안에서 각별했던 길 위를 바퀴는 굴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흩어지고 있는 길 위의 모든 것을 쓸어 담아 갈 작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길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방해를 받은 연인의 키스처럼 빠르게 멀어져 갔다.
징징바르에서 앞서던 버스가 정차하려는 듯 속도를 늦추었다. 징징바르는 바라라차를 넘기 전 쉬어가는 곳이다. 나는 몇 년 전 이곳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었고 '비쉬누'와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다바(dhaba)에서 며칠 동안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몸을 회복했었다. 보통 이곳의 다바는 대부분 천막으로 만들었으며 휴게소의 역할을 하는데 숙박도 할 수 있다. 잠시 정차를 하게 되면 비쉬누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운전수 노루부는 부릉거리며 가속 페달을 밟아 앞서 가는 차량을 재촉했다. 버스의 창밖으로 그의 다바를 찾았다. 비쉬누의 다바는 문이 닫혀 있었고 문 앞에는 대여섯 개의 꽃병에 꽃이 한 송이씩 꽂혀있었다. 이웃의 다바 두 곳 역시 문 앞에 꽃병이 놓여있었다. 기쁜 일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축하해 비쉬누.
어울림은 고산증세로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잠깐 내려서 짜이라도 마시게 할까 했지만 상태가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어울림이 힘들어할 때마다 괜한 짓을 한 것 아닌가 자책을 했다. '바라라차 라'를 넘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멀리 파란색 천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야'가 있는 곳이다. 배낭에서 사진이 담긴 액자를 꺼냈다.
열여섯 살의 마야는 이제 열일곱이 되었다. 마야를 만날 생각에 바람이 들어간 것처럼 들뜨고 있었다. 고향의 음식을 기다리는 늙은 이민자가 된 것 같았다. 나와 마주친 마야의 놀란 얼굴을 상상하며 영화 같은 재회의 장면을 그렸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마야를 찾았다. 마야는 없었다. 마야가 결혼을 했다. 재회의 장면도 없었다. 마야의 사촌에게 사진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야... 행복하기를...
재회라는 기쁨이 기도의 응답으로 나타나 굳은 믿음이 되기를 원했다. 응답은 늘 가르침으로 대신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만남이 기쁨으로 상기되기보다는,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결핍으로 남겨졌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비교할 감정의 자료가 전혀 없는 이유로, 오히려 신비로운 상실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어둡지만 알지 못하는 꽃들과 향기가 빈 가슴을 채우고 재회 없는 가벼움이 아득하고 낯선 감정을 탐닉하게 한다. 그리하여 재회가 사라진 그곳은 가혹하고도 황홀한 마음의 공터로 남고, 마야가 떠난 그곳엔 나 홀로 있었다.
길고 굽은 길과 다르게 마음은 곧장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돌마(Tsewang Dolma)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닫지도 어디론가 떠나지도 않았으리라.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돌마의 다바가 보이고 있었다. 주변의 배경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돌마가 있는 그 천막은 버스가 달려가는 속도와 똑같이 멀어지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같이 그 화면 안에서 확대되기를 거부하며 멀찌감치 물러나는 돌마의 거처는 버스로는 당도할 수 없는 곳이었다. 노루부에게 차를 세워 달라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그녀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었다. 그녀와 마주 섰을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 같은 거리에서 잠깐 멈추었다. 큰 숨을 한 번 쉬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을 때 돌마의 천막 안에서 아기가 아장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돌마가 많은 시간을 돌보던 어떤 젊은 여자의 아기였다. 돌마가 있다는 확신이 들자 약간의 현기증이 왔다. 나는 다바 안으로 들어섰다. 돌마가 있었고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미 감격한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내 얼굴을 가까이 보여 주었다. 기억해 달라고 매달리듯 돌마의 눈동자에 나를 비췄다. 돌마는 계속 나를 보았다. 나는 소리 없이 크게 웃었다. 돌마의 눈빛은 시간을 돌려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의 표정에서 내가 재생되었을 때 기쁨과 함께 지난날의 고마움이 폭죽처럼 터졌다. 문 앞에서 뜨개질을 하다가 카메라를 바라본 돌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를 선물로 주었다. 돌마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시간은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해 서둘러 가야 할 것 같았다. 가려는 내게 돌마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전화를 달라고 했다. 조카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돌마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이런 이별은 짧을수록 좋은 것일까. 아쉬운 마음을 훔친 물건 숨기듯 재빨리 깊숙한 곳에 넣었다.
"쏘리, 노 잉글리시" 돌마가 말했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돌마와 나는 며칠 동안 말없이 지냈었다. 그리고 돌마가 며칠 만에 처음으로 건넨 말이 바로 '쏘리 노 잉글리시'였다. 해발 4500m의 거친 땅에서 꽃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말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향해 몸을 돌려 밖을 향했다. 문밖으로 따라온 돌마는 스프라이트와 감자칩 한 봉지를 내게 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아 들며 다시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때도 돌마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날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떠나는 길에서 나는 과거의 정지된 시간을 찾는다.
어울림은 고산 증세로 상태가 갈수록 좋지 않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의 도로 '타그랑 라'에 도착했다. 해발 5,328m. 어울림이 잠시 내려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구토 증상만 심해졌다. 그 모습을 본 노루부가 어울림을 도닥이며 힘을 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게 어울림과의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찰칵. 0.01초의 짧은 시간. 노루부가 안고 있는 어울림의 초췌해진 표정을 기록하는 셔터는 어울림에 대한 나의 죄목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리고 이 여행이 어울림에게 무엇으로 남을지 다시 한번 의심하게 되었다. 기억하지도 못할 힘든 경험만 하게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와 있으며 이제부터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자신에게 변명했다. 높이가 낮아질수록 어울림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곳에 오지 않았으면 될 일 아니었나. 내려갈 일도 없게. 아니며 혼자 오던 지. 맞다. 그랬으면 될 일이었는데 무슨 욕심에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어울림, 더 크면 그때 다시 오자. 응?'
어울림과 노루부(타그랑 라.5328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