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의 마지막 하루.

by 아무개



찬드니 촉에 가기로 했다.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다. 실용성보다는 현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두 곳의 지하철 역이 보였다. 우리는 중간쯤에 있었다. 사물의 크기로 거리를 가늠했다. 가까워 보이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역은 가까웠지만 목적지와는 한 정거장이 더 멀어졌다. 라마크리슈나역. 라진 촉에서 옐로 라인으로 환승해야 했다. 도착한 찬드니 촉은 기대 이상으로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만족했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 내 목적지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다녔다. 좋았다. 서 있기만 하면 되니까.


먼지와 매연이 더위와 범벅된 시장 골목은 점포마다 피워놓은 향으로 푸른빛이 가득 차 있었다. 시끌벅적한 활기는 끈끈하게 녹아 돌아다녔다. 나는 많은 몸들을 비집고 다니며 체액들과 섞였다. 씹는담배 냄새와 겨드랑이의 양파 향이 살아있는 곳. 그곳에 묵은 된장의 진한 체취를 첨가했다. 푹푹 퍼지는 열기와 함께 불쾌함이 더해져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울림의 얼굴도 불만이 차 올랐다.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불편함을 얼굴로 드러내는 어울림에게 나의 불쾌함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다. 지금 숙소로 돌아간다면 너 때문이라고 말이다. 비겁한 놈. 일단 에어컨을 가동 중인 것으로 보이는 점포에 들어가 물건을 둘러보는 척했다. 어울림도 잠시 의자에 앉아 열을 식혔다. 손님과 상담 중인 주인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열이 식은 머리는 5분 만에 모두에게 좋은 실용적 판단을 내렸다.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울림은 지하철을 거부했다. 복잡한 객실에서 더는 구겨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이클 릭샤를 이용하기로 했다. 말 수가 적고 차분한 릭샤왈라를 만났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향료시장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설 때였다. 돌풍이 한 차례 불어왔다. 콧속이 매콤해지며 재채기가 나왔다. 매운 향에 익숙해질 즈음 다시 강한 바람이 시장 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처음과는 다른 아찔한 향이 바람을 타고 흘렀다. 크게 세 번의 재채기를 더 했다. 사방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시장 안이 어수선해지며 잡다한 소음들도 사라졌다. 재채기로 정신을 맑게 한 나는 그 상황을 또렷하게 파악했다. 내 재채기가 어둠의 마녀를 불러들인 것이다. 어두운 기운을 가진 자가 -바로 나 같은 자가- 일곱 가지의 아로마와 네 가지의 매운 향신료에 다섯 가지의 검은 곡물이 섞인 가루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 만들어낸 회오리바람을 통해 들이마신 후, 세 번의 재채기를 하게 되면 마녀를 묶었던 먹구름 밧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비와 바람과 어둠으로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릭샤는 길을 뚫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수레와 자동차와 릭샤와 사람들이 뒤엉키고 있었다. 이러다가 그냥 비를 맞겠네 하는 생각이 몇 미터 벗어나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릭샤는 지붕이 있었지만 바람이 세게 불자 비는 옆으로 누워 들어왔다. 바람이 멈추자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의 릭샤 왈라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거리는 텅 비었다. 빗줄기만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많던 사람과 수레와 릭샤는 멈추어 있었다. 비를 피하거나 맞으면서 도로 옆이나 건물 밑에 서 있었다. 그러나 고지식할 만큼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우리의 릭샤 왈라는 페달을 계속 밟았다. 그에게 페달을 멈추는 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어울림과 나는 비에 흠뻑 젖었다. 릭샤 왈라가 페달을 밟는 게 여의치 않자 안장에서 내려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물은 발목까지 올라왔다. 거리의 쓰레기들이 물에 떠서 낮은 곳으로 쓸려갔다.


릭샤는 심하게 덜컹였다. 엉덩이가 아파왔다. 지붕과 연결된 쇠 막대에 머리와 볼을 계속 부딪혔다. 비도 피할 겸 잠시 쉬었다 가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억세게 운이 좋다. 늘 프로정신이 삶을 지배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릭샤 왈라는 내가 만난 최고의 프로정신을 소유한 사람 중 하나다.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 프로정신의 원칙이 답답하게만 보였다. 프로답지도 않고 원칙 없이 고집만 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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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남은 세제로 모자와 옷들을 빨아 널었다. 선물은 내일 사도록 하지 뭐. 나는 선물을 해 본적이 거의 없다. 내 생일을 누군가 기억해 주는 것도 귀찮아한다. 번거롭기만 하다. 돈으로 주고받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정성이 없다고? '웃기시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데.


선물을 사는 행위는 세련되고 고상하다. 선물은 시간을 함께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계획의 시작부터 마지막 전달까지, 받을 사람을 생각한다. 무엇이 그를 가장 기쁘게 할지 몰라 결정을 망설이며 행복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의 취미와 좋아하는 상표와 식습관도 생각한다. 상대를 향한 시간이다. 그래서 선물은 돈과 다르다. 나도 이제는 선물을 해야 할 때다.




산책을 했다. 습관처럼 골목을 찾았다. 명소를 다니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는 골목이 먼저다. 아니지, 사람이 먼저다. 티베트의 라사에서도 골목만 돌아다니다 결국 포탈라 궁전은 사진의 배경으로만 남겼다. 골목이 명소인 곳도 있다. 그래도 명소가 아닌 낯선 골목이 먼저다. 아니, 사람이 먼저. 작은 점포 하나하나를 살피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현지인들의 대화를 멜로디처럼 듣기도 한다. 골목에서 나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골목은 좁고 사방이 굽어있었다. 공간이 비좁을수록 사람과 가까워진다.


인도의 대표적 전통 타악기 타볼라를 수리 중인 작은 공방에 들어갔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서 있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네댓 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가 타볼라의 소리를 잡아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한 사람이 작은 풍금의 건반을 일정하게 누르며 소리를 냈다. 남자는 건반 소리를 듣고 타볼라의 테두리를 작은 망치로 빗겨 내리치며 계속해서 왼손 검지로 타볼라를 땅땅 두드렸다. 건반의 음과 같은 소리를 찾고 있었다. 리듬악기라고 생각했던 타볼라가 멜로디를 이루는 하나의 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음을 잡아 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쪽 귀를 기울이고 계속해서 소리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타볼라의 테두리를 두드리는 망치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었다. 그의 귀는 타볼라와 완벽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진동이 가장 아름다운 파장으로 지나가는 길목을 귀가 지키고 있었다. 소리는 악기와 멀어질수록 빈약해지고, 가까우면 군더더기가 많게 된다. 연주를 할 때는 마이크가 귀의 위치에 있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훌륭한 연주자라면 그 거리를 모를 리 없다. 완벽한 거리에서 완벽한 소리를 듣는 법이다.


나는 그의 자세와 표정에서 그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의 모습에 푹 빠졌다. 그가 두드리는 타볼라의 소리보다는, 소리를 찾아 조율하는 그의 모습만 보였다. 소리는 그의 것이었다. 신중하게 몰입한 그는 소리와 하나가 되려는 것인지, 최대한 가까워지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일도 중요했다. 중요한 존재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소리의 알맹이를 찾았다. 껍질을 모두 벗겨낸 소리는 머릿속을 때렸다. 음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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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과 나는, 우리는 델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냈다.

그리고 이 여행 안에서 각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씨앗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우리는 다음 날 방콕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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