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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Apr 19. 2022

나의 취향은?

누가 누구를 오해했나


배낭의 무게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하체의 부실이 이 정도였나 믿기지 않았다. 소고기와 야채 고추장 비빔밥, 군용 곡물 비스킷 등을 1/3이나 덜어 놓고 짐을 꾸렸다. 그러나 허리 밑에서는 뭐가 부담이 됐는지 계속 후들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마음은 가벼운 거 아닌가. 흥분과 기대감은 언제나 새롭다. 인천공항에는 여유 있게 도착했다. 에어인디아의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수속 시간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렸다. 창구가 열리고 차례를 기다렸다. "여기가 에어인디아예요?" 한 젊은 여자가 내게 물었다. "네" 짧은 대답 후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갈 여행자에 친화력을 발휘해 볼까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수속을 마치고 전철을 이용해 탑승동까지 이동. 설렁탕 1,2000원. 비싸다. 그래도 당분간 먹을 수 없으니 정성껏 맛을 음미한다. 맥박과 호흡의 변화 감지. 원인을 찾아 봄. 기대와 긴장이 주는 흥분의 결과.






창가 자리에 앉았다. 기내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인도 음악은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었다. 옆자리에는 두 명의 여자가 앉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한다.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했다. 나? 뭐 나도 내 직업이 아주 만족스럽다. 가끔은 잠정적인 실업자가 되기도 하지만.


괜히 창가 좌석을 택했다.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옆자리의 여자분들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이렇게 화장실 방문의 불편함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진다. 이런 신경질적인 방광 하고는 소통이 안된다. 그래도 참는데 까지 참아 보자. 그리고 오줌을 참으며 생각했다. 우선 이동할 때는 자연스럽게 양해를 구하며 품위 있게 두 사람의, 네 개의 무릎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앞 좌석 등받이와 무릎의 거리를 보니 틈이 없다. '개떡 같은 이코노믹!' 더 좋지 않은 상황은 앞 좌석이 편안하게 모두 뒤로 젖힌 상태라는 것이다. 골다공증 환자가 지나가게 되면 분명 허리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등받이를 올려달라고 말해볼까? 잠이 들었나? 무례할지도 모른다. 망설이는 그 시간에 요도는 서서히 방어선이 뒤로 밀리며 최종 배출 컨트롤 타워가 있는 괄약근 사단이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좋다! 일단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자. 퇴로는 없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여자분들을 마주 보며 나갈까 아니면 뒷모습을 보이며 나갈까. 일단 뒷 보습을 보이며 나갈 때는 손으로 젖혀진 앞 좌석을 잡기에는 수월 하지만 허리가 뒤로 젖혀지는 위험을 초래하는 동시에 구린 엉덩이를 여자분들에게 들이미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지가 않는다. 또 만에 하나... 탄소 배출량을 일시적으로 급등시키는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쪽팔림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행기 비상구를 열어젖히고 뛰어내릴 것이다. 그리고 1,2000m 상공에서 자유 낙하하며 구름 속에서 지퍼를 내리고 푸른 창공 한가운데에서 산불 진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그러나 어느 누구에겐가 혹은 지상의 어느 생물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요소수를 뿌려댈지도 모른다. 이 소심한 성격에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비상구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 자세는 최선이 아님으로 통과.


그럼 앞을 보이며 가는 게 좋겠다 싶은데 이 경우는 여자분들의 편안한 시선이 바로 나의 소중한 곳에 닿게 된다. 그 또한 거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는 구리고 앞은 지리다. 어쩌면 이런 공상이 변태적일 수도 있겠다 싶어 머리를 흔들어 현실에 재접속했다. 확실한 변태도 이루지 못하는 '불완전 변태'. 양해를 구하고 앞도 뒤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비적 거리며 무릎과 좌석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말 한마디를 했다. "이래서 비즈니스 타야 돼요" 어색함에서 탈출하려다 민망한 올가미에 걸렸다. '실례하겠습니다'로 끝냈어야 할 단순한 상황에 자격지심에 근거를 둔 싸구려 멘트가 평생 후회할 분위기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젠장! 그녀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그 소리를. "누가 뭐래요?" 아... 씨발.


미친 방광의 예민한 반응에 비하면 너무도 한심스럽고 보잘것없는 양의 오줌이 힘없이 변기를 토닥였다. 이제 다시 네 개의 무릎을 헤치며 내 좌석으로 돌아가는 게 더 큰 난관이 되었다. 하지만 돌아가기가 싫다. 무릎과 허리, 목을 포함한 몸뚱이가 너무 찌뿌둥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개떡 같이 좁은 곳에 앉아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멈추어 버렸다. 잠시 통로를 서성이며 몸을 풀어본다. 공간이 가장 넓은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불편했던 허리를 풀어 보려고 앞으로 몸을 최대한 굽혔다가 다시 편다. 손으로 양쪽 무릎을 잡고 지탱하며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는 동작을 반복했다. 어느 순간 뒤통수가 아닌 엉덩이가 따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를 펴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외국인 여행자. 그들은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어... 색..." 하며 소리가 지나갔다. 습관처럼 드라마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내 취향에 대한 오해가 나의 엉덩이에서 비롯되었다면, 내가 그들의 면전에 들이 밀고 움쭐거린 엉덩이가 그들에 대한 유혹의 행위로 보였다면? 그리고 그중에 한 사람이 델리 공항의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하는 순간 내 뒤를 따라와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한다면? 그리고 내가 너무 맘에 들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면?' 개떡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이 오해할 만한 그런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나는 재빨리 군사독재 시절의 국민체조를 생각나는 대로 순서에 상관없이 시작했다. 유사한 창조적인 동작까지 즉흥적으로 꾸며 모던하게 보여주려 했다. 진정성을 갖고... 그러지 않을 수 없으니까. 중간중간 오해를 불렀던 그 동작도 계속했다. 그래야 의심이나 오해를 하지 않을 테니까. 방향도 계속 바꾸어 가며 했다. 당신들 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는... 이건 단지 몸을 풀기 위한 동작이라는... 때문에 어느 방향 누구에게나 내 엉덩이를 들이 밀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동안 계속... 어쨌든 확실한 의사 전달은 됐겠지?  




불완전 변태의 여행은 그렇게 늦은 밤 뉴델리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는 에어 인디아 비행기와 함께 불안정하게 덜컹거리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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