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가 아름다운 것은...'
몸의 피로를 바닥에 깔고 막걸리의 취기를 덮고 깊은 잠을 청했지만 아침은 어느새 모든 생명을 깨우려 나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찾아왔다. 적당한 피로와 긴장이 정신을 수면과 혼란스러운 깨어있음의 중간 어디쯤에서 떠다니게 하고 있었다. 아침의 태양은 삶의 궁극적인 길로 안내하듯이 텐트 밖으로 나를 꺼내버린다. 몽롱함보다는 명료함에 가깝지만 여기가 어딘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인지력의 한계를 갖는 상태. 멍.
텐트 앞에 앉아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앞을 본다. 멀리 산이 보이고 그 위에 태양이 떠있다. 걱정을 덜어낸 물분자들이 태양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대기를 채우고 그 사이를 빛이 가로지르며 입자이기도 하고 파장이기도 한 스스로를 증명하듯 쏟아진다. 그 빛의 장막 뒤로는 산 그림자가 짧게 벼 잎 위를 덮고 있다.
몽롱한 육체보다는 차라리 부러진 영혼이 나을까?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뇌를 비롯한 몸 전체에 산소 전달이 원활 해짐을 느낀다. 물 한 모금 마시자 더욱 차분해지는 정신. 모든 것이 자신의 일부를 대기 중에 뿜어 놓은 듯한 충만함. 벼이삭 끝에 맺힌 '영롱하게 빛나는'이라고 형용할 수밖에 없는 이슬이, 나를 배경으로 한 내 앞의 전경이,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과 환경변화의 예민함이, 나를 잠으로 이끌지 못하고 거친 꿈속을 헤매다 지친 모습으로 맞이하게 된 지금이, 저토록 분에 넘치는 초록을 분열하게 하고 나에게는 이토록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이것은, 아침이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아침'을 지퍼백에 담아 서랍 구석에 넣어 보관해도 될 만한 아침을 맞이하고 버너에 물을 끓여 비상 건조식품을 불려 먹었다. 그런데 숟가락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니까.
봉하 마을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멀었다. 점심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식당 아주머니들과 잠시 즐거운 대화를 했다. 쿨하고 여유 있는 뒷모습을 남겼을 거라 생각하며 떠났다.
조금 더 두꺼워진 피로에게 의지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 서둘러 야영 장소를 찾아야 한다. 조바심과 걱정이 생각을 몰아갈 때였다. 이정표에 '주남저수지'라고 쓰여있다. 눈이 번쩍 살아났다. 그리고 우연히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빚쟁이가 종적을 감추었던 채무자를 발견한 것처럼,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고 미안하다 말하려고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사람임을 알아차리듯, 그렇게 두 눈으로 이정표의 장소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그런데 저수지가 부곡으로 가는 길과 같은 방향인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곡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종아리의 근육통은 조금 더 심해지고 있다. 저수지까지 가는 길도 가깝지는 않았다. 이정표에 거리가 나와있지 않아서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정표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였다.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으니까. 모든 것은 다수를 위해 변화한다. 결국에는 그것도 상위 0.1%를 위한 전제가 우선이지만.
길게 늘어진 길을 터벅터벅 가고 있었다. 몇 대의 차량 말고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하기는 이 더위에, 이런 한적한 국도에,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사람이 나타났다. 멀리서 아저씨 한 명이 걸어오고 있다. 몸을 가누고 걷는 모습이 이미 상당히 얼큰해 보였다. 분명히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란 직감이 발밑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여행 하능교?" 역시나.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익숙한 노래 가사. 주남저수지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지름길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당신은 오늘 나를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으라는 듯. "내사 마, 여~ 토박이라서 구석구석을 다 안다꼬..딸꾹~" 남자는 자존감을 높이려는 듯이 이 말을 계속 반복한다. 아마도 육백 번은 족히 들은 것 같다. 알았다며 돌아서려 해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내사 마, 여~ 토박이...딸꾹" 강조에 강조를 한다. 정말로 친절하시다. 그리고 아~ 덥다.
구석구석을 다 아시는 분의 조언대로 걸었다. 구석구석까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냥 도로 옆으로 갈라진 반듯한 길을 직진만 하면 되었다. 분명 지름길이라 했다. 너무 멀었다. 곧게 뻗은 길은 거리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길 끝은 걸어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김해평야가 가까워서일까? 넓은 평야와 반듯한 도로는 보기에만 좋았다.
정해진 야영장은 따로 없었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적당한 자리가 있다. 먼저 낚시를 하는 사람에게 옆자리에 텐트를 세워도 되는지 묻고 양해를 구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주변의 식당을 찾아갔지만 모두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카페가 있다. 음식도 판다. 내가 생각하는 카페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북할 정도는 아니지만 침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표현하기 어려운 기운이 감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 어느 외딴곳. 일 년에 몇 명 찾아올까 싶은 그런 식당에 들어서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게 되는 그런 곳. 삐그덕 거리는 바닥. 끈적거리는 식탁과 의자. 창 밖의 노을마저도 유리창을 통과하자 타버린 잿가루처럼 식탁과 바닥에 우울하게 흩어진다. 먹을 수 있을까. 먹기는 먹었다. 먹어야 사니까. 메뉴는 대부분 거창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것은 삼계탕이 있다. 몸에 닭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제는 씻고 싶다.
그 카페는 숙박도 가능했다. 대체 어디에 방이 있을까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말로 가격을 물었다. 자는데 삼만 원, 쉬었다 가는데 이만 원이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데 나도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쉬었다 간다고?' 결코 음흉한 그런 미소가 아니다. 흐뭇해서 그런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쉬는 자들의 낙원이니까. 쉬어 갈 수도 있다는 말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샤워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적당한 비용은 지불하겠다고 했다. 기다리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방이 모두 나갔다고 했다. 분명 안되는 것이 아니라 방이 모두 나갔다고 했다. 흠... 나는 숙박은 고사하고 쉬었다 가는 행복한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다는데 내 손모가지를 걸고 카페를 나왔다.
몸의 끈적임은 감정까지 스며들어 버린다. 종아리를 손으로 쓸어내리자 하얀 소금들이 묵은 때처럼 밀려 떨어진다. 식당을 찾다가 눈에 띄었던 곳이 있었는데 폐업한 건물의 앞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었다. 밸브를 열어 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낚시를 하는 남자의 말로는 물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설마 하면서도 이번에는 그 설마가 나를 잡아버리길 바라며 비누와 세탁물과 수건을 가지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도로와 턱을 경계로 마주 보는 마당에 오래된 수도꼭지가 길 쪽으로 낮게 서있다.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두려웠을까? 물이 나오지 않으면 이제 어쩌지 하는. 그 잠깐의 망설임은 어쩌면 간절함을 담은 짧은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어린 왕자의 말이 들린다. 이 폐가도 내게 아름답게 보이길. 녹이 슨 손잡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조여있던 고무 패킹과 금속 사이의 마찰음이 짧게 손끝을 타고 팔꿈치 정도에 이르렀을 때. 촤아~ 시멘트 바닥을 세차게 때리며 물이 쏟아진다. 기쁨이나 감동, 성취와 만족 그리고 행운과 감사 등 삶을 긍정으로 이끌고 행복하게 하는 모든 단어들이 쉼 없이 쏟아진다. 지금은 유전도 부럽지 않다. 만수르의 초대장도 찢어버릴 수 있다.
옷과 양말을 먼저 빨았다. 땅거미가 지고 어둑해졌다. 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는 바깥이다. 나는 전신 샤워를 원한다. 잠시 머뭇거렸다. 사람이 궁하면 과감하거나 뻔뻔해진다. 그렇다고 옷을 다 벗을 수는 없었다. 반바지만 입고 샤워를 했다. 다행히 차량 두어 대만 지나갔다. 전조등 불빛에 짧게 노출이 될 뻔했지만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역시 가끔 씻어야 더 좋다. 개운하다는 그 말이 정말 개운하게 나온다. 지금 나는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몸과 마음에서 떨쳐 버린 단조롭고 가벼운 상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는 개운하다.
'폐가가 아름다운 것은 앞마당의 수도꼭지가 물을 담고 있기 때문이야'
잠자리에 누우려 정리를 하는데 낚시를 하시던 분이 준비했던 딸기우유를 주셨다.
부디 월척을 낚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