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글 쓰기의 엄청난 것들과 긴 변명.
글은 어두운 기억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인가? 나는 여기서 첫 문장의 '것인가'를 '것이다'로 하려고 했다. 자신이 없었다. '... 다'로 끝이 나는 것은 확정이기 때문이다. 확정을 두려워하는 것은 공격받고 싶지 않아서다. 나를 가장 비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중 하나가 글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주관적 판단인데 이것은 주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예감의 바다에 빠진 난파선과 다름없다. 항상 옆으로 비껴가도록 몸을 돌리거나 눈치를 보며 멀리 우회로를 택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예감의 바다에 다다르고 표류하다 끝내 침몰하게 된다. 그럴 것 같다는 예감.
그래서 '글은 어두운...... 것인가?'로 써버린 것이다. 어두운 기억이란 마음의 상처를 말한다. 정정한다. 일부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 논문도 아닌데 짜증 난다. 어쨌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아니, 생각되는 말고, 다른 단어... 느껴지는... 아니고, 남아있는..., 그래 남아있는... 아. 니기미... 아무튼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다들 납득은 하실 줄로 믿고, 다시 돌아가서, 돌아간다고 돌아버리시지 말고,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그런데 왜 굳이 어두워야 하는가. 꼭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관점을 그쪽으로 세게 밀어 버렸다. 부정적 경험과(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기억들은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 부정적인 것은 대부분 극복의 대상이다.(왜 반드시 극복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극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의 긴장이 필요하다. 긴장은 긍정적 에너지를 연료로 태우게 되는데 대부분 섭취한 열량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어떤 것이든 넘어서려면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허들을 뛰어넘으려면 허들 높이보다 더 높이 뛰어오를 힘이 있어야 한다. 글은 자신을 뛰어넘게 한다. 하지만 에너지의 소모가 많아 효율성은 최악에 가깝다. 아니.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아. 미안.(여러분이 짜증을 내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따라서(이거 논문 아니래도.) 내가 말하고 있는 어두운 기억의 소유인은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을 찾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행복은 부정적 경험과 대비되고 그럼으로써 양 쪽이 모두 선명해진다. 다시 말하면 행복한 기억을 찾아 내려는 것은 어쩌면 상처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것 이.라.고... 에라이, 것이다!... 휴~ 드디어 해냈다. 그리고 선명함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경험 과정은 무엇보다 세밀하고 실제적이며 구체성을 갖는다. 구체성은 자신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토대가 되지만 반대로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구체적 '말'은 하소연이 되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고, 구체적 '글'은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가 된다.
가끔은 어두운 경험의 순간들을 대비 없이 독립적으로 추상화하며 동화처럼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마된 묵은 경험은 계속해서 아름다워진다. 포토샵의 버전이 높아질 때마다 추가 기능을 사용하는 것 같이 더욱 선명하고 세밀하며 독특해진다. 기억은 아름다워 진다.
오래전 내가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을 때, 말로만 듣던 쌍코피를 시전해 보일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구속되지 않은 게 고맙고 다행이라 기쁜 마음이 들었다. 부어 오른 코 때문에 머리 끝까지 덮어쓰던 무거운 목화솜 이불을 턱으로 지그시 누르고, 보이지 않는 천정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잠을 청할 때, 쏟은 피보다 더 많은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의 범죄가 아름다웠을까.
나는 늘 그렇지만, 주제와 상관없이 또 긴 설명을 해대고 있다. 이유는 단지 간결하고 정확한 주제의식과 완성도 높은 문장을 통해 고급지고 차원 높은 글들을 쓰지 못해서다. 불량식품처럼 이렇게 저렇게 갖다 붙여 대고 읽는 사람을 혼란케만 한다. 상관없다. 내가 뒤죽박죽인데 어떻게 정연한 글들을 쓸 수 있나. 사실 이렇게 덕지덕지 쓸모없는 것들을 붙여 놓는 글들이 거지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같을 수.도.가 아니고. 거지 같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니, 그냥 확정적으로 거지 같다!. 또... 해냈다. 그게 내 글의 대단함이다. 유일성이다. 나는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행간의 묘미나 단순함을 통한 압축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며 그럴 능력이 없음을 통렬하게, 자책하지 않는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의 생각 안으로 여러분들을 불러들이고 싶을 뿐이다. 나를 따라오면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나에게도.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하실 수 밖에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을 동원해 여러분들 앞에 놓아두고 앞장설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것들이 재미있는 표현이든, 엉뚱한 비유든, 또는 맞춤법이나 문장이 성립되든 그렇지 않든, 지루하든, 혼란스럽든(사실 이것이 내가 주고 싶은 것이다.) 단어나 음절을, 때로는 자음, 모음과 상용 문구들을 따라서 나의 생각으로 들어오시기만 하면 된다. 너무 쉽지 않은가? 그리고 돌아갈 때는 놓인 단어들을 다시 따라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나씩 발로 걷어 차 버리면서 말이다. 그래야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길을 잃는다.
헨젤과 그레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