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말

얽매이어야 하는 것.

뿌리.

by 아무개



뿌리는 땅속으로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바위나 돌 사이의 틈도 여지없이 파고든다. 틈이 없으면 뿌리는 그 단단한 덩어리를 에워싸며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틈을 찾거나 틈을 주지 않거나.




흙이 무르고 부드러우면 뿌리도 가늘고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수많은 탐침을 꽂아 그 틈들을 지우며 포획한다. 흙을 움켜쥐고 흙 속에서의 시간과 세계를 강하게 얽어 매기 시작한다. 마지막에는 흙의 중력까지 바싹 움켜쥐어 흔들리지 않는 영역을 갖춘다. 이렇게 굳건히 얽어 맨 것은 자신의 영원한 토대가 된다.




뿌리는 지상에서 잎과 줄기와 꽃과 열매를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 이러한 나타남의 영역에는 신념이 없다. 신념은 다른 신념, 다른 가치와 충돌한다. 그래서 성공이나 실패가 없다. 자기 이외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뿌리는 흔들리지 않고 드러나기 위해 깊은 곳에서 흙을 얽어 매고, 땅에 얽매여 있다.


무엇이든 뿌리가 있다.


영원히 떠도는 홀씨는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행 앞에서 웃어버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