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말

불행 앞에서 웃어버리기.

진지하지 않을 때가 행복하다.

by 아무개





'...나는 내 불행을 다른 사람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3장.-





불행은 진지함을 소유한다. 진지함은 불행이라는 엄격한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짧은 외출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진지함에게는 불행 이외의 어떤 것과도 함께 할 수 없다. 사랑도 불행의 가까운 곳에 있을 때에만 진지해 질 수 있다. 사랑때문에 불행해 지는것이 그 이유다. 불행만큼 목동의 개처럼 사람을 진지하게 몰아 대는 것은 없다. 그래서 불행할 때 사람은 가장 진지하다.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타인도 진지하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연민과 인정 욕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더욱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 ...생각일 뿐이다. ...그 생각에서 감정이 솟아난다. ...슬플 수밖에...






불행은 자신이 불행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래서 슬픈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슬픈 사람들만이 불행을 공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불행 보다 불행으로 태어난 것 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불행을 보고 잠시 자신의 아픔이나 슬픔을 멈춘다. 불행에 비하면 초라한 슬픔의 크기에 사람들은 잠시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불행을 위로한다. 위로받은 불행은 더이상 불행하지 않다. 이것이 불행의 행복한 결말이다.


인류이래로 저주받고 배척당한 모든 전쟁과 모든 전염병과 모든 마귀를 곱한것 보다 천만제곱 이상을 부정당한 불행만큼 불행한 것이 또 어디 있나. 그러니 가장 위로 받아야 할 것은 바로 불행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을 위로하지 않고 불행이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위로받기위해 우리의 담장 안으로 들어와 우리 앞에 나타나면 깜짝 놀라며 입을 크게 벌리고 불행을 빨아들인다. 먹어치운다. 예기치 않은 결말에 불행은 더욱 슬프다.


불행에게 하찮은 농담이나 진지하지 않은 몇마디의 친절함으로 위로를 하는것도 좋다. "너 불행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불행했니. 그리고 얼마나 슬펐니." 토닥...토닥... 그런데 사람들은 불행이 다가가자 불행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불행이 되어버렸다.




내게 불행이 찾아왔다. 리얼리? 지금 나를 찾아온거야?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피폐해진 그의 모습에 그냥 돌려 보내기가 거시기 해서 잠시 쉬어 가라고 의자를 내밀었더니 그냥 지나쳐 내 침대로 가서 베개에 머리를 눕힌다. 어. 저 놈 좀 보게. '제기랄! 불행해져 버렸네.' "야! 너 번지를 잘 못 찾았어. 잠깐 쉬다 가라니까 어디에 둥지를 틀어?" 귓등으로도 안듣는다. 너무도 진지하게 누워 있다. 어이가 없어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웃음이 난다. 웃다보니 불행이 주인처럼-사실 주인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그렇게 부조리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너무도 진지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불행은 자기를 보고 계속 웃어대는 나를 잠시 본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쓰러지며 웃었다. 정말 그 멍청하고도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는 잊을 수 없다. 염병하게 웃겼다. 이러다간 웃다가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불행이 벌떡 일어나더니 황급히 똥마려운 치질환자처럼 절뚝이며 밖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은 더욱 더 웃겼다. 한참을 웃다가 '아. 정말 이건 뭐지.'하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고 기진맥진 일어났다. 휴...


어? 그런데 신발은 왜 두고 간거지. 나는 또 쓰러졌다.




다시 오면 그때 돌려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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