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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books Jun 07. 2020

하고 싶은 거 다해!- 앱 개발자 편

코딩은 모르지만  앱 개발은 하고 싶어!


당시 주변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 사람, 한글을 배우고 싶은 프랑스 사람들이 많았다. 구글에서 키워드 검색을 통해서, 프랑스어를 학습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가 영어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레드오션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경쟁할지, 아니면 수요가 적은 블루오션이지만 개발해볼지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민은 아주 잠깐이었다. 나답게 무모하게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플랫폼 이를테면 인스타그램, 유튜브, 에어비엔비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였다면 내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서 '생산자'로 탈바꿈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한국사람, 한글을 배우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앱을 만들어 보자! 


그러나 대체 앱 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코딩을 배우기에는 역량 부족, 시간 부족이라는 걸 이미 깨우쳤기에 앱 개발가들의 조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머릿속에 구현한 앱의 기능을 다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해줄 앱 개발가를 찾아야만 했다. 투여 자본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코딩은 모르지만  앱 개발은 하고 싶어요!


휴가차 한국에 들를 때, 한국인 앱 개발가들과 미팅을 가졌다. 강남 테헤란로에 즐비한 공유 오피스에 들어서니 괜스레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커피도 간식도 무한으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의 플랫폼을 마련해줄 개발가와 첫 만남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때, 마침 저축해둔 돈 몇 푼을 탈탈 털어 앱을 제작했다. 당시 앱 개발 회사 미팅에는 동생과 남편을 대동했다. 두 남자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옆에서 자리만큼은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앱 이름을 무엇을 할지, 로고는 어떻게 제작할지, 로고 해상도는 어떻게 높일지, 랜딩 페이지를 꾸미는 방법, 콘텐츠의 흐름 등 정말 생각할 게 많았다. 나는 이런 도전을 재밌어했고 즐겼지만 두 남자들은 '잔다르크 같은' 와이프와 누나의 뜻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그렇게 남편과 동생에게는 예정에도 없던 '동업'의 길을 열어주었다.


유레카처럼 생각난 앱의 이름은, 정말 샤워하던 중간에 생각났다. 치즈처럼 프랑스어 실력이 쭉쭉 늘어난다고 해서 '프렌치즈' 라고 이름을 짓고 나니 가족들도 맘에 들어했다. 우리의 뜻과 비전이 들어간 앱 이름이었다. 그에 맛게 치즈를 메인 고르고 제작하게 되고 포토샵을 잘하는 친구의 힘을 빌어 고해상도로 로고 제작도 완성되었다.  렌딩 페이지도 우여곡절 끝에 구상이 끝나고, 콘텐츠의 방향도 잡았다. 



두 달 정도의 회의와 조율을 통해서 앱을 런칭하고 이 둘은 나의 가장 믿음직한 동업자가 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나와 남편은 프랑스어 컨탠츠를 계속해서 찾아냈고,  한국에 있는 동생은 마케팅을 담당했다. 모든 사업의 시작은 가족사업이라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프랑스어 문장 중 가장 기본적인 표현들과 명언을 찾아 콘텐츠를 만들었고, 동생은 앱 홍보를 위해 여러 채널들을 과의 협업을 시도했다. 


앱을 만들어 보지 않으면 모를 법한 문제들에 봉착했다.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일은 당연한 업무 중 하나였지만 그 외에 앱을 관리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구글 애드센스를 이용하는 방법, 앱으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관리하는 방법,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분석하는 방법, 지속적인 앱 유입을 유도하고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방법... 등 공부해야 하는 분야가 많았다. 미리 앞서서 공부하면 좋겠지만, 사업은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배우는 일들이 더 많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업체였지만, 온라인에서 충분히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사업의 고충을 알아가는 초보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앱 론칭은 큰 성공은 아니었다. 적지만 지속적인 유입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두 남자와 나는 한 배를 탄 '앱 개발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모든 수익금은 재투자로 이어져 배당금이나 최소한의 급여는 없었지만 연신 선물로 대체했다. 


내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동생이 힘을 더했고, 

동생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내가 숨을 불어넣고. 그렇게 우리 사업의 목숨을 유지했다. 


왜 사업을 시작하고 5년 정도 버틸 수 있다면 그다음 10년도 버틸 수 있다는 말이 존재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초창기 사업이 안정화되기까지가 가장 어렵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시간이 지나면 가지와 나뭇잎은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초짜 사업가'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우리의 사업의 끝은 어떻게 될까?


'우리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실패하지는 않는 사업이 될까?'

'이 경험이 우리를 어떤 다른 챕터로 데려다줄까?'


끝없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우리는 2년 차 앱 개발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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