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미숙함을 탓하기 전에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1년이 넘도록 일을 해도 실수가 잦은 선생님이 있다.
최근에는 사고도 늘어나 동료들이 더 힘들어했고, 결국 그 선생님을 향한 불만이 쌓였다.
나 역시 함께 일할 때면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을 미워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내 신규 간호사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위축되어 눈물을 삼켰던 그때의 나. 그래서인지 ‘그 선생님도 잘하고 싶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일하는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달랐다.
“언제까지 알려줘야 돼?”
“차라리 나가라, 피해 주지 말고.”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일을 못한다.”
이런 말들이 오가며 분위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자연스레 그 선생님은 더 주눅 들었고, 실수는 오히려 더 잦아졌다.
간호사의 일은 팀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 몫을 메워야 하는 구조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미숙함이 곧 팀 전체의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 만약 각자의 업무가 독립적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 상황은 한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구조의 문제일까.
나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개인의 역량 부족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떤 방식으로 팀에 적응하도록 돕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결국 한 사람의 실패는 개인만의 실패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구조 속에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간호사 태움’이다.
‘태움’은 신규나 미숙한 간호사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모욕적인 언행과 배제, 심한 질책을 반복하는 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말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을 더 위축시키고 결국 무너뜨린다.
병원은 늘 인력이 부족하고, 그 부족분은 고스란히 동료들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가장 약한 고리가 ‘희생양’이 된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몰아세우고, 비난하고, 결국 떠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까? 아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서게 될 뿐이다.
결국 태움은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남는 것은 떠밀려난 누군가의 상처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시스템뿐이다.